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07. 06. 12. 기고문」
나라를 위해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산업전선에 나가 일도 하고 미래의 인재도 낳아 키우는 베테랑 여전사 넷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 달에 한 번 전략적 수다 모임을 갖는 그녀들이 번개팅을 가진 까닭은
'아무래도 내 육신에 큰 변고가 생긴 것 같소. ㅠㅠ'하고 급전을 친 쌍문동 장 여걸 때문이다.
“남 부끄럽소이다만,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 콜 하였소.”
“대체 어인 일이오? 중병에라도 걸린 것이오?”
“그것이 아니고, 낭군님 무서워 집에 들어가기가 겁난다오.”
“설마하니 폭력을?”
“그리 당돌한 남정네는 아니오.
혹여 이제 겨우 불혹인 내가 불감증에 걸린 건 아닌지 그것이 근심이오.
귀가해 식솔들 밥 먹이고 집안 소제하고 아이들 숙제까지 봐주고 나면 몸이 파김치인데,
TV 보며 낄낄대던 낭군이 슬그머니 일어나 욕실로 가는 모습 보면 간이 철렁 내려앉으니 말이오.
다른 집들은 부인이 물을 끼얹으면 남편이 공포에 떤다던데,
이 무슨 망측한 변고인지….”
그러자 독산동 고 여걸, 황망한 표정으로 말허리를 자른다.
“장 언니는 어디 조선시대에서 환생한 모양이오?
그건 불감증이 아니라 방귀 뀌듯 지극당연한 현상이오.
요즘 시대에 허구한날 낭군 기다리며 물 끼얹는 여인네 있으면 나와보라 하시오.
하루하루 사는 게 전쟁이라,
‘내 남자의 여자’는커녕 바닥에 머리만 댔다 하면 코를 고는 마당에 샤워라니오!
산업전선에 있는 대한민국 여인중 9할이 부부관계 땜에 밤을 두려워한다는 통계를 정녕 못봤단 말이오?”
장충동 사는 최 여걸도 가세한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음주가무를 즐긴 뒤
새벽 바람에 들어와 찬 발가락 비비대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낭군입지요.
한껏 무드를 잡아도 마음이 동할똥 말똥인데,
술 취한 돈키호테처럼 무조건 돌진하려고만 기를 쓰니
짜증이 버럭 나 이만기식 들배지기로 방바닥에 고꾸라뜨린 적도 있다오.”
이때 시종 관망만 하던 가회동 오 여걸,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침묵을 깬다.
“그래도 돈키호테처럼 덤벼들 때가 행복한 줄 아시구려.”
“???”
“들입다 책만 파는 낭군이랑 사는 여인의 비애를 아시는지….
밥숟가락 내려놓자마자 아침에 못다 읽은 신문 마저 읽고 광고 전단지까지 훑은 뒤
서재로 직행하면 새벽 두세 시가 되도록 책상 앞에만 붙어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지요.
어찌 좀 여지를 마련할 요량으로 ‘아이들과 잠시 담소라도 나눠주오’ 하면,
‘부인은 나 입신양명하는 게 그리도 아니꼽소?’ 하며 미간을 찌푸리는데,
수도원이 어디 먼 데 있는 게 아닙디다.
아이들 몰래 허벅지 꼬집다 새우잠 든 지 벌써 여러 해.
그러니 업어치기 메치기들 하지 마시고 고매하게 말로들 푸시구랴.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여하튼 부러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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