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봄철에 뛰어든 겨울
아버님께
가는 척 하던 겨울이 과연 역습해왔습니다.
겨울의 심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기다리던 사람을 맞이하듯 조금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철모르는 와공蝸公이,
성급히 고름을 풀던 꽃잎이, 이 눈밭에 얼지나 않는지,
해마다 봄은 피다가 얼은 꽃을 들고 동령冬嶺 넘어 아픈 걸음으로,
늦어서 수줍은 걸음으로,
그렇지만 배달부보다 먼저 오는 것입니다.
이달 초순께든가 영석이 전주로부터 다녀갔습니다.
아버님의 편지 잘 받았습니다.
어머님께서 다소 적적하시겠습니다만 가내 두루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봄철, 가을철은 징역 살기로도 좋은 계절입니다만
이곳에서는 봄 가을이 바깥보다 유난히 짧아서 "춥다'에서 바로 '덥다'로,"덥다'에서 바로 '춥다'로 직행해 버립니다.
징역 속에는 '춥다'와 '덥다'의 두 계절만 존재합니다.
직절直截한 사고,
0X식 문제처럼 중간은 함몰하고 없습니다. (P92)
- 1976. 3. 25.
※ 이 글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일부를 필사한 것임.
신영복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햇빛출판사 - 1988. 0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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