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1 -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어주는 배려
008
결혼은 현실임을 직시하는 것
그는 유독 가을을 탔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쓸쓸한 바람이 불 때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충동에 가슴 앓이를 했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혼자 여행을 다니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떠나고 싶다고 해서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그저 돈을 벌어오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녀 역시 한 로맨틱하던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 이번 가을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어떡하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의 말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찔렀다.
"자기야, 정신 차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배부른 소리야.
자기는 가끔씩 떠나고 싶지. 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떠나고 싶어, 알아?"
휴~하면서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리라 빌었는데, 그 만의 착각이란 말인가.
그들의 신혼은 알콩달콩 했다.
맞벌이를 하면서 단 한번도 다퉈본 일 없이 잘 지냈었었다.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것처럼 행복했다.
그는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저녁식사를 챙겨놓고 마중까지 나가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고,
그녀 또한 종종 전화를 해서 밥은 먹었는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물어보곤 했다.
그랬던 그녀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낭만은 어딘가에 묻어버린 듯, 생활 전사로 거듭난 것이었다.
그녀가 틈만 나면 하는 말,
"내가 하루 종일 애 보느라고 시간이 있는 줄 알아. 정말 힘들어 죽겠어."
아이와 놀 때는 진짜 애보다 더 어린애 같고 철없어 보이는 그녀,
하지만 그에게 잔소리를 퍼부을 때에는 사나운 호랑이로 변하는 그녀,
하루에도 몇 번씩 표정이 바뀌는 바람에 그는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피곤에 지쳐 아이 옆에 쪼그린 채 자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게 사랑보다는 정이구나."
로맨티시스트인 그들 부부가 결혼할 때 어떤 선배가 그랬다.
"결혼 전에는 사랑에 밥 말아 먹고 살 것 같지? 한번 살아봐."
선배는 결혼할 때의 마음을 줄곧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라면서 부부는 정 때문에 사는 거라고 말했었다.
그가 '그럴 리가 없다'라고 반박하자, 선배는 그저 웃었다.
"넌 틀림없이 꽉 붙잡혀서 살게 될 거다. 어쩌면 그게 더 행복 할수도 있어."
이제는 선배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은 사랑에 밥 말아서 먹고 사는게 아니었다.
결혼은, 때로는 쓰디쓴 현실이었다.
슬픈 일이지만 결혼은 현실입니다.
사람은 이슬을 먹고 살지 않습니다. 세끼 식사를 챙겨 먹고 삽니다.
환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결혼은 생활입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6.03. 20210604-18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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