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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의 서재 - 원혜영 <웰다잉 문화운동> 공동대표

by 탄천사랑 2024. 4. 8.

·「월간 국회도서관 2024. 4 ㅣ VOL.519」



 

애서가의 서재
원혜영 <웰다잉 문화운동> 공동대표

책, 살아보지 않은 시대 혹은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창(窓)으로의 초대
한 인간이 변신하거나 창조할 때 꼭 필요한 공간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은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 바로 서재다. 책이 주는 달콤한 평온을 이길 것은 없다. 풀무원의 창업자에서 재선의 민선 지자체장, 5선의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지금은 웰다잉 문화를 전파하는 웰다잉 전도사로 변신한 원혜영 공동대표에게 서재는 미지의 인물과의 만남이 보장된 내밀한 세계로의 초대요,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이 많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오락실’이다. 


어둠 속 등잔불 아래 하루 중 가장 환했던 독서시간 
무게중심이 있는 것은 쉽게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균형감각이 탁월한 정치인’,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 5선을 지낸 원혜영 전 의원을 말할 때 붙는 담백한 수식은 그의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오랫동안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했고 국내 최초로 유기농법을 시작한 풀무원 농장을 운영했던 선친의 뜻을 받들어 풀무원 식품을 창업해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던 원 전 의원은 1992년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재선 부천 시장과 5선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2019년 정계를 은퇴한 후 <웰다잉 문화운동> 전도사로 변신해 인생 2 막을 펼쳐 왔다.
그런 그에게 서재는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다. 전에 가보지 못한 세계나 살아 보지 않은 시대로의 초대이기도 하고, 친숙한 세상의 일부분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창으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사고의 힘을 기른 공간이었던 그 내밀한 세계로의 초대는 어둠을 밝히는 등잔불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부천시, 당시에는 ‘부천군’이었는데 거기에서 국민학교를 다녔어요. 지금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도서관이라 부르긴 뭣하고 책들을 많이 비치해둔 공간이 있었습니다. 책을 빌려볼 수 있었지요. 소년소녀 세계명작 선집이나 위인 전집 같은 책들 위주였어요. 알렉산더 대왕 전기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많을 때는 하루에 두세 권씩 빌려 등잔불 아래서 밤새 읽었어요.” 
그 시절 기쁨에 충만해 드나들던 학교 도서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달리 골몰할 것이 없던 궁핍한 시절, 독서는 더 없이 즐거운 오락이었다. 그가 읽은 책들이 켜켜이 쌓여, 작은 변화로 큰 성장의 문을 열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축적시켜 주었다. 그의 사고에 작은 균열을 낸 첫 번째 인생 책은 그의 청춘을 흔들었던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이후 모든 문제를 보는 시점은 반공 논리, 냉전 논리에 기반한 것이었어요. 그런 중에 이 책은 획일적 시선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각으로 국제관계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이 현대적 고전은 그에게 살아있는 의식을 갖게 했다. 


『관촌수필』, 『호모 데우스』 근원적 물음을 던지게 만든 책에 끌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은 왜 그리 아쉬운지요.”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어쩌면 마음의 줄기가 한 뼘 더 자랐고, 그만큼 잘 살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속절없이 보내 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만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원혜영 전 의원이 꼽는 두 번째 ‘인생 글벗’은 소설가 이문구가 고향인 대천 관촌 부락을 배경으로 쓴 자전적 소설 『관촌수필』이다. 
“관촌이라는 충청도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소설이에요. 책이 우리가 흔히 쓰지 않는 토속적인 충청도 사투리로 쓰여 읽기가 좀 힘들지만 원형의 우리 시골 농촌의 생활 환경과 문화, 풍습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빠르게 사라지는 우리의 옛날 생활 풍습과 문화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책이라서 좋아합니다.” 
지금도 설, 추석 같은 명절이면 통과의례처럼 『관촌수필』을 손에 잡는다. 손때 묻은 책에서 발견하는 건 ‘온고지신’이다. 볼 때마다 새롭고, 그래서 늘 놀라움을 준다. 책을 벗해서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현시(現時)의 울타리를 초월해 현재와 과거, 미래와 영원을 넘나드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꼽는 세 번째 ‘인생 글벗’은 전 세계적으로는 50개국어로 출간되어 1천만 부 이상 팔린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다.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되려고 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요약해놓고 그 뒤에 현재의 과학기술, 특히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많은 실험과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하지요.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 시사점과 논의할 점을 던져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피엔스』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면 『호모 데우스』는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책에는 ‘미래의 역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책을 덮으면서 원 전 의원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근원적 물음을 다시 던졌다. 인생은 끊임없이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임을 새삼 확인하면서 말이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삶을 위한 <웰다잉 문화운동> 
『발상을 바꾸면 시민이 즐겁다』,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55가지 지혜』, 『원혜영의 혁신하라』부터 인생의 스승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한 60년을 기록한 『아버지, 참 좋았다』까지, 원 전 의원은 지극히 사람다운 삶을 고찰하는 자세로 몇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농사꾼 아버지가 남겨 주신 말씀이자 그의 생을 관통하는 일관된 믿음이었던 신념은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웰빙(well-being)이 있다면 웰다잉(well-dying)도 엄연히 존재할 터. ‘잘 사는 것’의 관점에서 바라봤던 ‘삶’은 시간이 흐르며 차츰 ‘잘 죽는 것’으로 옮겨갔다. 
그는 <웰다잉 문화운동>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5선 국회의원의 갑작스러운 ‘웰다잉 전도사’로의 변신은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게 삶을 품위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2019년 시민단체로 출발했고, 서소문로에 사무실도 개소했다. 
“삶을 마무리하는 데 내가 결정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합해 생활문화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유명 인사들과 함께 ‘나이 드는 것’,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같은 주제를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웰다잉 포럼도 주관하고, 정책도 연구하고, 나이 든 분의 ‘생에보’도 만들어 배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기관, 단체 초청으로 전국 강연도 다니고 있습니다.” 
삶의 기류와 무관하게, 혹은 편안함과는 무관하게, 어차피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면 좀 더 명예로운 죽음, 좀 더 값진 삶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잘 죽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어차피 죽는다면 잘 사는 것의 의미 자체가 상당히 축소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웰다잉이라는 것은 자기 삶을 좀 더 값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은 강연 주제와 관련한 책을 즐겨 읽는다.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을 찾는다. 삶의 의미를 온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인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접하다 보면 나의 생과 사 또한 거대한 인류의 역사를 이룬 밀알이었음을 깨닫고 더 잘 받아들이고 마무리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웰빙(well-being)이 있다면 웰다잉(well-dying)도 엄연히 존재할 터. ‘잘 사는 것’의 관점에서 바라봤던 ‘삶’은 시간이 흐르며 차츰 ‘잘 죽는 것’으로 옮겨갔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게 삶을 품위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마침표가 아닌 잘 산 삶에 대한 느낌표 
“웰다잉 운동을 하면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특히 은퇴생활은 무한대의 시간적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에 그럴수록 더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냥 흐르는 대로 맡겨두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자유로움이 아무것도 아닌 생활로 변질되기가 쉽거든요.” 
남은 삶을 잘 준비하고 잘 계획하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에 대한 예의다. 그 중 하나가 ‘버킷리스트’ 작성이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소소한 목표도 얼마든지 좋아요. 꼭 하고 싶은 것을 추려서 써놓고 일 년에 한번, 연말에 새해를 맞으면서 점검하면 항상 새로워질 겁니다. 열 개를 써 놨으면 그 중 한 개도 못 지키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그러면서 새롭게 자극도 받고 또 계획도 갱신할 수 있으니 좋은 거지요.” 
그에게도 올해 새로 추가한 버킷리스트 목록이 있다. ‘여행 자주 다니기’다. 목적지가 해외가 아니더라도, 또 국내 2박 3일이 아니더라도 여행으로 치기로 했다.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소소한 성취를 누리기 위해서다. 
“하루면 어때요? 서울만 해도 갈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궁, 미술관, 박물관, 유명 건축물이나 시설. 이런 것들이 정말 많지요. 우선 당장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장욱진 화백 전시회부터 가보려고 합니다. 시간이 없어 못 간다는 건 핑계예요. 마음만 있으면 어디든 가게 되어 있어요.” 


생각하는 대로 살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생을 마치는 날까지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책의 도움이 절실해요. 제게 조언을 들려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원 전 의원은 좋아하는 글귀로 프랑스의 사상가 폴 발레리의 아포리즘을 꼽았다. 발레리는 누구보다 명확하고, 밀도 높고, 우아한 문체를 구사했고 그의 삶 또한 그러했다. 원 전 의원이 추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 문구를 통해 조금씩 스며들어왔다. 
“생각하는 대로 살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생을 마치는 날까지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책의 도움이 절실해요. 제게 조언을 들려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해 질 무렵 노을로 포근하게 물든 국회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일일 겁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어쨌거나 행복이고 축복이니까요.” 



원혜영 전 의원이 꼽은 '내 곁의 책' 
관촌수필 - 이문구 | 문학과지성사
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 김영사
전환시대의 논리 - 리영희 | 창작과비평사



글 - 임지영. 사진 - 최충식
출처 - 월간국회도서관 2024. 4 ㅣ VOL.519

[t-24.04.08.  20240407-1623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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