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 「세월은 자란다」
냇가에서
발가벗고 먹을 감던
어린날의 착각에서, 휙
뒤를 돌아다보니
한 노인이 알몸으로
칸막이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여자탕을 들어다보고 있었습니다.
대낮에
해는 높고 맑고 밝고
멀리 진달래가 피어 있었습니다.
이 작품부터는 제 35시집 <찿아가야 할 길(1991. 03. 15.인문당)>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입니다.
나는 평소에 이러한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죽어서 가는 곳은 어머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그런데 그곳은 아무런 길 안내자도 없고 해서 내가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고.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개신교의 하늘로 갈 것이며, 그곳엔 목사라는 사람이 있어 길 안내를 해 줄 것이고,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천주교의 하늘로 갈 것이고, 그곳에는 신부라는 길 안내자가 있을 것이고,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불교의 하늘로 그 고향을 찾아서 갈 것이며,
그곳에는 스님이라는 길 안내자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어머님을 믿고 어머님 계신 곳으로 갈 사람이지만, 그곳에는 나를 인도해 줄 길 안내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 스스로 그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머님을 믿는 그 힘으로,
어머님이 계신 곳이 확실히 있다는 것을 믿는 그 확신으로, 꼭 그곳을 찾아갈 것이라는 절대확신을 가지고.
이러한 생각에서 이번 시집 이름은 "찾아가야 할 길"이라고 했던 겁니다.
이 시집에는 일본 온천 지대를 여행하고 온 시편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일본 도쿄 북쪽에 있는 기누가와 온천.
이곳, 이 지방에는 여러 온천들이 있어서 노천으로 되어 있는 야외 온천들도 있었습니다.
나무판자 한 장으로 남자탕과 여자탕이 구별되어 있어서 생각만 있으면 틈바귀로 서로 들어다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판자 구멍으로 여탕을 들어다보는 한 노인이 있어서, 그러한 봄날을 시로 적어 본 것입니다.
아주 한적한 산골 개울가에 있는 온천탕 풍경을, (p308)
조병화 -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 1995.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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