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렬시집 - 불맛 / 제 3 부」
불 맛
구 광 렬
어머닌 불 맛을 안다고 하셨다.
불간이 잘 배어야 음식은 맛잇는 법이라며
여린 불, 센 불
소금대신 불구멍으로 간을 맞추셨다.
이 모두,
벼락에 구워진 들소의 안창살을 맛봤다던
네안데르탈인을 닮았었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돌아가신 후,
우리 집 음식은 갈수록 더 뜨거워져만 갔다.
미각과 온각을 혼동하고 계시던 어머닌,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지는 펄펄 끓는 곰국까지
싱겁다고 하셨다.
그랬다. 그 즈음 당신 뱃속의 불길은
활활 요원(燎原)으로 번지고도 남음이 있었다
안방에서 속살 타는 냄새, 행량까지 새나왔으며
습습한 날 그 냄샌, 낮은 개나리담장을 타고
삽작을 나섰다
그랬다. 그 즈음 어머닌
안동 간 고들어보다 더 짤 것 같았던
당신 속살마저 싱거워하셨다.
추천의 글
얼음이 녹는다.
물이 언다.
이 반복을 견뎌내는 것이 언어다.
구광렬의 언어는 궁녀의 춤이 아니다.
누구의 투창이다.
‘인류 최초의 음악은 비명이다’의 이쪽에서 비명이 음악으로 돌변한다.
구광렬의 언어는 하나 둘 셋으로 계산된 언어가 아니다.
결연한 추락이다.
구광렬의 언어는 짜 맞춘 내재율의 언어가 아니다.
던져진 날것이 스스로 의미를 내보인다.
구광렬의 언어는 언어관습을 넘어선 경계 탈출이다.
심지어 가족 서사도 민속적이기보다 인류적이다.
현대는 고대의 결핍이 아니다.
끝내 구광렬은 화자를 과장하지 않는다.
자유는 윤리일까?
- 고 은 (시인)
구 광 렬 시집 - 불 맛
실천문학 - 2009. 12. 14.
'내가만난글 > 한줄톡(단문.명언.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병화-세월은 자란다/노천 온천 풍경 (0) | 2010.05.31 |
---|---|
윤동주-八福/마태복음 5장 3 ~ 5 (0) | 2010.05.02 |
박노해-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두 가지만 주소서 (0) | 2010.03.05 |
W. B. Yeats / A Drinking Song 술노래 (0) | 2010.03.03 |
정절집(靖節集)10편-도연명(陶淵明)의 노래/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0) | 2010.0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