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 루이즈 글릭 - 마음챙김의 시
그럼에도 너는
이 생에서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는가?
그렇다.
무엇을 원했는가?
나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이 지상에서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 레이먼드 카버 / 마지막 조각 글 -
내 여행 수첩 맨 앞장에 적어 가지고 다닌 시다.
이 부적 같은 시 이전에 내 여행 수첩에는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 적혀 있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증언해 줄 것인가?
우리의 작품인가?
철학인가?
아니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
이 시는 20세기 후반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레이먼드 카버(1938~1988)가
폐암으로 투병하며 쓴 시들을 모아 사후에 출간한 시집 <폭포로 가는 새 길>에 실려 있다.
제목의 '조각 글(fragment)' 혹은 '편린'이라 함은
한 편의 시가 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미완의 시를 의미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전체 시 중에서 나머지 부분은 소실되고 이 부분만 남은 것일 수도 있다.
누구의 인생이든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 미완의 생에 완성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사랑'이다.
또한 전체 인생 중에서 다른 것은 다 사라져도 우리 가슴에 남는 '한 조각의 비늘(편린)'은 사랑이다.
열아홉 살에 열여섯 살의 소녀와 결혼해 스물한 살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카버는
갑자기 밀려든 생활의 무게에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짓눌렸다.
생계를 위해 병원 수위, 도서관 사서, 서점 직원, 제재소 일꾼,
화장실 청소부 등 온갖 뜨내기 직업을 전전하며 전쟁을 치렀으며, 더 큰 전쟁은 아내와의 끝없는 싸움이었다.
실업수당으로도 살고 두 번이나 파산했다.
그리고 이때 술과 글을 동시에 시작했다.
인생은 출구 없는 감옥이었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알코올 중독 전업 작가'가 되어 있었다.
20년에 걸친 알코올 중독으로 세 번이나 사경을 해맸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글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글쓰기는 살아남기 그 자체였다.
글을 쓸 장소가 없어 차고에서 쓰거나 병원 수위실에서 밤새워 가며 썼다.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40세에 술을 끊었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편소설 작가가 되었다.
이후 10년이 인생에서 맑은 정신을 갖고 산 유일한 시간이었다.
50세에 카버는 폐암 선고를 받고, 수년간 사랑하던 시인 테스 갤러거와 결혼식을 치른 후,
그녀 곁에서 평온히 생을 마쳤다.
인생을 시작하면서부터 파산자가 되고,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희망은 늘 조롱당하고,
어떤 손에 의해 생매장당한 기분으로 살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카버는 자신이 이번 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비록 인생은 글쓰기와 달라 처음으로 돌아가 고쳐 쓸 수 없지만,
고통과 굴욕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못 산 것이 아니라고.
놀랍지 않은가.
그토록 이른 나이에,
그리고 비로소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고 더 많은 대작을 남길 시기에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 카버는 자신이 이 생에서 원했던 것은
위대한 작품을 남기거나 불멸의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지구 상에서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20세기 스페인의 가장 사랑받은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도 자신은
'사랑받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했다.
어디 글 쓰는 일만인가.
성공을 원하든,
부자가 되기를 원하든,
유명해지기를 원하든,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사랑받기 위해서다.
따라서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지 못한다면 무엇을 이루든 인생에서는 실패한 것이다.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
우리 모두가 원하고 우리의 존재를 지탱해 주는 것이
사랑받는 사람이라 불리고 느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럼에도 너는 이 생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얻었는가?'
시 속의 질문자는 친구일 수도 있고,
임종을 지킨 테스일 수도 있으며,
처음 만난 독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시인 자신이 병상에 누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인지도 모른다
따뜻하면서도 형형한 눈빛을 지닌 카버가 내 앞에 앉아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 나는 충분히 사랑받았다.'고.
자신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가로 카버를 꼽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버에 대해
"한 번밖에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 단 한 번의 만남이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깊은 온기를 남겼다."라고 썼다
하루키는 일본 방문을 앞두고 카버가 죽자 일본어판 카버 전집 출간을 결심했다.
그리고 14년에 걸쳐 카버의 전 작품을 직접 번역해 완간했다.
정말 사랑받은 사람이었다.
카버의 묘비에 적힌 이 시는
다시 사랑받기 위해 분투하는 한 인간을 다룬 영화 <버드맨>의 도입부에도 소개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연극 작품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도 카버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내가 이 생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나는 얻었는가?
- 류시화 - - p69 -
류시화 , 루이즈 글릭 / 마음챙김의 시
수오서재 / 2020. 09. 17.
'내가만난글 > 한줄톡(단문.명언.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태주-아들에게 딸에게 (0) | 2021.04.07 |
---|---|
류시화, 루이즈 글릭-마음챙김의 시/봄이 벚나무에게 하는 것을 너에게 하고 싶어 (0) | 2021.04.05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1/나 자신. (0) | 2021.03.25 |
교보생명-시가 깃든 광화문의 풍경/휘파람 부는 사람 (0) | 2018.09.15 |
일일일책 - 그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0) | 2018.06.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