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 최재천 스타일」
부부 couple
가장 친한 친구이자 학문의 귀한 동반자.
달라서 늘 자극이 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퉁겨보는 울림판.
음악과 과학의 만남.
- 로베르 주르뎅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 잡는가>에 대한 달콤한 생각.
음악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의 가슴에 크고 작은 감동의 파장을 일으키고
일상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게 하며 때로는 황홀경에 빠져 가상의 시간을 넘나들게 하는
소리의 현상인 음악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훌륭한 음악이란 정말 어떤 음악을 말하는 것인가?
음악이 우리의 품성을 함양할 수 있는가?
음악은 정말 우리의 지적 능력을 높여주는가?
음악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음악에 대한 이 같은 담화는
피타고라스 Pythagoras, 플라톤 Plato,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s와 같은 수학자. 종교가,
철학자 등에 의해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분격적인 분석은 19세기 말 음악학 Musikwissenschaft 이라는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1885년에 출간된 귀도 아들러 Guido Adler의 논문
<음악학의 범주, 방법, 그리고 목표 Umfang, Methode und Ziel der Musikwissenschaft>가 그 시작이다.
이 당시의 음악 연구는 'Wissenshaft',
즉 과학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듯 과학적인 방법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전까지는 음악도 다른 예슬 분야와 함께 감성의 범주로만 이해되어 왔기 때문에
음악의 과학적인 분석은 음악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했다.
당시의 과학적인 연구란
음향학을 선두로 하여 음계, 선율의 구성, 리듬, 화성, 형식 등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음악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우리로 하여금
점차 음악을 단순한 소리의 현상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게 했다.
더불어 음악이 인간의 문화 및 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음악 연구는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문화 연구 등의 분야와 활발하게 교류하기 시작했다.
앨런 미리엄 Alan Merriam의 <음악 인류학 The Anthropology of Music>,
존 블래킹 John Blacking의 <인간은 얼마나 음악적인가 How musical is man>,
다이애나 도이치 Diana Deutsch의 편저 <음악의 심리학 The Psychology of Music> 등이
이 당시 나온 대표적인 저서들이다.
음악과 다른 학문과의 만남은 학제 연구를 통하여
음악 이외의 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새로운 음악학자들의 등장으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아내와 나 우리 두 사람은
이런 학문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시작되던 1970년대의 마지막 해에 만났다.
그리고 1980년대 초에 결혼하여 30년이 넘게 함께 살았다.
그동안 강산이 세 번씩이나 변했어도 우리 둘 사이에 절대로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때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졌더라도 끊임없이 대화하며 살아왔다는 점이다.
우리들의 대화는 거의 언제나 상반된 시각에서 출발한다.
음악 인류학을 하는 한 사람은
음악과 관련된 모든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관계로 그 초점이 언제나 인간이지만,
동물 행동학을 하는 또 한 사람은 늘 동물을 가운데 두고 얘기한다.
인간과 동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해석과 인간도 어쩔 수 없이 한 종의 젓먹이 동물이라는
견해는 끝내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늘 팽팽하다.
우리는 무척 다른 사람이다.
여자와 남자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외의 많은 면에서도 서로 매우 다르다.
책을 읽는 습관만 보더라도 둘은 엄청 다르다.
한 사람은 빨리 읽고, 또 한 사람은 하품이 날 지경으로 느리다.
한 사람은 서문부터 시작하여 끝까지 읽어야 한다.
또 한 사람은 중요한 부분을 찾아 읽는답시고 듬성듬성 읽는다.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대화를 그쳐본 적은 없다.
어쩌면 둘이 많이 다르기에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며 열띤 논쟁을 벌이고 나면
언제나 함께 같은 언덕에 올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얼마 전에는 함께 강연회에 갔다가 저녁을 먹으러 일식집에 들렀다.
흰 모자를 쓴 요리사의 날렵한 칼 놀림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날 강연에서 드러난 몇 가지 주제에 대하여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퍽 열띤 논쟁을 벌였다.
늦은 시간이라 음식점엔 철판 위에다 고기와 야채를 구워주던 요리사와 우리 둘뿐이었다.
계산하려고 카운터에 서 있는데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부부였다는 걸 알게 된 요리사가
우리 둘이 학교 동창쯤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부부라기보다는 가장 친한 친구이며 학문의 귀한 동반자이다.
아직도 국내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학문으로 남아 있는
음악 인류학과 동물 행동학을 전공하다 보니
각자의 학계에는 함께 토론할 만한 동료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서로 상대의 아이디어를 퉁겨보는 울림판이 되었다.
설익은 아이디어가 서로의 뇌 속에 공명을 일으키며 단단해질 때까지
우린 그렇게 열심히 대화하며 30년을 살았다.
지난 2002년에 결혼 20주년을 맞으며 우리는 남들처럼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함께 하거나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 보다 그동안 우리가 늘 해온 일,
즉 음악과 과학에 대해 나눴던 그 많은 아이디어를 함께 정리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의 뒤늦은 주말부부 생활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함께 책을 쓰는 일은 결혼 30주년에나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서로의 관심사를 아우르는 좋은 책을 한 권 선택하여 함께 번역하기로 했다.
2001년 여름 미국에 갔을 때 여러 책방을 뒤지다가
바로 로베르 주르뎅 Robert Jourdain의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 잡는가 Music, the Brain & Ecstasy>를 찾았다.
흡사 우리 둘의 만남처럼 이 책에는 음악학과 과학이 서로 만나 함께 음악을 듣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성격에 대해 정확히 밝히고 있다.
'음악의 과학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읽다 보면 저절로 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음악과 과학 모두에 인간적으로 접근한다.
모든 음악 현상들을 우리와 우리 삶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음악과 두뇌의 관계를 두뇌를 다친 사람들의 얘기와 관찰을 통해 들여다본다.
두뇌 영구의 발달과 한계를 어렵지 않은 용어로 풀어 우리 삶 속에 녹여낸다.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음악의 흐름과 예를 바탕으로
음악에 관한 전문 지식을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부드럽게 들려준다.
대부분의 전문 서적들이 음악의 재료 분석과 기술적 표현에 치우쳐
음악을 그저 단순한 소리의 현상으로만 다룬 것과 달리,
이 책은 음악과 그에 관련된 인간 행동을 문화와 사회라는 상황 안에서 설명한다.
'최초의 공식 음악회가 열린 것은 언제였을까?'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최초의 지휘자는 누구일까?'
'지휘자가 단원들을 등지고 청중을 바라보며 지휘를 하던 것은 언제까지였을까?'
'천재로 알려진 작곡가들의 지능 지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너무나 폭이 넓어 때로는 산만하다 싶을 정도인 저자의 지식과 호기심은
이 같은 대중적인 질문과 답변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어느새 음악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한다.
한마디로 '들리지 않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우리에게 선사하는 책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키츠 John Keats는
'들리는 멜로디는 달콤하지만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 더욱 달콤하다'라고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음악이 달리 '들릴' 것이다.
끝으로 종종 함께 책을 읽어가며 끝도 모를 대화를 나누는 엄마 아빠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곤 하는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 이언이에게 이 책을 건넨다.
엄마 배 속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같이 엄마가 연주하던
오르간 소리를 듣고 자라서 그런지 음악을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아이이다.
"이 책은 바로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란다. 사랑한다. 이언아." (p40)
※ 이 글은 <최재천 스타일>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최재천 - 최재천 스타일
명진출판,사 - 2012. 07. 12.
구리 [t-14.02.02. 20231117-081431]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호성-오늘의 상처를 내일은 간증하라/탈무드에는 (0) | 2015.02.02 |
---|---|
노엄 촘스키-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2판) (0) | 2014.05.07 |
최재천 스타일 - 최재천이 말하는 최재천 스타일 (0) | 2013.11.29 |
신은근-만남/아집을 벗는 일 (0) | 2013.05.19 |
최진기-백치를 철학자로 만드는 Royal-Road/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0) | 2010.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