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1953. 07. 29. 기사전문」
奇異한 戰鬪 停止
當事國 제처놓은 決定書로 終幕
[판문점 조인식장에서 최병우 특파원 발]
백주몽(白晝夢)과 같은 11분간의 휴정협정 조인식은 모든 것이 상징적이었다.
너무나 우리에게는 비극적이며 상징적이었다.
학교 강당보다도 넓은 조인식장에 할당된 한국인 기자석은 둘뿐이었다.
유엔 측 기자단만 하여도 약 100명이 되고, 참전하지 않은 일본인 기자석도 10명을 넘는데,
휴전회담에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한국의 운명은 또 한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되는 것이다.
27일 상오 10시 정각,
동편 입구로부터 유엔 측 수석 대표 해리슨 장군 이하 대표4명이 입장하고,
그와 거의 동시에 서편 입구로부터 공산 측 수석 대표 남일(南日) 이하가 들어와 착석하였다.
악수도 없고 목례도 없었다.
'기이한 전쟁'의 종막다운 기이한 장면이었다.
북쪽을 향하여 나란히 배치된 두 개의 탁자 위에 놓여진 각18통의 협정문서에
교전 쌍방의 대표는 무표정으로 사무적인 서명을 계속할 뿐이었다.
당구대같이 퍼런 융에 덮인 두개의 탁자위에는 유엔기와 인공(人共)기가 둥그런 유기기반에 꽂혀 있었다.
이 두게의 기 너머로 휴전회담대표는 2년 이상을 두고 총계 천 시간에 가까운 격렬한 논쟁을 거듭하여 온 것이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의 세 가지 말로 된 협조문서 정본 9통,
부본 9통에 각각 서명을 마치면 쌍방의 선임 참모장교가 그것을 상대편으로 준다.
그러면 상대편 대표가 서명한 밑에 이 쪽 이름을 서명한다.
T자형으로 된 220평 조인식 건물의 동익(東翼)에는
참전 '유엔’13국의 군사대표들이 정장으로 일렬로 착석하고 있으며 그 뒤에 참모장교와 기자들이 앉어있다.
서익(西翼)에는 북쪽에 괴뢰군 장교들, 남쪽에 제복에 몸을 싼 중공군 장교의 일단이 정연하게 착석하고 있다.
양편의 수석대표는 북면(北面)하여 조인하고
멀리 떨어져 좌우에 착석한 양측 장교단은 동서로 대면하고 조인하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조인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유엔’ 전폭기가 바로 근처 공산군 기지에 쏟고 있는폭탄의 작렬음이 긴장한 식장의 공기를 흔들었다.
원수끼리의 증오에 찬 정략결혼식은 서로 동석하고 있는 것조차 불쾌하다 싶이,
또 빨리 이 억지로 강요된 의무를 끝마치고 싶다는 듯이 산문적(散文的)으로 진행한다.
‘해리슨’ 장군과 남일(南日)은 쉴 새 없이 ‘펜’을 움직인다.
각기 36번 자기 이름을 서명하여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의식에 따르는 어떠한 극적 요소도 없고 강화에 예기할 수 있는 화해의 정신도 엿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전’이지 ‘평화’가 아니라는 설명을 잘 알 수 있었다.
각기 자기 측 취미에 맞추어 장정하고 금(金)자로 표제를 박은 협정부도(協定副圖) 각 3권이 퍽 크게 보인다.
그 속에는 우리가 그리지 않은 분할선이 울긋불긋 우리의 강토를 종횡(縱橫)으로 그려져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곳이 우리나라인가?” 이렇게 의아(疑訝)한다.
그러나 역시 우리가 살고 죽어야 할 땅은 이것밖에 없다고 순간적으로 자답(自答)하였다.
10시 12분 정각, 조인작업은 필(畢)하였다.
‘해리슨’ 장군과 남일(南日)은
최후의 서명을 마치자 마치 최후통첩을 내던지고 퇴장하는 듯이 대표를 데리고 나가버린다.
남일(南日)은 훈장을 가슴에 대여섯 개 차고 있는데 반하여
‘해리슨’장군은 앞 젖힌 여름 군복의 경쾌한 차림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관례적인 기념찰영도 없이 참가자들은 해산하였다.
조선일보 - 1953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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