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런딘, 존 크리스텐슨, 해리 폴. -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시애틀 - 월요일 아침
그날도 시애틀은 오늘처럼 춥고 어둡고, 축축한, 그야말로 우울한 월요일이었다.
기상예보도 정오나 되어야 구룸이 걷힐 것 같다고 했다.
메리 제인 라마 제르는 이런 날엔 항상 남 캘리포니아가 그리웠다.
의자에 가볍게 기댄 채로 창밖을 바라보던 제인은 지난 5년간의 시간을 조용히 되돌아보았다.
'정말이지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어!'
3년 전,
남편 댄이 마이크로룰 Microrule 사로부터 파격적인 입사 제의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들의 인생에는 이제 장밋빛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시애틀로 옮기면 제인은 자신도 새로운 직장을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연락을 받고 겨우 4주 만에 그들은 짐을 꾸러 이사를 했고, 아이들을 돌봐 줄 좋은 탁아시설도 찾아낼 수 있었다.
때마침 부동산 시장이 성수기여서 그들의 캘리포니아 집도 신속하게 팔렸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그녀도 시애틀의 가장 큰 금융기관 중 하나인
제일보증 금융회사 First Guarantee Financial의 관리직에 곧바로 채용되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순조로웠다.
댄은 마이크로룰 사의 일을 정말 좋아했다.
그는 집에 돌아올 때면 항상 에너지가 넘쳤으며, 지금 일하고 있는 멋진 회사에 대한,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진보적인 일에 대한 이야기들로 대화를 가득 채우곤 했다.
댄과 제인은 종종 아이들을 재운 후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새로운 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정만큼이나
아내의 하루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댄은 제인의 새로운 직장과 그녀의 동료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했다.
누구든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이들이 가장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낮고 잔잔한 음성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눈빛 속에는 서로의 영혼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예측하여 안전하고 꼼꼼하게 미래를 설계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시애틀로 이사한 지 12개월 만에 댄이 갑자기 동맥류 파열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들은 '유전적 기형'이라고 했다),
댄은 끝끝내 다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내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아무런 준비도,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도 없이 그들에게는 그렇게 영원한 이별이 찾아왔다.
'벌써 2년 전의 일이군.
그날도 오늘처럼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
우리가 함께 시애틀에 온 지 채 1년도 되기 전이었어.'
머릿속에 밀려드는 그리운 추억의 편린들이 제인의 가슴속을 알싸하게 후벼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애써 깊숙이 눌러 두었던 감정의 파도들이 저 밑바닥부터 울컥 솟구쳐 올라왔다.
그녀는 잠시 가볍게 몸을 움츠렸다가 푸르르 털며 자신을 타일렀다.
'제인, 지금은 사생활 따위나 생각할 시간이 아니야.
근무시간이 반도 채 지나지 않았잖아.
더욱이 넌 이 산더미 같은 일들을 오늘 내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지 않니....,'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제일보증 금융회사
제일 보증에서 일한 지난 3년을 통해
메리 제인은 '무슨 일이든 해내고 마는 관리자'라는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다.
그녀는 사무실에 자장 먼저 출근하거나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할 일을 절대로 미루지 않는 분명한 직업윤리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업무를 신중하게 다루는 그녀의 태도 때문에
사실 그녀는 회사 내에서 한편으론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론 적잖이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회사 내 모든 부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처리할 때 반드시 그녀의 부서를 거쳐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녀의 손을 거치면 어떤 일이든지 정해진 시간 안에,
그것도 가장 높은 품질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또한 부하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가장 좋은 상사로 꼽혔다.
항상 아랫사람들의 의견과 관심에 귀를 기울이고
신중하게 배려해 주는 그녀의 태도와 수평적이며 자유로운 토의를 이끌어 내는
그녀의 리더십이 부하직원들로부터 존경과 호감을 불려일으켰던 것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 동료 직원을 위해
그녀가 대신 일을 처리해 주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부장으로서 자기 부서의 생산성을 훨씬 더 항상 시킬 수 있었다.
더욱이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편안한 방법으로 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탁월하게 해내기 위한 궁극적인 긴장을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동료들과 직속 부하직원들은 그녀와 함께 일하는 것을 즐겼다.
결국 메리 제인이 지휘하는 소그룹은 3년 만에 '믿을 수 있는 팀'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회사 3층에는 늘 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문제의 부서가 있었다.
제법 큰 규모의 이 관리부서는
주로 '둔감한, 게으른, 불쾌한, 느린, 황무지같이 스산한, 그리고 부정적인...'과 같은 말들로 묘사되었다.
회사 내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부서를 비웃고 있었고,
세 사람 이상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그들의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회사의 거의 모든 부서들의 업무는 이 3층의 관리부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회사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서류작성 작업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든 직원들은 이 3층 부서와 접촉하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어 했다.
어느 날인 가도 회사의 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3층 부서에서 일어나고 있는 황당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3층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곳의 분위기는 흡사 영안실 같아서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을 금방이라도 빨아들일 듯하다고 말했다.
이때 한 부장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법석을 떨며 들어오더니 자기가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겠지만 내가 3층에서 오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발견한 것 같아!"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후, 제인은 바로 그 3층 관리부서의 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약간은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회사의 임명을 받아들였다.
회사는 그녀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으나,
사실 그녀는 그 자리를 맡는 데 대해 상당히 오랜 시간 고민해야 했다.
그녀는 현재 일하고 있는 부서에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부서의 동료들은 남편이 떠난 뒤 힘겨웠던 나날 동안 그녀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간에 애정과 관심을 나누어주던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제인은 남편의 죽음 이후부터는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도 용기도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악명 높은 3층 관리부서라니.....
사실 다달이 갚아나가야 하는 남편의 병원비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제인은 이번 진급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지금 악명 높은 3층에 올라와 있다.
자신이 2년 만에 이 직책을 맡게 된 벌써 세 번째 사람이라는 사실을 곱씹으면서......,
3층 부서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고 첫 5주 동안, 그녀는 새로운 업무와 동료들을 이해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
그리고 무수한 악평에도 불구하고 3층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부서가 악평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업무 5년 차의 베터랑 밥이 일곱 번씩이나 전화벨이 울리도록 받지 않고 있다가는 급기야 전화선을 뽑아버린다든지,
좀 더 빨리 서류작업을 해 달라고 '귀찮게 구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
마르타라는 여직원이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었을 때,
그녀는 거의 절망이라고 느꼈다.
마르타는 그들의 서류를
마치 '실수'인 것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서류 보관함에 넣어 두는 방법을 주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게실에 들어갈 때마다 누군가가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 것은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공식적인 근무시간이 시작되기 전에는
전화벨이 십여 분씩이나 계속 울려대도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이유인즉슨 '직원들이 아직도 출근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핑계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나마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이러니 3층 부서가 '게으르다'라는 평판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는 없지만,
지금 당장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절박감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매일 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난 후 그녀는 일기를 쓰면서 자기의 상황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제인은 며칠 전에 써 놓았던 일기를 다시 들춰보았다.
--
금요일, 거리는 춥고 우울해 보였다.
그럼에도 유리창에 비친 사무실 내부의 풍경은 마치 바깥 세계에 대해 경의라도 표하는 듯 무서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거기엔 에너지가 전혀 없다.
때때로 나는 3층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선 결혼식이나 아기를 위한 파티 * baby shower 같은 화제들이 필요했다.
* baby shower -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갓 태어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선물로 가져오는 파티
그들은 직장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결코 흥분하는 법이 없었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부하직원은 30명이다.
그들은 짧은 하루의 일을 아주 천천히 수행하며 대부분은 낮은 임금을 받는다.
수년 동안 늘 상 똑같은 방법으로 업무를 수행해 왔고, 이제는 자신들조차 그런 자신을 지겨워하고 있다.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아 보이지만, 과거에 지녔던 마음속의 불꽃을 잃어버렸음이 분명하다.
(만약 이전에 단 한 점의 열정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이 부서의 문화는 사람을 너무나 강력하게 침울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새로 부임하는 사람들도 곧 그 불꽃을 잃어버리게 된다.
직원들의 자리에 함께 앉아 있으면 마치 공기 중에 산소가 모조리 빠져나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숨을 쉬기가 어렵다.
지난주,
나는 우리 부서의 사무원들이 2년 전에 설치된 컴퓨터 시스템을 아직까지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옛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얼마나 더 많은 황당무계한 사실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많은 밀실 작업들이 이와 같을 것이다.
뭐 그리 신이 날 만한 일도 없고, 그저 처리해야 할 서류들만 많을 뿐이다.
그렇지만 꼭 이런 식으로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우리 부서의 업무가 이 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 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의 업무를 거쳐야만 다른 직원들이 고객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가르쳐 줘야 할까?
회사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 부서의 업무는 사실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우리의 업무를 당연시 여기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게다가 우리 부서는 조직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망쳐 놓지 않는 한
회사의 레이더망에 쉽사리 포착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부서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그들이 너무나 일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서 사람들 중에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곳에 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경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만은 아니다.
여러 명의 직원들이 혼자서 아이들을 기르고 있다.
잭은 편찮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있고, 바니 부부는 두 명의 손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가장 큰 세 가지 이유는 다름 아닌 월급, 안정, 그리고 연금을 비롯한 각종 혜택들이다.
---
제인은 자신이 써 놓은 마지막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밀실 작업은 언제나 평생직으로 여겨져 왔다.
임금은 적당했고, 안정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자리가 줄지어 있는 사무실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면서, 그녀는 몇 개의 질문들을 형식화 시켰다.
'나의 직원들이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안정'이라는 것이 하나의 환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시장의 힘이 산업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어느 정도나 깨닫고 있을까?
이 회사가 급격히 통합되고 있는 금융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리고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엔 다른 직장을 찾아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을,
과연 그들은 인식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직원들은 너무 오랫동안 밀실에 방치되어 자신들의 방식에 이미 고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저 주어진 서류들을 작성할 뿐이고,
바라는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 파도가 들이닥치기 전에 정년퇴임을 하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어떻지? 나의 관점은 그들과 어떻게 다른 거지?'
불현듯.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그녀를 다시 현실로 끌어냈다.
그리고 그 전화 통화 직후 60분은 소위 '불 끄는 작업'을 하느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첫 번째 시급한 소방 작업은 중요한 고객 파일이 분실되었는데
마지막으로 그 파일이 있었던 곳이 3층이라는 소문에 대한 처리였다.
그 일이 끝나자마자 다른 부서의 직원 한 명이 이 부서에서의 업무처리가 계속 지체되는 것을 참다못해
직접 3층으로 올라와서는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이 사건으로 인해 적막한 이 3층에 뜻밖의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소란스러운 바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법률 부서의 누군가로부터 온 전화가 연달아 세 번이나 끊어졌고,
결국 오늘 병가를 낸 여러 직원들 중 한 사람이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중요한 프로젝트에 관한 서류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전 중에 일어난 화급한 불을 모두 끄고 나서야
지친 소방관 제인은 도시락을 들고 3층을 벗어나는 문으로 향했다.
5주 전부터 메리 제인은 점심시간이면 회사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직원들이 언제나처럼 회사에 대해 수군거리고,
또 3층 부서에 대해 불평과 한탄을 늘어놓고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불평을 듣는 것은 이제 그녀에게는 일상사가 되어버렸고, 그것이 그녀를 너무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점심시간 동안만이라도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대게 제인은 부둣가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언덕을 걸어 내려갔다.
거기서 그녀는 베이글을 씹으며 바다를 바라보거나,
작은 상점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행객들을 물끄러미 응시하기도 했다.
그것은 평화로운 광경이었고,
퓨젓 사운드(워싱턴주 북 서부의 만)의 바다 내음은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그녀의 유일한 기회였다.
유독성 폐기물 더미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선 그녀가
자기 책상의 전화가 울리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것은 자신의 방을 막 지나쳤을 때였다.
'탁아소에서 온 전화일 수도 있어.
아침에 스테이시에게 감기 기운이 있던데....'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와 네 번째 울리고 있는 수화기를 급히 집어 들었다.
"메리 제인 라미레즈입니다." 숨을 가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메리 제인, 나 빌이에요."
'이런, 이번엔 또 뭐지?' 자신의 새로운 상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상사 빌은 그녀가 3층에서의 직책을 맡는 것을 망설이게 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는 이 회사에서 정말이지 재수 없는 상사로 평판이 나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이런 악평은 당연해 보였다.
그는 늘 명령조로 업무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말을 도중에서 끊어버리기 일쑤고,
프로젝트의 진행 상태에 대해 마치 아버지처럼 권위적인 태도로 간섭하는 짜증스러운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메리 제인, 프로젝트의 미루고 있진 않겠죠?"
"메리 제인,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내가 믿어도 됩니까?"라는 등,
그의 말투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를 다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같은 태도는 모든 부하직원들에게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제인은 지난 2년 동안 세 번째로 이 부서의 부장직을 맡게 된 사람이었고,
그녀는 이제 책임자가 그토록 자주 바뀌어야 했던 이유가
단지 이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빌 또한 문제였던 것이다.
"오전 내내 이사회를 하고 지금 방금 나왔어요. 오늘 오후에 좀 만났으면 좋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 회사의 이사들은 우리가 어려운 때를 직면하고 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 직원이 최선을 대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소.
현 직원들의 좀 더 높은 생산성 창출을 위해서는 어떤 변화를 주어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좀먹고 있는 몇몇 부서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소.
일부 문제 되는 사람들의 사기와 에너지가 너무 형편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열정까지 끌어내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불안감이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회장님이 '활기차고 열정적인 기업의 정신을 어떻게 북돋을 것인가?'에 대한 세미나에 다녀오셔서 그런지
열정이 아주 대단해요.
난 회장님이 3층 부서를 지목한 건 공평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하지만,
어쨌건 그분은 3층 부서가 이 회사의 가장 큰 문제라고 믿고 있는 것 같소."
"3층 부서를 지목했다고요?"
"지목당한 건 둘째치고, 3층 부서를 위한 별명까지 지었더라구요.
어떤 별명인지 상상이나 갑니까?
'유독성 폐기물 더미'라고 부르시더군요."
"유독성 폐기물 더미라고요?"
빌은 그때 회장님의 표정이 다시 떠오르는지 깊게 가라앉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내 부서가 '유독성 폐기물 더미'로 불리는 걸 원치 않소!
정말로 용납할 수가 없소. 부끄러운 일이라고!"
'유독성 폐기물 더미....' 순간, 그녀의 머릿속으로 하치장에 내팽개쳐진 폐기물 더미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요.
그리고 회장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신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냐며 나를 질책했소.
어쩔 수 없이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고 말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신을 이 부서 책임자로 데려왔다고 했소.
회장님은 이 일의 진척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고 싶다고 했지.
그래서 말인데, 이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소?"
울컥, 가슴속에서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왔다.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냐고?! 직책을 맡은 지 이제 겨우 5주가 지났는데?'
하지만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아직은요"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좀 서둘려야 하겠소.
메리 제인, 당신이 관리 부서를 위해 어떤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내가 좀 알아야겠소.
그래서 하루빨리 그들에게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야 해요.
회장님은 우리 모두가 일하는 데 있어서 더 많은 에너지와 열정과 활력이 필요하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어요.
하지만 난 왜 3층 부서에 에너지와 열정이 필요한지 모르겠소.
솔직히 개인적으로 난 관리부서 사무원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한 적이 없어요.
회장님은 아마도 너무나 오랫동안 3층 부서가 회사 전체의 비난거리였기 때문에,
3층만 달라진다면 회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소. 자, 몇 시에 만날까요?"
"두 시쯤 어떠십니까?"
"두 시 반! 괜찮소?"
"그러죠."
빌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짜증스러움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메리 제인, 그냥 하던 일을 평소처럼 하세요."
'정말이지 힘든 사람이야'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내 부서의 상태가 정말 심각한 문제인 건 사실이야.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비유는 정말 불쾌하군.'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그녀는 빌과 미팅을 갖기 전에 잠시 신중하게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다.
오늘 두 번째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면서 그녀의 머릿속은 불길에 휩싸여 있는 듯했다.
언제나처럼 부두로 가기 위해 언덕길로 향하는 대신,
그녀는 충동적으로 정반대 방향인 일 번가의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좀 더 긴 산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유독성 폐기물 더미'라는 말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유독성 폐기물 더미! 다음은 뭐지?
일 번가를 따라 내려가는 발걸음이 다소 안정을 찾으며, 머릿속의 작은 목소리가 또 다른 어조로 이렇게 속삭였다.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는 유독성 폐기물과 같은 침울한 분위기는
제인 너 스스로도 3층 부서에 대해 느끼는 부분이잖아.
그리고 가장 혐오하는 태도이기도 하지 않니?
그래, 어떤 변화든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긴 해...,'
갑자기 긴 머리카락을 홱,
날려버릴 듯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가 그녀의 깊은 생각을 깨웠다.
순간 고개를 든 제인은 놀랍게도 자신의 왼편에 드넓은 시장이 펼쳐져 있음을 발견했다.
충동적으로 선택한 산책로가
그 동안 메리 제인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 도시의 새로운 지역으로 그녀를 이끌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 시장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어린 두 아이와의 빠듯한 살림 때문에 이런 특산물 시장에서 장 보는 일은 피해 왔었다.
병원비를 완불하기까지 검소하게 생활해야 했기에 이런 곳에는 아예 오지 않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신선함과 새로운 호기심에 이끌린 제인은
파이크 플레이스 Pike Place라는 이름의 거리를 따라 시장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는 시장 초입에 있는
한 작은 생선가게 주위에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모두들 한바탕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녀는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심각한 상황을 되새기며 일부러 그 생선가게를 지나쳤다.
그러나 곧 가슴속의 목소리가 다시 이렇게 속삭였다.
'제인,
지금 너에겐 고민을 하기보다 기분 좋게 실컷 웃는 것이 더 필요할 거야.'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저 사람들이 저렇게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걸까?'
그녀는 마음을 돌려 다시 그 가계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바로 그 순간,
생선 상인들 중 한 사람이 가슴이 뻥 뚫릴 듯한 화끈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쳤다.
"안녕들 하세요. 요구르트 드시는 분들!"
그러자 그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축배라도 드는 것처럼 손에 들고 있던 요구르트 컵을 일제히 공중에 높이 치겨올렸다.
'세상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 이 글은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스티븐C.런딘. 해리 폴. 존 크리스텐슨 -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역자 - 유영만
한언 - 2000. 11. 06.
[t-23.09.21. 230921-062626-3]
'자기개발(경제.경영.마케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 2 세계적인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 (0) | 2023.09.26 |
---|---|
인생을 현명하게 사는 지혜 - 자기 수양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0) | 2023.09.24 |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 책 머리에 (0) | 2023.09.19 |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 1장. 起_흔들림 없는 삶을 세우는 인생 내공 (0) | 2023.09.15 |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 책 머리에 (0) | 2023.09.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