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미 - 세계는 지금 이런 인재를 원한다」
외국인 친구들이 생긴 후, 가장 먼저 그들과 나의 차이점을 발견했던 것은 바로 인사말이었다.
“How are you doing?" 또는 "Hi!" 하고 인사를 건네면 그들은 대부분 “Great!"
혹은 "Fantastic!" 이라고 대답을 한다.
하루하루 지루하게 지나가는 일상이 건만, 그들은 항상 가장 긍정적인 언어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한다.
하다못해 날씨가 어떤지를 묻는 단순한 질문에도 "Terrific!" "Gorgeous!"등의 호들갑스러운 대답이 돌아 온다.
어찌 그리 극찬의 표현들이 많은지....,
처음에는 그들의 태도가 정말 의아했다.
도대체 저들은 뭐가 저렇게 좋은 걸까 신기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녕하십니까?' '별일 없으십니까?' 하는 말로 서로 안부를 묻고
상대방도 '네, 괜찮습니다' 혹은 '덕분에 별 탈 없이 지냅니다' 정도로 대답하는 게 보통이다.
영어 표현처럼 '환상적으로 잘 지냅니다' 하고 대답을 한다면
다들 당황하거나 나를 굉장히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외국 친구들의 긍정적인 표현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나는 일에 치여서 힘들고 피곤해 죽겠는데,
친구라는 녀석들은 항상 자기들이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대답하니 은근히 샘도 나고 부아도 치밀었다.
가끔 친구에게 투정도 좀 하고 위로받고 싶을 때는 이런 마음이 더 했다.
내가 그들의 밝은 인사말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
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What's wrong!"이라고 되묻고 한다.
다들 문제없이 환상적으로 잘 산다는데 나만 앓는 소리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Oh! Everything is fine, Great, Thanks!" 라고 응수하곤 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어서,
처음에는 그토록 못마땅하고 호들갑스럽게 느껴지던 그런 표현들을,
자꾸 흉내를 내다 보니 입에 배어서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미소까지 지으며 쓸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나중에는 정말 마음속에서부터 저절로 "Fantastic!" 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글로별 인재들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처럼 간단한 인사말에서부터 드러나는 긍정적인 태도이다.
12년 동안 외국에서 일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통해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훈련받아 왔다.
반만 채워진 물 잔을 보고 '잔의 반이 비었다.(half empty)'라기 보다는
'잔이 반이나 찼다(half-full)'라고 생각하도록 교육 받은 것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이처럼 궁정적이고 진취적이다.
미국의 정치가 케네디의 'Why not?' 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단적으로 전해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바로 ‘후회’라는 말이다.
그들은 한번 결정한 일에는 책임을 지며,
만약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간직한다.
실패마저도 자신의 자산으로 삼아버리는 긍정적인 태도가 생활화 되어 있는 것이다.
절대 ‘내가 왜 그랬을까?’ ‘만약 이러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식의 과거지향적인 후회는 하지 않는다.
불안도 전염된다.
컨설턴트로서 내 전문 분야는 조직전략 Organizational Strategy 이다.
조직전략은 비즈니스의 많은 프로세스 중에서 투자, 생산,
이익을 다루는 다른 분야에 비해 변화와 혁신이 가장 어려운 분야이다.
그 이유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는 사고와 행동에 근본적인 변화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서 하루 아침에 바꾸기도 힘들다.
조직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들이 모여 구성된다.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관이 바르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내놓거나
획기적인 전략이 있다 해도 조직이라는 큰 배가 올바른 방향으로 항해 하기 힘들다.
특히 조직 구성원들 중에 회의론자가 많으면 그 어려움은 극에 달한다.
회의론자들은 매사 위험 요소에만 신경을 쓰고
지나치게 걱정하여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해 내고는 두려움에 빠져든다.
이러한 회의론자들이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은 심각하다.
그들의 걱정과 불안감은 전염병처럼 스며들어 마침내 조직 전체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만연하게 된다.
회의론자들의 이와 같은 성향은 비단 조직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커리어에서도 성공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결정타가 될 수 있다.
맥킨지 샌프란시스코 사무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전에 일했던 부즈알랜 싱가포르 사무소는 반 이상이 동양인이었는데,
그곳은 한국인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고,
동양인도 중국계 미국인 남자 컨설턴트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터라 같은 언어,
같은 문화의 사람들이 무엇보다 그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S 씨가 3개월짜리 단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러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S 씨와는 이미 알고 있던 사이라서 더욱 반가웠고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가끔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벗어나 함께 근처의 차이나타운까지 걸어가 간장과 챠오면 국수에
매운 고춧가루 소스를 잔뜩 찍어 먹으며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함께 풀곤 했다.
자주 만나서 친분을 나누고 싶었지만,
계속되는 출장 스케줄 때문에 그럴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출장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왔을 때에는 그녀의 프로젝트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얼굴은 침울했다.
나는 함께 수다 떨어줄 파트너가 없어서
외로웠냐고 놀리며 농담으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서울로 돌아간 후, 나는 팀 동료들을 통해서 그녀가 그토록 침울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실적 평가 결과가 그다지 좋지 못했던 것이다.
야무지고 빈틈없는 그녀의 실력을 알고 있던 나는 정말 의아했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완벽하게 일을 해냈을 텐데 왜 그런 결과가 나온 걸까?
나는 그녀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한 다른 동료들에게 그녀가 궁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문제는 그녀의 실력이 아니라 태도였다.
모든 일에서 항상 잘못될 경우를 먼저 생각하고 염려하는 그녀의 말투나 행동이 그녀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었다.
매니저로서 그녀의 역할은
어려운 문제 해결을 앞둔 상황에서 팀원들에게 용기와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인데,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사람처럼 비친 것이었다.
자기 할 일은 야무지게 잘 해냈지만,
주위 사람들이 ‘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라는 궁정적인 인상보다는
'저 사람과 함께 일하면 왠지 뭔가 안 풀리는 것 같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한 것이 그녀가 저조한 평가를 받게 된 원인이었다.
사실 같은 한국인으로서 나는 그녀에 대한 평가가 오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처음 외국 사람들과 맞부딪쳐 일할 때
그들이 보이는 ‘할 수 있다’는 식의 저돌적인 태도에 적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사이에서 생활해 본 한국인이라면
이러한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의 태도가 큰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주위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성향들과 비교되면서 우리에게 잠재된 '주저하는 조심성' 이나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전 GE CEO 잭 웰치의 <위대한 승리 Winning> 에서도,
리더는 다른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의 소유자여야 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궁정적인 태도는 자신의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중요한 열쇠가 됨은 물론,
조직 안에서 다른 사람을 이끄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질이다.
이제는 떨쳐버려야 할 한恨과 비관주의
최근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매우 역동적인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제품이 세계를 누비고,
월드컵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강한 에너지가 전 세계적으로 전파를 타고 방영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역사 속에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아직 역사적 상처가 깊게 아로새겨 있고,
자라는 동안 우리의 문화에 깔려 있는 대표적인 감정이 '한'이라고 수없이 듣고 배웠다.
사람들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대한 기억을 더 오래 더 깊이 간직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역사의 상처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대영제국에는 해가 저물지 않는다'라는
긍정적이다 못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 영국인들의 사고방식이나,
서부 개척자 정신으로 대표되는 미국인들의 진취적인 사고방식과 비교해 볼 때,
아직도 일제강점기에 한민족의 기상을 죽이기 위해 일본인들이 심어주었다는
비관주의의 잔재가 우리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 이제 아리랑 고개의 전설은 뒤로하자.
우리에게 '한 많은 오천 년의 역사가 있었다면 그것은 과거일 뿐이다.
과거에 얽매여 비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있다면 잊자.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든 말든 신경 쓰지 말자.
앞을 보고 'Great!'를 외치며 달려가는 세계와 겨루려면 밝은 미래만 생각 하자.
그래서 그 밝은 미래가 우리 것이 되게 하자. (p44)
※ 이 글은 <세계는 지금 이런 인재를 원한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조세미 - 세계는 지금 이런 인재를 원한다
해냄출판사 - 2005. 11. 01.
[t-23.08.08. 220803-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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