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 문학과 지성사 2018. 05. 25.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 보니 조르바는 벌써 나가고 없었다.
추워서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작은 선반에서 내가 좋아해서 여기까지 가져온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말라르메의 시집이었다.
천천히 마음내키는대로 읽다가 책을 덮었고, 다시 펼쳤다가 결국은 내려놓고 말았다.
그의 시는 핏기도 없고 냄새도 없고 인간의 본질을 비켜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경험한 느낌이었다.
그의 시가 창백한 진공 속의 공허한 언어로 보였던 것이다.
박테리아 한 마리 없는 완벽한 증류수였지만 영양분 역시 하나 없는 물 같은 것,
요컨대 생명이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바다에 이르렀다.
거기서는 빠른 걸음으로 물 가장자리를 걸었다.
혼자 물가를 걸을 때의 심란함이라니!
파도 한 굽이 한 굽이가,
하늘의 새 한 마리 한 마리가 우리를 불러 우리 의무를 일깨운다.
동행이 있어서 둘이서 웃고 떠들다 보면 파도와 새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새와 파도가 말을 해주지 않는지도 모른다.
둘이서 수다의 구름 속을 거니는 걸 보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지도 모른다.
[t-08.03.09. 20220302_16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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