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시집 -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
自 序 (자 서)
조금씩 내 시 속에서 감성이 사위고 있음을 느낀다. 무디어진 감성은 곧 내가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현실과
생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 하나의 작업을 예비하게 한다. 이제 서서히 敍事 (서사)의 年代 (년대)
가 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감성의 시대가 지난 뒤 오랫동안 散文 (산문)의 時代 (시대)
를 맞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묶여진 것이 이번 시집이다. 이제 한 번쯤 더 이와 같은 세계 속에서 나를 정리
하게 될 것이다. 마치 긴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집을 묶었다. 찬찬히 글을 정리해 준 박기수 군의 도움
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 첫 시집을 만들어 준 고려원에서 다시 시집을 묶게 된 것이
더욱 기쁘다.
1992년 3월
김용범
목선의 가을과 비교문학
比較文學의 강의가 있는 수요일이면 쓸쓸한 시간 강사인 후배 깅응한과 나는 사리에서 저녁 노을을 보며 술
을 마시곤 했다. 마지막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의 노을. 우리가 마시고 있는 두세 병의 소주와 몇 점의 안
주. 몇 드럼의 싱싱한 새우를 내리고 떠나는 작은 목선을 보며 우리의 가을은 좀 더 쓸쓸해질 것임을 나는 안
다. 사리에 가면 우린 반쯤 허물어진 목선이 되곤 한다. 마음의 한쪽이 허물어져 그 속으로 쓰린 파도가 밀리
는, 그리하여 더욱 깊은 개펄이 되어간다. 사리에 가면, 우린 그저 허물어진 노을이거나 목선이 되어 뻘밭에
영원히 갇히는, 큰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목선이 되곤 한다.
섬세한 赤色
홍옥이 먹고 싶었다. 달고 향기로운 果肉을 한 입 베어 물거나, 바지에 사과를 윤이 나게 닦아 아름다운 색감
의 가을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싶었다. 살이 연한 홍옥의 섬세한 赤色을 사랑하기로 했다.
김용범 시집 - 슈베르트 마을의 우편마차
고려원 - 1992. 03.01.
[t-08.04.06. 20210404-1443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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