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떠도는 은어처럼 - 창시문학회 2집/서울문학포럼 1999. 10. 20.
행간을 떠도는 은어처럼
홀로 이르는 길이 삶이라는 말 엿들은 날부터
욕망의 비린 어깨 세월 밖으로 떨구어 내고자
무채색 처연한 꿈
한 줌 씨알에 뿌려 내리 내리 감추우니
천년의 침묵인 듯
홀로 이르는 외로움 덧없이 덧없이 사랑하길
소망하였어라
홀로 잎 피우는 시절
행간을 떠도는 은어 (隱語)처럼
내 저린 몸 어디로
그대 맥 (脈)을 짚어 들려나.
주홍빛 상사화가 긴 꽃술을 드러내며 활짝 피었다.
잎새도 없이 가날푼 맨몸으로 뻗어 올라 꽃잎을 열었건만 붉은 꽃술이 정념의 한으로 다가와 가슴 저리다.
한 뿌리에 근원을 두면서도 따로이 피고 지는 상사화는 詩를 사모하는 내 모습만 같다.
사는 동안 그대 안에서 삶을 노래하리라.
글 - 김창희 시인
출처 - 행간에 떠도는 은어처럼
노숙자의 귀향
궁색이 마른 버짐 번진듯한 생애가
풍문이 되어 떠돌던 집에 한 발을 들이고
담벼락 벽화처럼 굳어져도 좋겠다
비탈진 골목길에 성긴 머리 풀고 있는
북향의 잡초들에게 마저도
여름밤의 북극성처럼 아득했던
당신의 사연들이 점자로 흩어지고
눈먼 나비 한 마리 돌쩌귀에 앉아
오래도록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다
안뜰 빨랫줄엔 마르지 않은 당신의 배냇저고리가 팔랑이며
허당 같은 우물에 물이 찰랑이고 햇살 가득 품은 앞산이 귀를 열겠다
그러나 늙은 사내 과부 옆 지키듯 대합실 구석 자리를 지키며
고향 가는 일이 저승 가는 일 보다 더 어려운 듯
고향집 뒤란 횃닭 우는 먼먼 소리에
처마밑 그늘처럼 서늘한 통증들을 돌돌 말고 누워
고향 언덕 일출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몸을 기호로 하여 씌어진 여러 시편들 중 허공 모텔에서 화자는 존재의 공간을 허공에 설정해 놓고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를 끌어들여 깊은 잠을 풀어놓고 싶다고 소망한다.
돌아갈 길 잃어버리도록 사내와 합일하기를 꿈꾸며
그 꿈의 결실로 어여쁜 죽음 하나를 낳고 싶다는 욕망을 고백한다.
글 - 김창희 시인
출처 - 문학과창작 2008년 겨울호 <몸의 기호와 심미감>에서
[t-08.12.17. 20211204_15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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