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광원 - 사장으로 산다는 것」
자신감의 정체
고구려가 당나라에 망한 뒤, 수많은 고구려인들은 당나라 변방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당나라 장수로 이름을 떨친 고선지도 그런 고구려 유민의 후예다.
그는 당나라 장수로 다섯 차례(740~751)나 대군을 이끌고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 산맥,
톈산 산맥 같은 험산준령을 넘어 서역 원정에 나섰다.
20세기 초, 이 지역을 답사한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 스타인이
'나폴레옹의 알프스 돌파보다 더 성공적인 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대단한 원정이었다.
그가 제2차 서역 원정인 소방률小勃律 원정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해발 4600여 미터의 험준한 탄구령에 이른 군사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추상 같은 장군의 명령에도 꼼짝하려 들지 않았다.
100여 일의 강행군으로 지칠 대로 지친 데다,
공격 목표인 아노월 성을 지키는 적군이 괴물 같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지레 오금이 저렸던 것이다.
그 와중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20여 명의 적군이 백기를 들고 장군 측 진영으로 항복을 해 온 것이다.
적군이 괴물이 아닌 데다 제 발로 항복까지 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군사들의 사기는 단번에 충천했다.
장군은 그 여세를 몰아 아노월 성으로 진격, 성공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것은 장군의 계책이었다.
군사들이 늘어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비밀리에 20여 명의 병사를 차출, 적군으로 변복시켜 항복을 가장하게 했다.
지휘는 명령으로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700년이 지난 1592년 임진년,
조선 전라좌수영,
이해 4월, 왜군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 땅에서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았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고 쏘며, 가는 곳마다 말 그대로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게다가 가면을 쓴 그들의 얼굴은 귀신이나 괴물처럼 괴기스럽기 짝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공포 그 자체였다.
조용하게 전투를 준비하던 이순신의 전라좌수영에
'귀신같은 왜군' 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기가 주저앉았다.
'귀신을 이길 수 없다'라는 흉흉한 말들이 떠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의 왜군이 진영에 접근했다가 모조리 사로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지켜보는 군사들 앞에서 사로잡힌 왜군들의 투구가 벗겨졌다.
순간, 놀라운 탄성이 일어났다.
아군이었던 것이다.
어리둥절해하는 군사들에게 이순신은
'왜군은 가면 때문에 무섭게 보일 뿐'이라며
'별것 아니다'라는 일장 연설로 공포를 무력화시켜버렸다.
물론, '적군 생포'는 이순신 장군의 계책이었다.
KBS 1TV에서 방영됐던 <불멸의 이순신>에 나온 장면이다.
다시 400년이 더 지난 몇 년 전, 미국의 한 TV 토크쇼,
어느 방청객이 쇼에 출연한 할리우드 정상의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에게 물었다.
"당신처럼 자신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도 마음 속으로 늘 불안해요.
기대만큼 연기를 잘하지 못하면 어쩌나.
이러다가 중간에 잘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죠.
하지만 늘 자신감에 넘치는 것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해요.
또 내 스스로 확신을 가지려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할 수 있다'면서(새로운 연기를)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노력하죠.
이런 일들을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있는 것처럼' 행동하던 자신감이 몇 번의 경험을 거치면서
진정한 자신감이 되더군요"
짐 콜린스의 명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를 보자.
콜린스는 책 중간에
자신도 예기치 않게 발견한 '스톡데인 패러독스 stockdale paradox'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원래 있던 말이 아니다.
콜리스가 우연히 짐 스톡데일 장군을 만난 후 만든 신조어다.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하노이 힐턴' 전쟁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미군 최고위 장교로,
1965년에서 1973년까지 8년간 그곳에서 20여 차례의 고문을 당하고도 살아남은 해군 3성 장군이다.
그는 살아나갈 수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콜린스에게 담담히 털어놓았다.
그 느낌이 콜린스의 책에 자세하게 담겨 있다.
우리는 교수 클럽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듭된 고문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스톡데일의 뻣뻣한 다리가
절뚝거리며 연신 원호를 그려댔다.
100미터쯤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내가 물었다.
"(수용소 생활을) 견뎌 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가 말했다.
"아, 그건 간단하지요. 낙관주의자들입니다."
"낙관 주의자요? 이해가 안 가는데요."
나는 정말 어리둥절했다.
100미터 전에 그가 한 말과 배치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말하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오고 크리스마스가 갑니다.
그러면 그들은 '부활절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활절이 오고 부활절이 가지요.
다음에는 추수 감사절,
그러고는 다시 크리스마스를 고대합니다.
그러다 상심해서 죽지요."
또 한 차례 긴 침묵과 더 많은 걸음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건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결국에는 성공하리라는 믿음,
결단코 실패할 리가 없다는 믿음과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규율을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낙관주의자들을 타이르는 스톡데일의 심상을 가슴에 품고 다닌다.
"우린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가지 못할 겁니다.
그에 대비하세요. ……"
짐 콜린스는 '스톡데일 패러독스'의 탄생을 이렇게 소개하면서
'스톡데일과의 산책을
위대한 기업으로의 도약에 관한 내 연구의 일부로 여긴 적은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원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와 만난 후 가진,
자신이 리드하는 팀 내 토론에서 콜린스는 스톡데일의 경험담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결국에는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동시에
늘 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정의를 붙었다.
또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스스로의 삶을 이끄는 경우든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경우든,
위대함을 창조하는 모든 이들의 징표'라고 결론 지었다.
실제로 짐 콜린스가 말하는 '위대한 기업'들은
모두 신념과 확신 그리고 진정한 낙관의 힘을 가진 이들을 리더로 가진 공통점이 있다.
아마 기업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가 빠트렸을 성 싶은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이런 말을 했다.
확신을 가져라.
아니 확신에 차 잇는 것처럼 행동하라.
그러면 차츰 진짜 확신이 생기게 된다. (p46)
※ 이 글은 <사장으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서광원 - 사장으로 산다는 것
흐름출판 - 2006. 01. 10.
[t-23.06.30. 230622-1733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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