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지성 8호 - 계란의 갈비」
[201018-153324-2]
예상하지 않은 손님들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 속에 아버지도 함께 계신다.
생전 딸네 방문하시기를 북한 방문하는 것처럼 어려워하시던 아버지가
손님들까지 함께 오시는 일이 어떻게 있다는 말인가!
참나.
아는 얼굴을 비롯하여 처음 보는 분도 따라 들어온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무엇으로 대접을 하나 우왕좌왕 마음이 분주해진다.
일단 점심때라 밥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쌀을 씻어 압력솥에 넣고 가스 불을 켠다.
주방을 둘러보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지만 마땅한 찬거리 없어 등에 식은땀이 난다.
다리도 천근만근 움직일 생각은 없고 마음은 부글부글 없는 재료를 끓인다.
다시 냉장고를 열어 계란을 꺼낸다.
계란찜을 할 요량으로 반으로 갈라 속을 그릇에 담는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밥 냄새를 따라 왔다고 들어온다.
한 손에는 계란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사람들은 벌써 둥근 밥상 주위로 둘러앉고, 밥을 기다린다.
숟가락,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은 채 계란찜은 소금을 넣고 파를 쏭쏭 썰어 넣어야 한다는 훈수도 잊지 않는다.
참 대략 난감이라는 상황이 이렇지 않을까 짜증과 답답함이 압력솥의 증기만큼이나 부슬부슬 피어나고 있다.
참나!
풀어 젓고 있던 계란그릇 다시 집어 들고 손님이 가져온 계란까지 다시 갈라서 그릇에 담는다.
껍질을 버리기 위해 손으로 집어 드는데 생선가시처럼 생긴 뼈에 병아리 모양의 머리와 발이 달려있다.
이렇게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중국 야시장에서 본 부화 전 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에 붙은 껍질은 본적 있지만 이런 뼈는 본 적이 없다.
어디서 생긴 것일까?
이런 계란 먹을 수는 있나?
말도 안돼.
어떻게!
아들과 그의 친구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드럼과 기타로 구성된 악기들을 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친구 한 명이 밥을 달라고 주방으로 오는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자꾸 생긴단 말인가.
저 친구는 또 누구란 말인가.
아들 친구들 중에 저런 부류도 있었나 의심이 드는 와중에 손에 쥐고 있는 계란 가시들이 손바닥을 찌르고 있다.
화드득 놀라 일어났더니 꿈이었다.
머리빗은 손바닥에 뾰족뾰족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청소를 끝내고 잠깐 잔다던 낮잠이 2시간이나 지났다.
그동안 밖의 TV에서는 휴일을 맞아 요리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연예인들의 목소리는 격앙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공기를 환기 시키려 창문을 여는데 집주변에 활짝 핀 아카시아 꽃향기들이 달콤함을 머금고 집안을 침범하여 온다.
아마 좀 전의 꿈은 늘 이때쯤이면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내면의 소리일 것이다.
생전의 아버지는 그리움인줄 몰랐다.
늘 같은 자리에 계시면서 내 생활에 불편함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늘 자던 잠에 돌아가시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며 뵐 때마다 노래하였다.
그래서인지 좌골신경통으로 다리가 불편하셨지만 늘 아침,
저녁으로 마당과 집 주변으로 운동하신다고 찾아 뵐 때마다 말씀하셨다.
그마저도 돌아가실 쯤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뵙지도 못하였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요즘 더 아버지를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얘기를 한다.
무엇을 좋아하셨는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그건 아마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일 것이다.
아카시아 꽃 지고나면 들녘에는 아버지 좋아하시던 찔레꽃이 자리할 것이다.
그 찔레꽃 송이만큼이나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
글 - 정명원
출처 - 수필과 지성 8호 / https://cafe.daum.net/new-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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