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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원-부모님 살아 계실 때/(열다섯)‘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하기

by 탄천사랑 2022. 8. 11.

고도원 -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

 

어머니
어머니의 겨울 코트가 너무 낡고 초라해 보여서 
어머니를 시내로 모시고 가서 새 코트를 사 드려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결국 코트를 사 드리지 못했다.
그때 나는 너무 바빴었다.

어머니의 생신 때 여행을 보내 드려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결국 비핼기표를 사드리지 못하고 말았다.

만약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어머니께 그 코트를 사드리고 
해마다 생신날이면 어머니가 원하시는 곳 어디든지 모시고 갈수만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었다. 


내 어머니는 칠순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고혈압이나 신경통 같은 것 때문에 늘 고생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었기에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날도 어머니는 점심을 맛있게, 많이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슈퍼마켓에 가시다가 쓰러져 어느 중년 남자에게 업혀 오셨는데,  영영 운명을 달리하시고 말았다.

남들은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깨끗하게 돌아가신 것도 큰 복이다.”며 위로해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서럽다.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않은 채로 가셨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처럼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불효막심한 이 아들에게 마지막 효도로 만회할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안타까움 때문만도 아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따금 “나는 점심을 잘 먹고 갈란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어머니의 교회 친구분들은 그것이 어머니의 기도 제목이기도 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배경이랄까, 그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그로부터 네 해 전, 풍을 맞고 일 년 넘게 자리에 누워 계시다 세상을 뜨셨던 것이다. 
손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에서 당신도 고생하고 온 식구들도 고생시키는 것을 내내 지켜보시면서, 
어머니 마음에 다져진 결심이었음에 틀림없다.

어머니의 간절함으로 그 마지막 소원,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때문에도 놀라웠지만, 당신의 죽음조차 자식들의 고생을 덜어주는 
‘자식 사랑’의 연장선에 두고 사셨던 그 극진한 사랑에 나는 진실로 몸 둘 곳이 없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두 분의 돌아가시는 방법 가운데서 아버지의 것이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두루 고생이 됐던 것은 사실이고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남게 됐을 망정,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자식에겐 불효를 벌충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우리를 고생시키지 않고 편히 가셨다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효 아들의 처지에선 벌충의 틈도 주지 않고 가신 데에서 온 충격과 한이 두고두고 남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고 먹을 것, 
입을 것을 나누는 작은 기쁨조차도 제대로 안겨드리지 못한 죄와 한, 이제 와 한탄하니 회한만 더 깊어진다. 

작가후기.
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부대)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네.

《한씨외전韓氏外傳》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돈을 벌면 잘 해드려야지, 성공해서 잘 해드려야지, 하면 늦습니다. 
부모님은 돈을 많이 번 아들, 크게 성공한 딸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고생하며 노력하는 모습 그대로의 자식을 기다리며 행복해하십니다.

저도 이따금 ‘아버님이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이 순간을 어머님이 곁에서 지켜보셨더라면……,’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너무나 아쉽습니다. 
언제나 믿음을 보내주셨던 부모님께 당신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까지 오래 기다려주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p98)

※ 이 글은 <부모님 살아 계실 때>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입니다.


고도원 - 부모님 살아 계실   드려야  45가지

그림 - 김선희 
나무생각 - 2005.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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