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채봉. 류시화 - 작은 이야기 2」
장미의 향기는 그것을 건네주는 사람의 손에도 남아 있다. - 작자 미상
얼마 전에 남편 회사 가까운 곳에 전셋집을 얻어 이사를 했다.
결혼한지 벌써 5년,
자질구레한 살림살이가 한 트럭 가득이었다.
한 해에 한두 번씩 하는 이사여서 짐 꾸리는 데는 이골이 난 터다.
커다란 짐은 미리미리 남편더러 챙겨 달래서 이사하는 날 아침 일찍 싣고 출발했다.
집 앞 공터에 짐을 부려 놓고 들어가 보니,
방이며 부엌이며 아직도 누군가 살고 있는 것처럼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장판이 구멍 난 곳은 꽃무늬 별무늬 종이로 예쁘게 붙여져 있고 정결하게 걸레질까지 되어 있었다.
이사하는 날의 어수선한 기분이 말끔히 가시는 것 같았다.
상쾌한 느낌으로 우선 부엌 살림부터 정돈하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 역시 말끔히 청소되었음은 물론 아궁이의 연탄재까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그런데 선반 위를 보니 예쁘게 접힌 종이 쪽지가 눈에 띄었다.
그 종이쪽지를 집어 펴보았다.
<새로 들어오신 아기 엄마에게.
대강 청소를 했습니다만 남이 살았던 집이니 다시 한번 잘 살펴보세요.
우리가 살 땐 괜찮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구들을 들여놓기 전에 연탄가스가 새는지
다시 한 번 불을 지펴 확인하세요.
모쪼록 온 가족이 건강하시고 복되게 사시기 바랍니다.>
먼저 살던 여자의 편지였다.
쪽지를 다 읽고나서 가슴에 쿵하고 와닿는
이상한 감동 때문에 한동안 종이쪽지를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서 있었다. (p16)
- 임정님 -
※ 이 글은 <작은 이야기 2>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정채봉. 류시화 - 작은이야기 2
샘터(샘터사) - 1997. 11. 25.
'작가책방(소설 > 류시화. 정채봉' 카테고리의 다른 글
然 後(뒤에야) (0) | 2007.06.10 |
---|---|
무엇이 성공인가 (0) | 2007.06.03 |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 이 책을 엮으며 (0) | 2007.04.28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0) | 2007.04.13 |
지구별 여행자 - 영혼을 위한 음식 (0) | 2007.04.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