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탄천
햇살 좋은 날
봄 햇살이 참 좋습니다.
진달래꽃이 연분홍 꽃잎을 스스로 열게 하는 투명한 햇살입니다.
백목련 흰 꽃봉오리의 눈을 뜨게 하는 맑은 햇살입니다.
제비꽃이 수줍게 몸을 숨기고 있다가 소리 없이그쪽으로 고개를 들게 하는 밝은 햇살입니다.
꽃나무에게 좋은 햇살이니 우리 몸에도 좋은 햇살입니다.
민들레꽃에서 금단추 같은 빛이 뿜어져 나오게 하는 햇살이니
그 햇살을 받고 서 있으면 우리 몸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저도 상사화 초록 잎처럼 햇살이 비치는 쪽으로 팔을 힘껏 뻗습니다.
우리 몸의 골짜기와 능선과 들판과 산줄기가 다 눈을 뜨고 일어나 햇살을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낮에는 그 밝고 화사한 햇살 속에 앉아 냉이와 쑥을 캤습니다.
점심에 국을 끓여 먹을 만큼만 캤습니다.
손에 묻은 흙을 털 때마다 짙은 냉이 향이 툭툭 발등에 떨어집니다.
냉이를 캐다가 고개를 드니 산수유나무가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저도 노랗게 꽃을 피워놓고 서 있는 산수유나무를 웃으며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그렇게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산수유나무에게 지금의 나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싶습니다.
그저 말없이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미풍에 한가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산수유의 마음도 평안한 것 같습니다.
알싸하게 번져오는 꽃향기를 온몸에 묻히며 산수유나무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게 좋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知之者 不如 好之者, 好之者 不如 樂之者)고 합니다.
봄날 만난 꽃과 나무에 대해 많이 아는 것보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아니 좋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꽃과 나무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워야 합니다.
꽃나무만 그렇겠습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좋아야 합니다.
아니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고서는 일할 수 없습니다.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좋아해야 하고 즐겨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냉이국 끓여 점심을 먹고 생강나무꽃 몇 송이 따서 노르스름하게 우려낸 꽃차를 마셨습니다.
꽃차 향은 입안 가득하고, 봄 햇살은 뜰에 가득합니다.
다사로운 봄 햇살 아래 앉아 봄산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은 고요한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하루가 즐겁습니다.
- 도종환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중 '산방일기'에서
탄천 [t-07.06.17. 20210627-183034]
'내가만난글 > 갈피글(시.좋은글.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에 대하여 (0) | 2007.06.20 |
---|---|
후회없는삶 (0) | 2007.06.17 |
이석영-대한민국 상류사회/대저택에 외롭게 바려진 소공녀 (0) | 2007.06.16 |
인생의 오솔길 - 산 고 産苦 (0) | 2007.06.16 |
이애경-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어디서부터 사랑일까 (0) | 2007.06.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