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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연필과 자전거는 내 몸이다/불편해도 행복한(작가 김훈)

by 탄천사랑 2008. 10. 11.

「경향신문 62 창간특집/2008. 10. 06 - 연필과 자전거는 내 몸이다」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나에게 소중하다. 나는 이 느낌이 없이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이 느낌은 고통스럽고도 행복하다.”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 중) 작가 김훈(60)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연필로 글을 써서 ‘벌어먹고’ 산다. 연필은 그의 검이고, 원고지는 연필과 지우개가 사투를 벌이는 치열한 언어의 전장이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논다. 자전거는 “빨리 빨리”를 외쳐대며 삶의 속도를 올리는 세상에서 그가 유일하게 감당할 수 있는 탈 것이다. 이 둘은 그에게 사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몸의 연장(延長)이다. 끊임없이 연필을 쥔 손을 움직여야만 원고지는 채워지고, 부지런히 페달을 굴려야만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해서 그는 아날로그 문명의 마지막 수호자이자 상징적 존재로 대중들에게 각인돼 있다. “그게(연필과 자전거) 나의 자랑이나 특이한 점은 되지 못할 거예요. 나의 자유의지로 기계를 거부하며 사는 것은 아니에요. 나는 기계를 다루는 게 싫어요. 내가 만지면 고장이 나요. 나하고는 안 맞는 거지. 말하자면 나는 기계문명으로부터 낙후된 불구자, 장애인인 셈이죠.”


아름다움과 비천함의 사이
스스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불구자라고 칭했지만 이는 그의 까다로운 미(美)적 기준에서 기인한다. 그는 컴퓨터로 글을 쓰는 행위를 ‘비천하다’고 표현했다. “나에게는 손가락으로 그렇게 하는 동작이 너무 비천하게 느껴졌어요. 나는 연필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 정당한 글쓰기의 태도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불편함은 없을까? “글을 쓰거나 할 때 시간이 지체되거나 물리적인 노동력이 더 드는 것은 내가 감수해야 할 불편이죠. 그 대신 누리는 것도 많아요. 내가 작업을 100% 내 몸으로 확인하죠. 신체의 리듬과 그 작업이 딱 붙어버리니까 그런 게 좋아요.”

그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맞춤원고지에 독일제 스테들러 연필로 글을 쓴다. 쓰다가 작아지면 깍지를 껴서 끝까지 쓴다. 몽당연필을 들고 그는 “이제야 사물의 경건함을 알아가는 나이가 됐다”고 했다. 외제 연필을 쓰고 1500만원짜리 자전거를 타는 그를 두고 일각에서 ‘아날로그 명품족’이 아니냐는 비판도 한다.

“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어요. 다만 귀하다는 것은 알아. 명품은요, 내 몸에 딱 맞는 게 명품이에요. (연필과 다목적 연필깎이, 커피가 담겼던 나무로 만든 통을 내보이며) 이런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명품이에요. 이것들이 지탄받아야 할 사치는 아닌거죠.”

자신의 몸에 가장 잘 맞는 물건을 찾아낸 결과가 바로 지금 쓰는 연필과 자전거라는 말이다.

그는 국산연필은 흑연 강도가 약해서 금방 뭉그러져 버리고 색깔이 예쁘지 않아 조금 비싸지만 외제 연필을 쓴다고 설명했다. 또 연필을 쓰는 사람들이 줄어들다보니 “(국내에서는) 사양산업이 돼서 연필을 정성껏 만들 수가 없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가 사물의 미를 판단하는 최고의 기준은 바로 기능이다. 그리고 그 기능은 인간을 중심에 놔야 한다. 그는 “기능에 충실한 것이 기본이고 성능도 좋고 아름답고 깔끔하게 만든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 예로 작업실 구석에 놓여있던 티볼리 라디오(작업실에 있는 전자기기는 전등과 문서 수신을 위한 팩스 외에 라디오가 유일했다.)를 가리켰다. “기능이 아닌 것은 들어있지 않아요. 디자인이란 겉치장이 아니고 진실을 드러내는 수단이에요.”

20세기 초 디자인 운동을 펼친 독일 바우하우스의 기치 ‘기능이 형태를 결정한다’를 연상시키는 발언이었다. “바우하우스는 세계의 외형을 바꿔놓은 놀라운 사람들이에요. 그것은 예술의 세계를 바꾼 것이 아니라 예술의 외형을 통해 현실생활을 바꿔놓은 거지요.”


현실을 인정하되
그는 무조건적으로 산업자본주의, 디지털 문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문명에 대한 생각 역시 현실적이며 단호하다.

“아날로그적인 삶의 태도가 디지털적인 것의 대안이 될 수는 없어요.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있다고도 볼 수 없죠.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은 극히 어리석은 자들일 겁니다. 자전거가 자동차의 대안이 될 수는 없잖아요? 보조는 될 수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전체를 바꿀 수는 없는 거잖아요. 다만 (아날로그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그리움이 담겨 있는 것이죠. 나는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럼 어쩌자는 거예요. 촛불 켜고 살자고? 원전이 아니면 나라가 작동이 안 되는 판인데? 나는 정부가 안전하고 공해가 없는 원전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아예 하지 말자 하면 촛불 켜야지 뭐. 냉장고도 끄고. … 그런 대안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아이들이죠. 어른이면 그렇게 말 못할 거예요. 아이들의 말은 다 아름다워요. 단념할 수 없는 꿈이 담겨 있잖아.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의 말일 뿐이죠.”

아날로그와 디지털도 별개의 것이 아니다. “삶의 기본적 조건들은 다 아날로그 형태로 되어 있어요. 걸어간다든지, 연애를 한다든지, 밥을 먹고 돈을 벌고 이런 것들이 다 아날로그식으로 작동되죠. 디지털은 거기에 큰 변혁이 온 것이잖아요. 그런데 결국 디지털도 완전히 아날로그적인 세계를 떠나지는 못할 것 같아. 여러 사람들한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뜻을 물어봤는데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하나의 문명 전체를 대표하는 방식으로 쓰이게 된 것인지를 아무도 모르면서도 다 쓰고 있어요.”

인터넷을 통해 구축된 가상의 공간이라는 뜻의 ‘사이버’도 날카로운 그의 촉수에 걸렸다. “인터넷을 통해 두 인간이 대화를 할 때 나는 그게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기계를 놓고 대화를 하는데 그게 가상공간일 리가 없잖아. 그건 격렬한 현실적 공간인데 이걸 사이버라고 해요. 용어들 자체가 점점 뒤죽박죽이 되는 거지. 그러면서 뒤죽박죽인 데서 힘이 나와. 광기에 가까운 힘이 나오더라고.”

인터넷과 결합한 새로운 참여민주주의라는 평가를 받은 촛불시위에 대한 생각을 묻자 호된 비판이 돌아왔다. 언론이 현상을 규명하는 대신 “의견과 사실을 섞어놓아서 한 정권의 운명을 흔들어놓을 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나왔다”는 것이다. “(촛불시위를 보도하는 언론을 보며) 언론이 객관적 사실에 바탕한 객관적 저널리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사회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희망이 없다해도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지난 봄 이후 40년간 하루에 두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아직 더 써야 할 글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걸 마저 쓰고 죽으려면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끊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어. 안 피우면 되더라고. 한데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날들이 다 지나갔어.” 회한이 담겨 있는 어조였다.

기자 시절 사실과 의견의 엄격한 구분을 강조했던 그는 여전히 “주어와 동사만 갖고 문장을 쓰고 싶은 허영심”을 갖고 있다. 주어와 동사만으로 소설을 쓰기는 어렵겠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강건하고 비장미가 가득한 문체를 일부 독자들은 부담스럽게 느끼기도 한다는 말에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독자를 편하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독자를 끝없이 괴롭히고 고문을 가해서 고통의 극한으로 몰아넣어서 스스로 세계의 의미를 깨닫도록 하는 게 나의 목표예요. 계몽적이라고? 그게 아니라 위안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거죠. 희망을 말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에요. 희망이 없다고 해서 다 나가 죽을 수는 없잖아. 희망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은 또 살 수밖에 없어요.”

정부가 수립되던 해에 태어나 “한국현대사의 모든 비극과 파행을 보며 살아왔다”는 그는 최근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누구나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자리로 가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바탕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언론의 제 역할을 강조했다.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가려면 먼저 언론이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가야 해요. 언론의 자리는 사실의 자리인 겁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없는 것이죠. 왜냐면 언론은 사실에 엄격하게 구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는 곧 언론의 부자유를 말하는 거예요. 그 부자유를 스스로 자유라고 여겨야죠. 그렇지 않으면 싸우고 서로 경멸하고 무시하고 적대하고, 서로 무력화되는 거지.”

요즘 그는 새 소설을 쓰고 있다. 시작한 지는 서너달쯤 됐다. 그러나 글을 써야 하는 필연성, 절박함에 대한 의문이 자꾸 생겨서 괴롭단다. 작업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미색 원고지 더미와 연필, 하얀 지우개 가루가 가득한 책상에서는 ‘밥벌이의 지겨움’만큼이나 신산한 글쓰기의 고통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그제야 알았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양 말했지만 아직도 그는 ‘순정한 처사’라는 것을. 그는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과 묵묵히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이 싸움에서 그는 영원히 패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지우개 가루를 날리며 계속 연필을 놀려 원고지를 채워갈 것이다.


김훈은 누구
읽고… 놀고… 쓰고… 술 먹고… ‘四樂’에만 몰두
그가 글을 쓰는 경기 일산의 작업실에는 조그마한 두 개의 칠판이 있다. 하나는 할 일을 기록하는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 새기는 글귀를 적어놓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칠판에는 ‘닦고 기름치고 조이자’라는 표어가 쓰여져 있었다. 35년 전 육군에 복무할 때 무기를 잘 관리하라는 지휘관의 방침이었단다.

“나는 그 말이 좋아서 평생 그 말을 여기에 써놓고 살았어요. 딱 맞는 말이잖아. 그 말은 글을 쓸 때도 적용되는 말이지. 반문학적이고 비천하게 들리지만 실은 아니에요.” 지금 그 칠판에는 ‘救煩無若靜 補拙莫如勤’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이다. ‘번뇌를 없애는 데는 고요한 것만한 것이 없고, 부족함을 채우는 데는 근면함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작업실은 정교한 언어의 직조장이라 할 정도로 수십 권의 사전으로 가득 차 있다. 집필을 위한 책상 외에 가로로 긴 테이블에는 국어사전과 영한사전, 영영사전, 법전 등 예닐곱 권의 대형 사전이 펼쳐져 있다. 수시로 단어의 의미며 용법을 철저하게 확인하며 글을 쓰는 것이다. 이밖에도 2종의 백과사전과 ‘조선왕조실록’ 등 다양한 참고 서적들이 서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네 가지 일만 한다. 바로 “책 읽고, 놀고, 글 쓰고, 술 먹는 일”이다. 그는 혼자서 논다. 한강이 가까워 자전거를 타고 임진각까지 가보기도 하고 달리기에 맨손체조 등을 한단다. 가끔 저녁놀 구경도 하고 망원경을 들고 나가 새들도 보고, 멀리 있는 여자도 본다며 웃었다.

1948년 태어나 한국일보, 시사저널, 한겨레 등에서 27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산문집 ‘자전거여행’ ‘밥벌이의 지겨움’ 등을 펴냈고 현재는 소설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95년 장편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을 발표한 이후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을 발표했다. ‘칼의 노래’는 지난해 100만부를 돌파했고, 지난해 봄 출간한 ‘남한산성’도 50만부 가까이 팔렸다. 주제를 파고 드는 치열함,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문체가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경향신문 62 창간특집/2008. 10. 0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061019255&code=210000 

김훈은 10여년 전 경기 일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길이 좋아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풍륜’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타고 이 땅을 골골샅샅이 누비며 써내려간 기행산문집 ‘자전거 여행’은 그가 소설에만 매진할 수 있는 바탕이 돼줬다. 오죽하면 전북 산골마을의 개들이 자신을 알아볼 정도였을까. 요즘은 근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서 일산에서 임진각을 다녀오는 정도로 만족한다.

- 사진작가 이강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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