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 「인연」
[200513-170154]
"무슨 새지?" 어떤 초대석에서 한 손님이 물었다.
"종달새야." 주인의 대답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종달새라고? 하늘을 솟아오르는 것이 종달새지, 저것은 조롱(鳥籠) 새야."
내 말이 떨어지자 좌중은 경탄하는 듯이 웃었다.
그날 밤 나는 책을 읽다가 아까 친구 집에서 한 말을 뉘우쳤다.
비록 갇혀 있는 새라 하여도 종달새는 공작이나 앵무새와는 다르다.
갇혀 있는 공작은 거치른 산야보다 아늑한 우리 안이 낫다는 듯이 안일하게 살아간다.
화려한 날개를 펴고 교태를 부리기도 한다.
앵무새도 자유를 망각하고 감금 생활에 적응한다.
곧잘 사람의 말을 흉내도 낸다.
예전 어떤 집에는
일어 상용(日語常用)하는 주인을 따라 '오하요(안녕)하고 인사를 하는 앵무새가 있었다.
그러나 종달새는 갇혀 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다.
종달새는 푸른 숲, 파란 하늘, 여름 보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가 꿈을 꿀 때면, 그 배경은 새장이 아니라 언제나 넓은 들판이다.
아침 햇빛이 조롱에 비치면 그는 착각을 하고 문득 날려다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쓰러지기도 한다.
설사 그것이 새장 속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들을 모르는 종달이라 하더라도,
그의 핏속에는 선조 대대로 자유를 희구하는 정신과
위로 위로 지향하는 강한 본능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칼멜 수도원의 수녀는 갇혀 있다 하더라도 그는 죄인이 아니라 바로 자유 없는 천사다.
해방 전 감옥에는 많은 애국자들이 갇혀 있었다.
그러나 철창도 콘크리트 벽도 어떠한 고문도 자유의 화신인 그들을 타락시키지는 못했다.
시온 - 너의 감옥은 성스러운 곳
너의 슬픈 바닥은 제단(祭壇)
바로 그이의 발자국이 닳아
너의 찬 포석(鋪石)이 잔디인 양 자국이 날 때까지
보니 바루가 밟았다
누구도 이 흔적을 지우지 말라
그것들은 폭군으로부터 신에게까지 호소하나니
이것은 내가 좋아하던 시구(詩句)였다.
예전 북경(北京)에는 이른 새벽이면 고궁 담 밖에 조롱을 들고 섰는 노인들이 있었다.
궁 안에서 우는 새소리를 들려주느라고 서 있는 것이다.
울지 않던 새도 같은 종류의 새소리를 들으면 제 울음을 운다는 것이다.
거기 조롱 속에 종달새가 있다면,
그 울음은 단지 배워서 하는 노래가 아니라 작은 가슴에 뭉쳐 있던 분노와 갈망의 토로였을 것이다.
조롱 속의 새라도 종달새는 종달새다. (p27)
피천득 - 인연
(주)샘터 - 1996.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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