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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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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by 탄천사랑 2019. 2. 24.

 

이번 북앤비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은 존 버닝햄의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이다.
이미 절판된 책이라 다들 중고 책을 사는 둥 책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나는 마침 도서관에 남아있던 한 권을 운 좋게 빌릴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작가의 그림들과 함께 이미 인생의 후반전을 살고 있는 37명의 유명 인사들의 편지와 글로 엮어져 있었다. 
나이 듦이 주제이며,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 조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섰다고 생각되는 내게는 당연히 호기심이 가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어라~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어느 날 갑자기 혼자 힘으로 양말도 못 신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빨리 걷기가 힘들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된다고 하니 절망스런 기분이 먼저 들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청력이 떨어지고 더구나 음악을 들을 의욕도 떨어진다. 
아직 먼 이야기처럼 다른 사람들한테나 일어나는 일로만 들리지만 
이것이 내게도 올 것이니 이제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영화대본을 쓸 때,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장면은 짧아지고 행동은 빨라야 한다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시간은 왜 그렇게 더디 갔는지, 
얼마나 빨리 나이 들기 원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었나 웃음이 나온다. 
요즘은 왜 이리 시간이 빨리도 갈까? 내가 시간을 쫓아 갈 수가 없다. 
시간은 그 자리에 있을 뿐, 
흐르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하지만 흐르는 게 무엇이 되었든 빨리 흘러가는 것을 어쩌랴..

더구나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이제 더 이상 노인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돈에 가치를 두고 있는 한, 사회복지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긴 자식들조차도 부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이든 사람의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친구나 인터넷에서 조언을 구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마냥 절망스럽거나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노년을 살아본 사람들의 풍부한 지혜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해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고스란히 가진 채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반복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퐁트넬이 여든 다섯의 나이에 내린 결론, 
즉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55세부터 75세였다고 한다. 
은퇴한 약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영국 사람들은 65세에서 74세 사이에 가장 행복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60세가 넘으면서 
사람들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 조직의 요구가 아니라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고, 
그때까지 해 오던 일을 반복하기보다는 전혀 다른 일을 해 볼 수도 있으니까. 
이때의 조직은 가족으로만 되어있는 작은 조직일지라도..

그리고 작은 일에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창밖의 나무, 따뜻한 방과 음악 등에도 감사하며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100세 시대라고 하니 
행복한 시기도 점점 더 늘어나 건강이 허락한다면 행복을 누릴 시간도 그만큼 많아졌다고 보아야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갈망하지만 아무도 나이 들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이제 새해를 맞아 누구나 예외 없이 한 살씩을 더 먹게 되었다. 
이쯤에서 시간이 멈추어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흐르는 시간은 누구나 비껴갈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기에 우리는 마음 비우기를 배워야한다.

나는 최근 몇 년 사이 변화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첫 번째는 마음의 조급함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게 되었고, 
지금 시기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함부로 말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잘못된 말, 
틀린 말을 들으면 그때그때 잡아주고 가르쳐주고 나서기를 좋아 했는데 
이제는 한 발 물러서 관망한다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얘기를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달갑게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그 후에 일어 날 일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지금 이 상태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책길에 만나는 길가의 풀꽃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고 
아침 햇살에 감사하며 친구와 나누는 차 한 잔에도 감사와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젊음이 투쟁의 시기라면 나이 들어서는 이제껏 살아 온 삶에 감사하고 
작은 일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박완서의 ‘일상의 기적’이란 글을 보면,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란 중국 속담과 함께, 
혼자서 일어나고,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 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산책하는 등 그런 아주 사소한 일이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감 가는 말이다. 
너무나 사소하여 감사한 줄 모르고 지나치는 일들이 사실은 엄청난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을..

이번 독서모임엔 모두 아홉 명이 참가하였는데, 
다들 좋은 의견을 내었지만 특히, 
늙지 않는 비법은 바로 내 생활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란 의견이 관심을 끌었다.

무의미한 생활의 반복보다는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행할 때 생활에 활기를 준다는 내용인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현재 이 순간에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더욱 감사할 일만 남게 되니까.. 
나이 들어 찾아오는 약간의 우울함조차도 기꺼이 껴안고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이 바로 오늘임을 즐겁게 알아가야겠다.


광장21 - 2019. 02. 06   
글 - 박선희(문화부기자)
http://www.kwangjang21.kr/news/articleViewAmp.html?idxno=44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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