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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지멘스의 창조 경영…예술서 나왔다

by 탄천사랑 2022. 1. 13.

매일경제 - 2022 신년기획 「이젠 선진국이다 - 기업이 예술 꽃피운다 ①」

조각가들을 후원하는 윤영달 크라운 해태 회장, 롯데뮤지엄 전시를 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회사 로비를 미술관으로 꾸민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후원하는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백건우(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月100만원도 못버는 韓예술가, 생계조차 막막. 1社 1메세나로 소프트파워 키워야 문화 강국

연극 배우 김기명 씨(가명)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무대에 선 날이 넉 달도 채 되지 않는다. 방역조치로 입장 관객 수가 제한되면서 수익을 내기 힘든 소극장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공연 기회가 줄면서 생계가 어려워지자 닥치는 대로 배달과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버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예술가들을 고사 직전까지 내몰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예술인 실태조사'(3년마다 시행)에 따르면 2020년 예술인이 예술 활동으로 한 해 동안 벌어들인 개인 수입은 평균 755만원으로 2017년 1281만원보다 41%나 급감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예술 작품 발표 횟수는 3.8회로 3년 전 7.3회의 절반에 불과했다. 예술 활동 관련 수입이 월 100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는 무려 86.6%에 달했다. '투잡' '스리잡'을 뛰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위기의 예술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곳은 기업이다. 지난해 말 정부 지원이 만료돼 막막했던 추상화가 안상훈은 건설업체 벽산엔지니어링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후원금을 약속받았다. 벽산엔지니어링은 올해부터 3년간 매년 500만원씩 총 1500만원을 안 작가에게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캔버스와 물감 살 돈이 바닥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된 것이다.

 

매일경제신문은 고단한 예술가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한국 문화·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메세나(기업의 문화·예술 지원)를 독려하는 '1사 1메세나' 캠페인을 연중 펼친다. 각 기업이 적어도 한 명의 예술가를 후원하고 협업하자는 취지의 메세나 캠페인은 소프트파워 증대를 통해 선진 한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선진국 기업들은 예술가에 대한 단순 후원을 넘어 경영과 예술의 접목을 시도한다. 독일 대표 기업 지멘스는 '디지털 예술 혁신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자사 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애플 역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중국 베이징에 설립한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본지는 어려운 문화예술계를 돕고 있는 기업들을 찾아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를 게재할 예정이다. 한국메세나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금 총액은 1778억원으로 전년(2081억원)보다 14.6%(약 303억원) 감소했다. 지원에 참여한 기업 수는 전년보다 28.7% 감소했고, 지원 건수도 33.4% 줄었다. 협회가 지난해 3월부터 3개월 동안 국내 500대 기업(매출액 기준)과 기업 산하 문화재단 등 총 69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A1면 이한나. 오수현 기자)

 


 "한국의 샤넬, 미술서 나와" … 롯데타워에 신진작가 판 깔아준 신동빈.

1社 1메세나 시대... 문화강국 뒤에 든든한 기업 지원

"한국의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나오려면 젊은 현대미술 작가를 지원해야 한다."

소문난 예술 애호가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8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현대미술관인 '롯데뮤지엄'을 개관한 후 이듬해부터 국내 신진 작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 디자인의 원천이 미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당대 최고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창조적 영감을 얻었다. 루이비통 역시 솔 르윗, 제프 쿤스, 구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등 유명 현대미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제품 디자인에 반영하며 '완판' 기록을 세웠다.

 

롯데문화재단은 연간 약 200억원 규모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후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 분야와 작가를 찾아 집중 후원하는 게 눈에 띈다. 지난해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전시 '김정기, 디아더사이드'가 신 회장의 후원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다. 독보적인 라이브 드로잉 작가 김정기는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알렸지만 국내 전시를 한 차례도 열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전시회에선 그의 새로운 신작을 포함해 드로잉, 회화, 영상 등 2000여 점을 전시해 호평을 받았다.

 

전시 이후 롯데그룹은 김 작가의 창작활동을 도왔다.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은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원단에 김 작가의 작품을 인쇄해 친환경 파우치 2종과 카드지갑 1종을 선보였다. 예술과 산업의 친환경 협력 사례로 주목받았다. 또 엔제리너스는 김 작가의 작품을 담아낸 머그와 텀블러 등을 선보였다. 김 작가는 이후 지난해 11월 개관한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기념관'에 롯데의 역사 일러스트 작업도 함께하며 파트너십을 이어갔다.

 

롯데, 젊은 작가들 집중 후원. 작품 협업한 친환경 상품 제작

연습실 못구하던 백건우 위해 공연장 비운 일신 김영호 회장

크라운해태 윤영달 `조각 사랑` 해외 미술시장 판로개척 앞장. 두산·현대차그룹도 적극 지원

 

방탄소년단(BTS),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한류 열풍에 국내 기업들 제품이 덩달아 잘 팔리고 있지만, 한국 문화 성장 배경에는 이처럼 든든한 기업의 지원이 있다.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은 예술가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신문화재단이 소유한 서울 한남동 일신홀은 2009년 개관 이래 현대음악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김 회장은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 씨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2007년 독일 몽블랑문화재단에서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받았는데 이때 받은 후원금(1만5000유로)을 진씨에게 전달했다. 현대음악에 대한 김 회장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신홀은 연습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 음악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된다. 재프랑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내한 때마다 연습실로 사용하는 곳이 일신홀이다. 김 회장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하지 못하는 백씨가 한국에 올 때마다 연습 장소를 찾느라 고생한다는 얘기를 듣고 1990년대 중반부터 이곳을 연습 장소로 제공해왔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도 일신홀을 연습실로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공연장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관에 주력하지만 일신홀은 이처럼 수익 일정 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음악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이 자택 내 공간을 설치미술가 이불 작가에게 작업실로 제공한 것은 문화계 몇몇 인사들만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은 15년째 조각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2007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크라운해태 송추 아트밸리 인근 모텔 10여 개를 인수한 뒤 이를 작업실로 개조해 조각가들에게 제공했다. 세계 최대 미술품 거래 장터인 스위스 아트바젤 기간에는 현지로 날아가 집을 빌려 조각가들을 말 그대로 먹이고 재웠다. 현지 네트워크(인맥)를 총동원해 갤러리 대표들과 만남도 주선할 정도로 열정을 불살랐다.

그는 입버릇처럼 "조각계에서도 한류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은 2010년 두산연강예술상을 제정한 이래 2030세대 젊은 예술가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또 공연예술 분야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두산아트센터(DAC) 아티스트'를 통해 작품별로 1억원 규모의 제작비를 지원하고, 무대기술 장비와 연습실 등도 제공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2007년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현대차정몽구재단은 2009년 문화예술 후원 사업을 시작한 이래 총 424억원을 투입했다. 재단은 '온드림 문화예술 인재' 장학사업을 통해 클래식음악·무용·국악 분야에서 재능을 갖춘 중·고교생과 대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A4면 이한나 . 오수현 기자)

 

 

정부지원 끊겨 낙담하던 추상화가… 다시 붓 들게 한 '키다리 아저씨'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안상훈 작가 인연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왼쪽)이 미술 소장품들을 전시한 서울 구로동 사옥에서 화가 안상훈과 함께 웃고 있다. (김호영 기자)


추상화가 안상훈(46)은 지난해 말 정부 지원이 끊어지는 날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201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작가 지원 사업인 '예비 전속작가제'를 통해 후원을 받아왔는데 2021년을 끝으로 종료되기 때문이었다. 화랑이 전속작가를 추천하면 심사를 거쳐 3년 동안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화랑이 매년 각각 1000만원과 500만원씩 지원하는 제도다. 홍보비와 전시 기회도 제공한다.

 

초조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소속 화랑인 갤러리조선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벽산엔지니어링이 2022년부터 3년간 연간 500만원씩 총 1500만원을 안 작가에게 후원하기로 했다는 것. 기업과 예술의 가교 역할을 하는 한국메세나협회가 안 작가와 벽산엔지니어링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메세나協 가교, 3년 장기후원
安 "화가 삶 보릿고개에 단비"
金 "K미술, 중견작가에 달려"

 

예술 애호가로 소문난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75)은 한국메세나협회 회장, 현대미술관회 회장,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장,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조직위원으로 활약하면서 문화예술계를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키다리 아저씨'다.

소장한 미술품이 1000여 점에 이르는 재계 대표 컬렉터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 구로동 벽산엔지니어링 사옥에서 만난 김 회장과 안 작가의 표정이 밝았다.

 

김 회장은

"3년 전 내가 이사장으로 재직한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중견 화랑들과 함께 전속작가제를 시작했다"며

"전도유망한 안 작가가 후원기간 3년을 다 채웠다고 '이젠 안녕' 할 순 없어

  한국메세나협회 '1기업 1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고 후원 배경을 밝혔다.

 

안 작가는
"가뭄에 단비 같은 벽산엔지니어링 후원으로 창작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며
"3년간 후원을 받을 수 있어 작품에 주력할 수 있게 됐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독일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다가 2017년 귀국했다.
모친의 병세가 위중한 가운데 인천문화재단의 입주작가 공모에 선발되면서 귀국을 결심했다.

 

안 작가는
"지원 기간 1년이 끝나기 전 새로운 공모에 참여해 작업공간을 새로 확보해야 한다"며
"작품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3년간 지원해주는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한국메세나협회처럼 작업실도 장기적인 지원을 해주는 곳이 필요하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안 작가는
"작가 입장에서 40·50대는 일종의 보릿고개다.
  20·30대에는 참가할 수 있는 이런저런 공모전이 많지만 마흔다섯이 넘어가면 나이 제한에 걸려서 공모전 참가가 불가능하다.

  물론 '그 나이 됐으면 알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털어놨다.  김 회장도 안 작가의 말에 동의했다.

 

"신진작가 후원도 중요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저는 안 작가처럼 작품세계를 확립한 미술가,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미술이 가야 할 방향을

  오랫동안 고민해온 작가들에게 보다 많은 후원을 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A4면 이한나. 오수현 기자)


매일경제 - 2022.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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