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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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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저자 이의수가 말하는 40대 남자들 이야기

by 탄천사랑 2012. 4. 7.

「일요주간 - 2012. 04. 02.」


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남자들이 가장 많이 죽을까?
지난달 15일 출간되어 현재 비소설부문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의 저자 이의수. 그는 남성사회문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성들의 마흔 이후 30년을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써드에이지(Third Age)전문가이다. 써드에이지 퇴직 남성의 퇴직준비교육이 성공적 노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로 평생교육박사학위를 취득 했다.

이 소장은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의 <찾아가는 아버지 교육>프로그램 ‘아버지, 행복건축가’를 개발한 것을 비롯해 각종 관공서와 기업에서 행복 리더십과 아버지와 남성들을 위한 강의를 하고 있다. 40대 남성들이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딛고 일어서도록 이 땅의 남자들이 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도록 돕고 있다.
<일요주간>은 지난달 26일 이 소장을 만나 우리시대 40대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책 제목이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인데 왜 하필 마흔인가.
마흔이라는 단어는 40이라는 나이가 아니라 30대에서 60대 초반까지를 상징하는 단어다. 그래서 ‘중년이다’하는 느낌보다 ‘마흔이다’하는 느낌이 삶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30대에게는 내가 딛고 서야할, 곧 다가올 나의 미래이며 40대에게는 내 인생의 정점에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바라보는 전망의 시점들, 새로운 설계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 50대 60대에게는 내 인생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출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온 거리를 되돌아보고 그 거리가 얼마나 어긋났는지 얼마나 더 나아갔는지, 인생을 회고해 보고 새로운 설계를 해볼 수 있는 그러한 시점이 바로 마흔이 아닌가. 마흔이라는 것은 숫자 40이 아니라 중년의 상징언어 인 것이다.

-책을 쓰면서 어떤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했는가.
30대들에게는 다가올 인생의 미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사회는 모델이 없는 사회다. 누구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멘토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런 멘토링이 가능한 책이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가 살아온 길을 보여주고 가이드를 해주면 좋은데 그 동안의 한국사회는 개발과 성장은 이루어 졌지만 이끌어 줄 사람은 없다.

40대들은 맞벌이 부부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4~50대 맞벌이 부부. 지금 현재 직장에는 맞벌이 부부들이 많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하고 자식들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살았는지. 왜 부부가 직장에 시달리며 무엇을 실현하기 위해 달려왔는가.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기위해 달려온다고 했는데 진정한 행복을 우리는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행복이라는 목표점이 있는데, 이것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발견되고 있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4~50대 맞벌이 부부들이 지나온 삶을 회고해 보고 다시 새롭게 전망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4~50대들은 서로가 서로의 삶을 모르고 있다. 무지하고 무관심한 것이다. 자신의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위로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위로가 공감이 없는 부부가 4~50대 부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맞벌이 부부는 전사나 마찬가지다. 전사들이 전쟁터에 나가고 아이들이 집을 지킨다. 과연 이러한 것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삶의 의미를 뒤돌아보자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뒤돌아보고 다시 한 번 재정비를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20대. 20대가 모르는 것들이 있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부모의 삶에 어떠한 좌절이 있었는지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그것을 모른다. 서로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런 분이셨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기억나는 것은 고3때 스트레스 준 것, 대부분 보면 청소년기에 겪는 갈등들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게 거리감들을 만들어 놓는다. 세대차이 같은 것들... 차이로 갈등할 기회만 있었지 서로 이해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20대에게는 부모의 세대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이해하게 해주고 30대들은 가까운 나의 삶의 미래를 보게 하고 40대는 ‘hear and now’ 현재의 모습인 것이다.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원하던 반응들인가.
그렇다. 책을 통해 무언가를 가르치려한 것이 아니다. 자기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존중하길 원했다. “아! 나는 해 볼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하는 자신감.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현재 비소설부문 E-book판매율 1위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태블릿 PC를 쓰는 3~40대의 중년들이 많이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삶에 대한 관심들이 높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치유하는 세 마디가 있다, “맞아맞아!”. “맞아?” “ 맞아맞아!” 누군가 나를 지지해줄 사람있다는 것. 또 하나 “괜찮아!”갑자기 내 인생이 우울할 때 누군가 내게 와서 “괜찮아괜찮아” 해준다면 큰 의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와서 “다 니덕이야”라고 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이런 이야기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너 틀렸어가 아니라 맞아맞아. 우리는 삶의 이유를 많이 찾는다. 근데 세상을 바꾸려고 세상을 살지는 않는다. 내가 세상을 살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바꾸려고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글을 꾸준히 쓰다가 보니까 책이 되었고 이 책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의도한 삶보다 자연스러운 일상이 내 삶에 사건들을 만들어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비교를 해본다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한다. 20대의 아픔과 40대 중년의 아픔은 다르다. 20대에는 가방이 불러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그 가방을 계속 들고 다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아픈 것은 좌절, 실패감, 절망감들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들. 다시 시도해 볼 수 없는 내 인생의 희망 리스트들 이러한 것들이 힘들게 하는 것이다. 20대에는 책임이 없다. 하지만 40대는 책임과 의무라는 자신이 벗을 수 없는 올무가 인생에 드리워져 있다.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택한 이유는.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사례를 쓰기보다는 그냥 공감하고 싶었다. 현대의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다. 이런 생각해보지 않았나? ‘이 지하철 안 에는 나와 같은 마음과 생각으로 지한철을 탄 사람은 몇 사람이나 있을까?’ 세상은 나 혼자 고생스럽고 나 혼자 힘든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서점에서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책을 가슴에 꼭 안고 갔다더라. “아! 너도 나와 같구나” 하는 공감. 이 단순한 표현이 인생의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나만 격고 있다는 비참함 이러한 것들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써드에이지(Third Age)가 무엇인가.
인생은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퍼스트에이지(first Age), 세컨에이지(Second Age), 써드에이지(Third Age), 폴스에이지(Fourth Ahe). 1단계는 출생과 성장 학업에 대한 단계. 2단계는 획득과 성장의 단계. 보통 25~40까지다. 그때는 처음으로 직장을 가지고 일을 하고 내 수입이라는 것을 가져본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해나간다. 그래서 40에서 30년 그것을 써드에이지라고 한다. 제2의 성장과 발전을 가져오는 시간. 중년에는 인생이 가져다준 경험과 힘이 있다. 지금부터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주도적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느냐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포함되어 있는 부속품 같은 삶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내 삶의 진정한 주인공으로써 자리를 잡고 있느냐 하는 것. 그래서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신을 성장시키고 그다음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는 시기. 그게 바로 써드에이지라는 것이다.

가장 긴 시간 가장 왕성한 성장을 하는 시간. 폴스에이지는 성공적 노후, 바로 노후를 누리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지금까지 가장 큰 문제점은 남자들은 일 하는 것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남자들이 가장 많이 죽느냐.

인정받기 위해 살아왔던 삶이 무너지면서 좌절이 오고 결국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부분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발견이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없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에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노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남자들의 우울증과 자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써드에이지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동안 미국사회를 오가고, 미래학과 사회에 관한 책들을 보며 한국 사회 가정들을 연구하면서 ‘한국사회가 이렇게 흘러 가겠구나’ 라는 나름대로의 전망을 하게 된 것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내가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거부하고,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도 보면 내 인생에 행복발전소라는 것이 있다. 가족관계, 결국은 가정 안에 인생의 성공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는 부담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고 자녀들은 불편을 가지고 살아간다. 부모가 내 삶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부담을 안고 산다. 본인이 자녀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부담을 안고 산다. 이제 중년들이 이 책을 보고서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했으면 좋겠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이야기 하면 되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비가 오는 날씨를 바꿀 수는 없다. 비가 오는 날씨는 바꿀 수 없지만 비가 오는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우산을 쓰고 있으면 비가 안 맞듯이...

-<찾아가는 아버지>교육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그 동안 가정과 관련된 일을 쭉 해오면서 남성과 아버지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사회의 경제개발과 함께 무너진 것은 아버지의 권위다. 건물은 높게 섰는데 아버지들의 권위는 무너졌다. 권위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권위 있는 아버지 그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건물은 높이 올라섰는데 아버지는 그만큼(건물이 높이 선만큼) 땅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다. 아버지가 없는 사회, 아버지가 없어도 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예전에 TV프로그램 중에 나온 이야기다. 집에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근데 아버지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방송을 본 네티즌이 아버지는 냉장고에 먹을 것을 채워주고 강아지의 사료를 사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랬었다. 아버지 없는 가정이 이미 만들어 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정체성을 가르친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우리는 아버지의 정체성을 모른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녀에게 어떤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유가 아버지의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모른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더 많은 인생공감과 40대들의 좋은 멘토로, 위로자 역할, 격려자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종이는 재생공장이 있다. 이것처럼 지쳐있는 40대들, 남자들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리플래시하고 리뉴얼해주고 싶다. 인생을 리뉴얼하다보면 인생의 매뉴얼이 보인다. ‘개혁’이나 ‘혁신’... 바꾸지 말라는 이야기다. 있는 것을 조금만 변경하면 된다.

나는 이 책이 인생의 본질을 회복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화려한 성공을 쫓아 왔다면 이제는 일상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성공에 화려함이 우리의 목표였다. 이제는 일상 일상의 즐거움, 그 평범함... 그 평범함을 오히려 회복했으면 좋겠다.


글 - 박지영기자  
일요주간 - 2012. 0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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