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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p39-51)

by 탄천사랑 2008. 2. 12.

 · 「파울로 코엘료  - 연금술사」

 

 

양치기 산티아고는 잔뜩 실망한 채 밖으로 나왔다..
꿈 따위는 다시는 믿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선 먹을 것을 구하러 식료품점에 들렀다.
양들은 마을 입구, 새로 사귄 친구의 외양간에 있었다.

그는 이 마을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현실로 끌어낼 방법이 없는 꿈속의 여인 같은 것이니 말이다.
그는 타리파의 신부로부터 구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에 열중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옆에 와 앉더니 말을 걸었다.

"저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 겐가?"

노인은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자기 일들을 하고 있겠죠"

산티아고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지치고 목이 마르다며 포도주를 한 모금 달라고 했다.
산티아고는 포도주병을 내밀었다.
노인은 이야기에 굶주려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노인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산티아고는그 책의 제목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노인이 글을 읽을줄 모른다면 아예 자리를 옮겨 갈 생각이었다.

"흐음!"

노인은 신기한 물건을 대하듯이 이리저리 책을 살폈다.

"중요하긴 하나 굉장히 지루한 책이지"

산티아고는깜짝 놀랐다.
노인은 글을 읽을 줄 알뿐더러 이미 그 책을 읽었던 것이다.

"전혀 새로운 게 없는 책이야.
 이미 다른 책들에 다 있는 얘기들이지"

노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존재에게 주어진 어떤 정해진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고,
 결국 운명에 지배당하게 된다는 이야기야. 터무니없는 소리지."
"제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집에서는 신부가 되길 바랐지만, 전 양치기가 된 걸요."

산티아고가 말했다.

"그 편이 더 좋지. 자네는 여행을 하고 싶어하니까."

그런데 노인은 책을 되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그 두꺼운 책을 이리저리 넘겨보고 있었다.

"영감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산티아고가 물었다.
"아주 여러 곳에서"
"고향이 여러 곳인 사람은 없잖아요
 저는 양치기여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살지만, 고향은 단 한 곳뿐입니다."
 오래된 성 가까이에 있는 마을, 거기서 태어났어요"
"그렇다면 내가 태어난 곳은 살렘이라고 할 수 있지"
"살렘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산티아고가 물었다.

"내가 살렘에서 한 일?"

노인은 그외 이야기를 하던 중 처음으로 호탕하게 소리내어 웃였다.

"이보게, 나는 살렘의 왕이라네!'

세상엔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러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네 이름은 멜키세덱일세. 양을 몇 마리나 가지고 있나?"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로군,
 자네가 양을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나는 자네를 도와줄 수 없으니 말이야"

산티아고는 화가 났다.
'누가 언제 도와달라고 했나.
 포도주를 청하고 말을 걸고 책에 관심을 보린 것은 정작 노인이 아닌가'

"책을 돌려주세요.
 이제 양들을 찾아서 가던 길을 가야 하니까요"
"자네가 가진 양의 십분의 일을 내게 주게.
 그러면 보물을 찾아가는 길을 자네에게 가르쳐주겠네"

노인의 대답은 전혀 엉뚱했다.


그제서야 산티아고는반복되는 꿈을 떠올렸다.
그러자 모둔 것이 명확해졌다.
해몽을 해준 노파는 그에게서 아무런 복채도 받지 않았지만 
이 노인은 세상에 있지도 않은 길을 가르쳐준답시고 그에게서 많은 돈을 우려내려 하고 있다.

그런데 산티아고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노인은 허리를 굽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더니 모래 위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산티아고가 허리를 숙이자, 노인의 품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노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잽싼 몸놀림으로 품안의 광채를 겉옷으로 가렸다.
그제야 산티아고는 노인이 땅에 쓴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산티아고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기억들도 광장의 모래 위로 떠올랐다.


​"나는 살렘의 왕일세."  노인이 말했다.
"어째서 왕께서 양치기와 더불어 이야기하십니까?"

너무도 놀라 당황하고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산티아고가 물었다.

"이유야 많지.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걸세."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자네가 항상 이루기를 소망해오던 바로 그것일세.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 모두를 꿈꾸고 소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다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주지."

노인의 이야기는 젊은 양치기에게 그리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무언지 알고 싶었다.
가게 주인의 딸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면 아주 놀라워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그저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그런 것인가요?
  양털 가게 주인의 딸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도요?"

"아무렴, 보물을 찿게다는 마음도 마찬가지야.
 만물의 정기는 사람들의 행복을 먹고 자라지.
 때로는 불행과 부러움과 질투를 통해서 자라기도 하고,
 어째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한동안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광장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입을 연 것은 노인이었다.

"자네는 무엇 때문에 양을 치나?"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서요."

그러자 노인은 광장 한구석, 
빨간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팝콘 장수를 가리켰다.

"저 사람도 어릴 때 떠돌아다니기를 소망했지.
 하지만 팝콘 손수레를 하나 사서 몇 년 동안은 돈을 버는 게 좋겠다고 결심한 모양이야.
 좀더 나이가 들면 한 달 정도 아프리카를 여행하게 되겠지.
 어리석게도 사람에게는 꿈꾸는 것을 실현할 능력이 있음을 알지 못한 거야."
"저 사람은 차라리 양치기가 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어요."  

산티아고가 소리 높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 사람도 그 생각을 했었다네.
 하지만 탑콘 장수가 양치기보다는 남보기 근사하다고 생각한 거지.
 양치기들은 별을 보며 자야 하지만, 팝콘 장수는 자기 집 지붕 아래 잠들 수 있잖아.
 또 사람들도 딸을 양치기보다는 팝콘 장수와 결혼시키려 하지."

노인이 말했다.
가게 주인의 딸을 떠올린 산티아고의 가슴 한켠이 쓰려왔다.
그녀가 사는 곳에도 팝콘 장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자아의 신화보다는 
 남들이 팝콘 장수와 양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거지."

노인은 책장을 넘기고는 아주 맛있게 한 페이지를 읽었다.
산티아고는 잠시 기다렸다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왜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처음에 책을 읽고 있는 그에게 노인이 말을 걸어왔던 것처럼.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위해 살려고 하기 때문일세.
 그런데 지금 자네는 포기하려 하고 있어."
"영감님은 사람들이 그런 순간에 처해 있을 때만 항상 나타나시나요?"
"늘 이런 모습은 아니지만 안 나타난 적은 없지.
 때로는 순간 순간의 훌륭한 생각과 좋은 해결 방법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람들이 중대한 순간에 처해 있을 떄 그저 그 일들이 조금 수월해지도록 돕기만 한다네.
 나는 이 일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하지."

지난주에는 어떤 보석 채굴꾼에게 돌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 채꿀꾼은 에멜랄드를 캐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었다.
에멜랄드 하나를 캐기 위해 오 년 동안 강가에서 99만 9천 9백 99개의 돌을 깨뜨렸다.
마침내 그는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그가 에멜랄드를 캐기 위해 돌 하나만,  
단지 돌 하나만 더 깨뜨리면 되는 그런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자아의 신화, 그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노인은 그의 삶에 개입하기로 했다.
노인은 한 개의 돌맹이로 변해서 채꿀꾼의 발 앞으로 굴려갔다.
오 년 동안의 보람 없는 노동에 한껏 화가 나 있던 채꿀꾼은 그 돌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그가 던진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세게 부딪혔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멜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다.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무척 빨리 배우는 것 같아.
 아마도 그래서 그토록 빨리 포기하는지도 몰라.
 그래,  
 그런게 바로 세상이지"   

노인이 쓸쓸한 눈빛으로 말했다.
산티아고는 노인과의 대화가 감추어진 보물 이야기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보물들은 사나운 홍수로 파헤쳐졌다가 다시 홍수에 의해 땅속에 파묻혔다네.
 만약 자네가 그 보물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내게 자네 양의 십분의 일을 주어야 할 걸세."
"제가 찾게 될 보물의 십분의 일이 아니구요?"  

산티아고의 말에 노인은 실망한 것 같았다.

"아직 손에 넣지도 못한 것을 두고 약속을 하겠다고?
 그렇게 되면 반드시 찾아 내겠다는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산티아고는 꿈풀이 노파를 만나 찾게 될 보물의 십분의 일을 주겠다고 약속한 일을 이야기했다.

"집시들은 교활하지."  

노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인생의 모든 일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배우는 건 좋은 일일세.
 그건 바로 광명의 전사들이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지."

이렇게 말하며 노인은 산티아고에게 책을 돌려주었다.

"내일 이 시각에 자네 양의 십분의 일을 내게 가져오게.
 난 자네에게 감추어진 보물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겠네.
 그럼 잘 가게."   

그리고 노인은 광장 한모퉁이로 사라져버렸다. (p51)
※ 이 글은 <연금술사>의 일부를 필사한 것임.


파울로 코엘료  -  연금술사
역자 -  최정수
문학동네  - 2001. 12. 01

[t-08.02.12.  19-020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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