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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단편글(수필.단편.공모.

미끼와 고삐 - 실험 부부

by 탄천사랑 2008. 12. 22.

·「조선 - 미끼와 고삐」

 

 

실험 부부
세상 사람들의 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결혼식이라는 것을 치르기는 하지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처럼 
한 일 년 실험적으로 살아보고 그 다음의 일은 그 다음에 결정하자고 합의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결혼식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신혼 여행같은 것은 스케줄에 없었다.
결혼식에 관해 이것 저것 의논하는 가운데 신혼여행에 관해서도 물론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었다.
"신혼여행을 어떻게 한다?"  내가 말을 끄집어내자 미연은 잘라 말했다.
"어떡하긴, 생략하는 거죠."
"그래도 미안해서 말이야."
"미안해 할 것 없어요.
 우리가 뭐 다른 사람들처럼 정식으로 결혼하는 거유? 
 한 일 년 살아보고 나서 재계약을 맺을 건가 말 건가 결정하기로 한 실험 부부잖아요?"
"젠장맞을, 그렇지 참."

그런데 결혼식을 이삼 일 앞두고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미연 쪽의 친척 어른이 결혼 선물을 했는데 그것이 이박삼일 간의 워커힐 신혼부부 쿠폰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신혼부부 쿠폰이라고 부르는지 티킷이라고 부르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아무튼 우리에게는 너무 경이로와서 황당무계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워커힐 같은 초특급 호텔에서 두 밤씩이나 잘 수 있다는 게 도무지 꿈만 같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침, 저녁 두 끼씩 모두 네 끼의 식사권이 붙어 있고,
퍼시픽인지 아틀랜틱인지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으로 치면 초호화 극장식 식당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와 함께 쇼까지 구경할 수 있는 정말 어리둥절할 만한 선물인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이건 우리 결혼식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잖아?"

내가 입을 열자 미연도 말했다.
"글쎄 말이에요.팔아서 돈으로 가질까?"
"어디다 팔지?"
"그것도 그렇네요."
"그 어른이 우리가 한 일 년 만 살아보고 나서 헤어질 신혼부부인 줄 모르는 모양이지?"
"모르니까 이런 걸 선물로 주셨죠!"
"이러면 어떨까? 그 어른한테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그걸 반납하는 거야. 현금으로 달라지 뭐."
"뭐예요? 그럼 당장 아버지 귀에 들어가 결혼식도 취소예요."
"참 그렇겠군. 

  그럼 할 수 없이 가긴 가야 하는데, 그러다가 남들처럼 우리도 정식으로 부부가 되는 게 아닐지 몰라..."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결혼하기 전에도 일 주일이 멀다 하고 싸웠는데 함께 살아봐요?
 일 년이나 제대로 버틸지도 의문이에요!"
"맞아, 아무튼 그건 공짜로 생겼으니 버릴 수는 없고 흉내는 내고 봐야지 뭐"

그리하여 우리들은 하는 수 없이 워커힐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합의를 보았다.
마음속 깊이는 그런 황홀한 선물을 주신 그 분에게 끝없이 감사하면서도 입으로만 그렇게 나불거린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자 우리들은 돗되기 시장 같은 예식장을 빠져 나왔다.
신랑, 즉 내 쪽의 양친이 모두 작고했으므로 폐백도 생략했다.
식당에 음식을 마련하고 하객을 모시는 대신 입장할 때 답례품도 나누어 주었으므로,
근처에서 어른거리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빌린 승용차를 타고 곧바로 대낮에 워커힐에 도착했다.

방금 결혼식을 치르고 달려온 합법적인 신혼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신혼부부 쿠폰까지 소지한 떳떳한 남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부끄러워 프런트의 서기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대낮에 여자와 함께 숙박 시설에 투숙한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떳떳하지가 못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연은 달랐다.
소매치기처럼 자꾸만 그녀 뒤에 숨는 나를 가리고 선 채 아주 당당하게 쿠폰을 내놓고 체크인 절차를 밟았다.
보이를 따라 방으로 갈 때도 사정은 비슷해 나는 뒷전에서 어물거렸다.
보이에게 팁을 주어 돌려보낸 다음 미연이 나를 비난했다.
"왜 바보처럼 뒷전에서 그래요? 우린 이제 합법적인 부부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실험 부부잖아!"
"그런 걸 가슴에 써 붙였어요? 다른 사람들은 알 턱이 없잖아요?"
"그렇군."
"결혼식을 올리더니 바보가 됐나 봐. 좀 떳떳하게 구세요"
"맞아. 자, 그럼 우리 떳떳하게 뽀뽀 한 번 하자"

나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했다.
그녀의 입술이 전과 달라진 것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새롭고 떨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호텔의 시설은 너무도 훌륭하고 쾌적했다.
워커힐 신혼부부 쿠폰 같은 특별한 선물이 아니었다면 평생 구경하기도 힘든 숙박 시설이었다.
아니, 먼 훗날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결혼식 끝내고 당장은 우리들이 신혼살림을 꾸리기 위해 얻어 놓은 셋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녀와 내가 각각 십만 원씩 출자해서 얻어 놓은 M동의 그 두 칸짜리 궁상맞은 전세방으로.

여장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아무튼 여장을 풀고 우리들은 방을 나와 워커힐 이곳 저곳을 구경하려 다녔다.
미연이 워커힐 투숙에 관한 지식을 이것 저것 갖춰 왔으므로 우리들은 별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다.
셔틀을 이용하여 과다한 팁을 뿌린 잘못 밖에는.

그런데 우리들은 셔틀을 이용할 때마다 택시 요금을 지불하듯이 팁을 뿌린 것이다.
워커힐에 가면 셔틀이라는 것이 있는데 팁을 조금 주는 것이 좋을 거라는 

경험자의 충고를 따랐을 뿐인데 나중에는 셔틀 운전기사까지 송구해 어쩔 줄을 몰랐다.
처음 탈 때 운전기사와 얼굴을 익히기 위해 한두 번 주면 좋을 거라는 충고를 잘못 알아듣고 
마치 산유국의 왕자처럼 호기를 부렸다고나 할까.

결혼식 때는 말짱했던 날씨였는데 그날 저녁부터는 비가 내렸다.
봄비에 촉촉이 젖고 있는 창밖 풍경은 멀리 한강까지 이어져 있었다.

지난 수년 동안 헤아릴 수도 없이 싸우고 그 때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는 했던 연인들이 
막상 공동생활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일 년쯤 살아보고 나서 뒷일을 의논하자고 합의했던 실험 부부도 
그 때까지는 우리 나라 최고 수준의 호텔인 워커힐의 빈객이 되고 나서 생각이 달라진 것일까.
너른 침대에 나란히 누운 그녀와 나는 우리가 실험 부부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런 데서 이렇게 평생 둘이 살았으면 좋겠죠?"
"그래. 우리 열심히 노력해서 이런 집 짓고 살자."

첫날 밤인지 둘째 날 밤인지, 퍼시픽인가 아틀랜틱인가에서 우리들은 평생 처음 먹어보는 
풀코스의 양식과 함께 역시 평생 처음 구경하는 쇼도 보았다.
지금이야 쇼의 본고장인 파리의 리드 쇼도 구경해서 눈이 사뭇 높아졌지만, 
그 때 워커힐 쉐라톤의 황홀한 쇼무대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녀와 나는 게임 룸에서 슬럿 머신과 놀기도 했다.
수박 세 통이 나란히 떠오르는 잭폿을 뽑지는 못했지만 한동안 레버를 잡아당기다 보니 
코인이 투자한 돈의 세 배가 넘었다.
"더 해봐요"
"아니야. 신혼여행까지 와서 이 녀석에게 돈을 털리면 평생 재수 없다고"

나는 코인을 도로 바구니에 담아 돈과 바꾸었다.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짓이었고, 미연도 덩달아 즐거워했다.
비는 그 이튿날에도 내렸다.
워커힐 쉐라톤 구내가 아무리 넓어도 젊은 남녀를 이박 삼일씩이나 가두어 두기는 너무 비좁았다.
"우리 영화 구경하고 올까?"

내가 제안했고, 신부도 대환영이었다.
그 즈음 국제극장에서는 '화녀 火女'가 상영 중이었다.
미연은 감미로운 애정물인 외국 영화를 보고 싶어 했지만 나는 '화녀'를 고집했다.
실험 부부에게 감미로운 애정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전 같았으면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을 견해 차이였지만 어쩐 일인지 미연이 다소곳이 내 주장을 따랐다.

그런데 매표구 앞에서 줄을 서 있다가 우리들은 엉뚱하게도 내게는 친동생, 
미연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시동생과 마주쳤다.
그 즈음 아우는 군에 복무 중이었는데 형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핑계로 며칠 휴가를 얻은 것이다.
"어떻게 된 거예요, 형?"
"뭐가?"
"그렇게 갈 데가 없냐고요?"
"글쎄 말이에요"

동생과 헤어진 미연과 나는 다시 워커힐로 돌아왔다.
신혼여행 마지막 날 밤.
이제 날이 밝으면 M동의 그 가난한 신혼부부 보금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새로 도배도 하지 못한 우중충한 방.
비가 오면 연탄 화덕까지 물이 뿌리는 달아낸 부엌.
그리고 버스 정류장으로부터 집까지의 진흙탕 길.....
그런 곳에 그녀에게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야 하는 아낙네의 생활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고,
내게는 한 입을 해결하기에도 힘에 겨웠는데 
이제는 그것의 두 배를 해결해야 하는 결코 가볍지 않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남가일몽이랬던가.
워커힐의 꿈같은 이박 삼일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것이다.
"우리 여기 오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침대에 나란히 누운 뒤 미연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이 돈이면 우리가 한 달을 살고도 남았을 텐데....,"

딴은 그랬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미연의 눈앞을 막아선 암담한 내일이 내게도 시꺼먼 형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함께 암담해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그녀를 위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왜요?"
"돈이라면 이제 미연이 귀찮아 할 만큼 많이 생길 테니까"
"어떻게요?"

혹시나 싶었던지 미연은 두 눈을 반짝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처럼 나는 내가 그녀에게 가난한 애인이라는 사실에 관해 슬퍼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어금니를 깨물며 대답했다.
"우선 내년 봄에 삼백만 원이 손에 들어올 걸?"
"정말"
"이 신부가 어디서 거짓말만 듣고 살았나?
 두고 보라고. 내년 봄에는 틀림없이 삼백만 원을 따서 미연이 가슴에 안겨줄 테니까"

삼백만 원은 그즈음 어떤 신문사에서 모집하고 있는 장편소설의 상금이었다.
우리가 세 든 집이 통째로 백오십만 원쯤 하니까 그런 집을 두 채나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나는 그 돈을 딱지치기 해서 따듯 딸 작정인 것이다.
이미 단편소설을 써서 문단에 진출한 실력인데 노력만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않는가.
미연도 기대하는 눈치였다.
"원고 정리는 내가 해드릴게요"
"그럴 거 없어.
 미연은 미연이거나 쓰라고. 아직 열 달이나 남았으니까 나 혼자도 충분히 해낼 수 있어"
"아네요. 원고 정리는 내가 하고 그거 상금 받으면 반씩 나눠 가지고 헤어져요"
"뭐라고?"
"우리 일 년 만 살아보기로 한 실험 부부잖아요?"

이튿날 우리들은 애석하지만 워커힐에서 철수했다.
수유리 미연의 친정에 들러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M동으로 돌아온 것은 밤 늦게였다.

그날 밤까지도 비가 왔으므로 그녀와 나는 진흙탕 길에 발목까지 빠지며 보금자리로 돌아왔고,
돌아와 보니 처량하고 을씨년스러운 공간이 입을 벌리고 우리들을 맞이했다.

그랬다.
신혼여행이란 천국으로부터  어느덧 축축하고 궁상맞은 현실로 되돌려진 것이다.
펌프로 자아올린 우물로 발을 씻고 방으로 들어가 나란히 앉은 그녀와 나는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다.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신혼 생활의 시작이 너무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조금 뒤에는 미연의 눈에 눈물까지 글썽 해졌다.
그런 눈으로 그녀는 천정을 향하고는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목까지 메었고, 나도 그 근처가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 이 글은 <미끼와 고삐>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조선 - 미끼와 고삐
해냄출판사 - 1989. 01. 10.

 [t-08.12.22.  211204-150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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