케리 월터스 - 「아름답게 사는 기술」
"이 새로운 죽는 기술은 중환자실이나 호스피스 병동,
가정에서 임종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이들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기술의 모토는 '충만한 삶을 사는 것',
더욱이 평생 그렇게 살다가 결국에는 '평화롭게 죽는 것'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한 사랑스러운 여인이 있다.
그녀는 길고 지독한 투병 생활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죽어 본 경험이 없어서요."
그녀는 깊은 신앙심에다 후덕함까지 갖추었고 수년간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그녀가 한 말은 절망이나 두려움이라기보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처한 당혹스런운 감정을 표현하려는 듯했다.
사실 이런 당혹스러운 감정은 우리 각자를 기다리고 있다.
당혹스럽다는 말 외에 그 어떤 표현으로 그 말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필자의 친구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죽어 본 경험이 없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막막할 따름이다.
죽는다는 것,
곧 방금 깎은 풀에서 올라오는 향기,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
빗소리,
좋은 책이나 영화에서 오는 감동의 전율,
사랑하는 이와의 포옹 등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것,
이런 생각에서 오는 기이한 감정에 영혼은 그저 무력해지고 만다.
어떻게 나 없이 세상이 지속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 자체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정심이 번쩍 드는 한 체험이 있었다.
누군가가 죽어 가면서 공포에 떨며 의사, 간호사, 원목,
그리고 곁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였다.
그때 필자에게 깊은 무력감이 밀려왔다.
이러한 최후의 모습이 그저 안타깝거나 볼썽사납게 여겨져서만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죽어 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죽음에 현존할 기회를 빼얐겼기 때문이다.
그는 심한 두려움으로 혼미해진 나머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 앞에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비신앙인들에게 이는 품위 있고 사려 깊은 이별을 통해 삶을 잘 마무리 지을 기회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
또한 신앙인들에게 이는
육적인 존재에서 알 길 없는 사후 존재로 넘어가는 전환을 영적으로 준비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 다가오리라고 예상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두려움과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고통이 너무 심하자 않는 한 죽음을 기꺼이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는 비신앙인들은 물론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분명히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파괴적인 공포나 완고하고도 괴로운 저황 속에서
세상을 떠나기를 진정 원치 않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죽는다는 것이 놓쳐서는 안 될 너무도 중요한 삶의 한 체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직관을 신뢰해야 한다.
죽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모든 생물이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의미에서 죽음은 보편적인 사건이다.
이와 동시에 내가 죽고 내 삻이 끝난다는 의미에서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다.
내 죽음의 시간이 올 때 나는 다른 모든 인류 가족 구성원이 체험해야 할 무언가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나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세대와 한데 묶어 줄 이러한 공동의 운명이 나 자신을 넘어서는 영역으로 향해 거기에,
그것은 그 자체로서 내 삶의 마감을 값진 사건으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죽음은 나 자신의 고유한 몫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죽음은 내 삶의 자취를 돌아볼 기회,
화해하고 이별할 기회,
다른 어느 누구도 공유할 수 없는 체험으로 내 마음과 정신과 몸을 개방할 기회를 가져다준다.
우리가 죽음의 가치를 온전히 인식하고 그것을 맞이할 때,
죽음은 전대미문의 악몽이라기보다 일종의 완결과 충만을 향한 행위가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책에 제시된 인물들만이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가치 있는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피력하고 싶지는 않다.
훌륭한 스승들은 세상 도처에 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필자는
이 책이 다루는 일곱 덕목만이 긍정적인 인격적 특성들의 범위 전체를 포괄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 이 일곱 덕목은 착한 삶에 이어진 착한 죽음을 위해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들이다.
이 덕목들 중에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우리가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한 가지 덕목만을 기른다고 해서 잘 살고 잘 죽는 법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장에서 살펴보겠지만 덕목들은 필연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
여기에 제시된 인물들은 사실 저마다 일곱(심지어 더 많은) 덕목을 모두 기르고 실천해 왔다.
필자는 다만 각 개별 인물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
한 특정한 덕목이 더욱 부각되어 나타난다는 점을 피력하고자 했다.
이 책이 비록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쓰인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는 다른 종교의 독자들도 이 책에서 유익함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여기에서 명확히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관점에서 잘 살고 잘 죽는 것을 다루지 않은 것은
결코 이러한 종교 전통들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이 종교 전통들이 지닌 유산을 충실히 풀어 전달하기에는 필자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는 비종교인들 역시 이 책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비신앙인들도 신앙인들과 마찬가지로 잘 살고 잘 죽는 것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고,
그들 역시 주의 깊은 덕의 함양을 통해 그 목표를 이루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탐구되는 모든 덕은 마지막 덕인 그리스도 닮기를 제외하면
전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덕들만도 아닐뿐더러,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실천 가능한 덕들도 아니다.
(비록 필자의 신념으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투신이 다른 덕들을 완성으로 이끈다고 믿지만 말이다)
덕들은 특정한 종교를 넘어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물들의 표양 역시
특정 종교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잘 살고 잘 죽는 것에 대한 귀감이 될 수 있다. (p21)
- 필자의 서문 -
※ 이 글은 <아름답게 사는 기술>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케리 월터스 - 아름답게 사는 기술
역자 - 김성웅
생활성서사 - 201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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