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현진건 - 「고향」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무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민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말도 곧잘 철철 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옥양목 - 생목보다 발이 고운 무명. 빛이 썩 희고 얇음.
"고꼬마데 오이데 데스까?(어디까지 가십니까?)"하고 첫마디를 걸더니만,
도꼬가 어떠니, 오사까가 어떠니, 조선 사람은 고추를 끔찍이 많이 먹는다는 둥,
일본 음식은 너무 싱거워서 처음에는 속이 뉘엿걸다 는 둥,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일본 사람이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짧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까땍까땍하는 고개와 함께 '소데스까(그렇습니까)'란 한 마디로 코대답을 할 따름이요,
잘 받아 주지 않으매, 그는 또 중국인을 붙들고서 실랑이를 하였다.
뉘엿걸다 - 속이 메스꺼워 자꾸 토할 듯하다.
"니상나열취……?"
"니싱섬마?"
하고 덤벼 보았으나
중국인 또한 그 기름낀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띨 뿐이요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어라고 연해 웅얼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뚜우한 - 말수가 적고 묵직하다.
그것은 마치 짐승을 놀리는 요술장이가 구경꾼을 바라볼 때처럼 훌륭한 재주를 갈채해 달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쌀쌀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주적대는 꼴이 어줍지 않고 밉살스러웠다.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덕억덕억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 밖을 내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중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 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주적대는 - 아는 체하며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다.
어쭙잖다 - 비웃음을 살 만큼 언행이 분수에 넘치는 데가 있다.
"서울까지 가요."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나는 이 지나치게 반가와하는 말씨에 대하여 무어라고 대답할 말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기도 싫기에 덤덤히 입을 닫쳐 버렸다.
"서울에 오래 살았는기요?" 그는 또 물었다.
"육칠년이나 됩니다." 조금 성가시다 싶었으되, 대꾸 않을 수도 없었다.
"에이구,
오래 살았구마,
나는 처음길인데 우리 같은 막벌이군이 차를 내려서 어디로 찾아가야 되겠는기요?
일본으로 말하면 기전야도 같은 것이 있는기오?"하고 그는 답답한 제 신세를 생각했던지 찡그려 보았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뺨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나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삐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죄던 눈엔 눈물이 괸 듯 삼십 세밖에 안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10년 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스러운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반감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글쎄요,
아마 노동 숙박소란 것이 있지요." 노동 숙박소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묻고 나서,
"시방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기오?"라고 그는 매달리는 듯이 또 꽤쳤다.
"글쎄요,
무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내 대답이 너무 냉랭하고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외에 더 좋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흠,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의 실마리는 풀려 나왔다.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따른 동리였다.
한 백호 남짓한 그곳 주님은 전부가 역둔토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 땅을 부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역둔토 - 역에 속한 논과 밭
사삿집 - 개인 소유의 집.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 척식 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엔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지인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동척에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료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이 3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후로 <죽겠다, 못 살겠다>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男負女戴) 하고 타처로 유리하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쇠진해갔다.
동양 척식 회사 - 1908년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 기관.
동척 -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줄임말.
남부여대(男負女戴) : 남자는 지고 여자는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新新)하랴. 그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조금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랴.
서간도 - 백두산 부근의 만주 지방으로 압록강 너머 지역이 이에 해당함.
신신(新新)하다 : 사는 것이 넉넉해져 생기가 돌고 새로워지다.
무슨 행세로 적어도 1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풀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망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아홉 살밖에 안된 그가 홀어머니를 보시고 악으로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중
4년이 못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모친까장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죽 한 모금도 못 자셨구마."하고 이야기하던 이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시는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규슈 탄광에 있어도 보고, 오사까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 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했다.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뮌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그렇겠지요.
9년 동안이나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그러면,
아주 폐농이 되었단 말씀이오?"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 만 담만 즐비하게 남았드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는기오,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오?"하고 그의 짜는 듯 한 목은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 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호 살던 동리가 10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서까래 - 마룻대에서 보 또는 도리에 걸친 통나무.
주추 - 기둥 밑에 괴는 물건.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참!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둬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 싶었다.
이윽고 나는 이런 말을 물었다.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하나 만났구마,
단지 하나."
"친척되는 분이던가요?"
"아니구마,
한 이웃에 살던 사람이구마."하고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했다.
"여간 반갑지 않으셨지어요."
"반갑다마다,
죽은 사람을 만난 것 같더마.
더구나 그 사람은 나와 까닭도 좀 있던 사람인데……"
"까닭이라니?"
"나와 혼인 말이 있던 여자구마."
"하아!" 나는 놀란 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그 신세도 내 신세만 하구마."하고 그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나이 두 살 위였는데,
한이웃에 사는 탓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라났다.
그가 열 네살 적부터 그들 부모들 사이에 혼인 말이 있었고 그도 어린 마음에 매우 탐탁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열일곱 살 된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아버지되는 자가 20원을 받고 대구 유곽에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차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이번에야 빈터만 남은 고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그 아내될 뻔한 댁과 마주치게 되었다.
탐탁하게 : 마음에 들어 흐뭇하다.
유곽 - 창녀들이 모여서 몸을 팔던 집이나 그 구역.
처녀는 어떤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20원 몸값을 10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주인에게 빚이 60원이나 남았었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어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 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궐녀 - 그녀. 그 여자.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제3의 여자를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
탕감하다- 빚이나 요금, 세금 따위의 물어야 할 것을 없애 주다.
궐녀도 자기와 같이 10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10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머리가 훌렁 다 벗을졌두마.
눈을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유산 : 무기산의 하나로, 빛도 맛도 없는 끈끈한 액체. 황산의 옛말.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열병 때려뉘고 헤어졌구마."
하고 가슴을 짜는 듯한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그는 지난 슬픔을 새록새록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야기를 다하면 뭐하는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나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자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취흥 : 술에 취해 일어나는 흥취.
볏섬이나 나는 전토(田土)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취흥(田土) : 논과 밭.
※ 이 글은 단편 소설 <고향> 전문을 필사한 것임.
(단편 소설) 고향 - 현진건
(단편집) 조선의 얼굴 -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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