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천2동 907번지
천유근
1975년도 그때,
나는 코흘리게 국민학교 시절이었지.
7.2평 이층 슬라브집.
삼화고무 다니던 젊은 부부가 세 들어 살았고
이층에는 덩치 큰 배야 엄마네가 살았었지.
밤낮없이 경부선 기차가 드나들었고
바퀴벌레들이 휘휘 날아다니던, 좁은 골목 안에
성기, 영기, 재형이, 용대와 진기, 새까맣게 탄 꼬맹이들이 딱지치기로 분주했던,
지금은 복개된 도랑을 가로지르는
시뻘건 철근이 숭숭 드러난 다리 아래로
동산유지 비누 찌꺼기들이 둥둥 떠다니던,
밥묵어라는 엄마들 소리가 쟁쟁했던 그 골목,
옆집 석씨네 분자 누나가 데미안을 안고 다니던 그 시절이
서울행 특급열차를 타고 지나간다
쫄랑쫄랑 학교길에는 줄줄이 늘어선 문방구들,
불량식품 쫀드기를 연탄불에 구워 팔던 등 굽은 아저씨의 메마른 기침 소리가
메아리로 오는 한낮,
꿈속에라도 다시 보고픈 맘에 무거운 눈꺼풀이 잠긴다.
시작노트
숱한 시인들과 시집들의 홍수 속에 나의 이야기 심을 터
시를 적어서 ‘참방’이라는 상장과 부상으로 자그마한 국어사전을 받았던 초등학교 4학년, 경주 신라문화제였다.
상을 들고 십리 길을 달려 할아버지께 드리니 할아버지께서 환히 웃으시며 칭찬을 해주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는 시를 고등학교 때까지 잃어버리고 지내왔다.
다시 시를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문예부에 발을 들이면서였다.
고등 3년 동안 연례행사로 시화전을 하고 타 학교의 시화전에도 열성으로 다녔던 치기 어린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과 짧은 군대 생활을 마치고 시를 찾기 위하여 강원도 정선 사북으로 갔다.
1985년 3월 16일 청량리 발 강릉행 무궁화 열차를 타고 사북이라는 곳으로 갔다.
삼월인데도 눈이 펑펑 내려 이방인을 맞아 주었다.
미리 연락을 해둔 여관방에 짐을 넣어두고 강아지 마냥 눈 구경을 나갔다.
그렇게 눈과 시, 광부, 친구들, 10년을 사북에서 살았다.
어느 해인가 ‘농무’의 신경림 선생님께서 사북에 오셨다.
며칠간 머무르시게 되어 탄광이며 함백산 야생화 밭으로 안내하였는데,
이때 시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첫째도 다양한 시들을 읽어야 하며 둘째도 시를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사북을 소재로 한 권의 시집을 역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풀에 관하여서도 계속 작업을 하고 있다.
시를 쓰면서 가능한 짧게 쓰려고 노력한다.
언제나 메모지에 생각나는 단어들을 기록해 두면서 그 기록들을 정리해 한 편 한 편 시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시가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시는 쉽게 읽혀지는 그런 시를 쓰고자 한다
시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해가 갈수록 조바심으로 몰려오곤 한다.
한 권의 시집을 세상에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조바심을 일으키곤 한다.
그러한 생각들이 시 작업 하는데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숱한 시인들과 시집들의 홍수 속에 언젠가 나의 이야기도 같이 하리라 약속한다.
천유근 시인
1961년 경주에서 태어나 부산과 강원도 사북 등을 다니며 삶과 문학적 터전을 일구어왔다.
부산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한 바 있으며 「시야시야」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사이펀(계간 시 전문지) 카페 https://cafe.daum.net/siphon-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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