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엘라 야페 - 미술과 상징」
상징주의의 흐름을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돌, 식물, 동물, 인간, 산과 계곡, 해와 달, 바람과 물,
불과 같은 대자연 속에서도 어떤 상징을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집, 작은 배, 자동차와 같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 심지어는 숫자, 세모꼴, 네모꼴,
원과 같은 추상적인 형태에서까지도 의미심장한 상징이 내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주 전체가 하나의 상징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사물이나 어떠한 형태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변형된 상징을 만들어 종교나 예술로 표현하고자 한다.
선사시대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 당시의 우리 인류의 선조에게는 종교와 예술이 혼연일체가 되어
감동적이고 의미심장한 여러 가지 상징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현대회화나 조각은 종교와 예술과의 상호작용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첫 장에서는
수 세기에 걸쳐 미술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상징주의의 세 가지 주제 및 그 실재와 성격을 논하고자 한다.
이 세 가지 주제가 되는 상징들은 돌과 동물과 원 圓이다.
이들은 제각기 초기의 인간 의식의 표현에서부터 20세기 미술의 복잡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심리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주제로서 집요하게 표현되고 있다.
1. 상징으로서의 돌.
다듬어 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거석 巨石이 의미 심장한 상징으로 되어 있었음을
원시 고대사회에서 엿볼 수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에는 영혼이나 여러 신이 거 居 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은 비석이나 경계비 境界碑로,
혹은 종교적인 외경심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연석을 이용했다.
우연한, 혹은 인위적인 어떤 형태보다도 자연석 그 자체가 표현력이 매우 강렬하다는 것을 발견해냈고,
그러한 상징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자연석의 이용을 원시 형태의 조각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곱의 꿈' 이야기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살아 있는 유일신이나 성령이 어떻게 해서 돌과 일체화했으며,
어떻게 해서 신의 상징이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 야곱이 베르셰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게 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안할지며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께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게 하였던 돌을 가져가
기둥으로 새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 (창세기 28장 10-19절)
야곱의 돌베개는 완전한 형태의 계시였으며 하나님과 야곱 사이를 이너 주는 징검다리였다.
원시시대의 성소 聖所 안에는 신격 神格을 상징하는 돌을 단 하나만 모셔 놓았던 것은 아니다.
눈에 띄는 어떤 특정한 원칙에 의해 상당히 많은 수의 돌이 정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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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인류가 돌에서 느끼는 영혼이나 영성을 형태로 나타내고자 애쓴 흔적을
우리는 일찍이 선사시대 문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다.
그 형태가 인간의 형상에 상당히 가까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얼굴 윤곽을 하고 있는 고대의 선돌,
고대 그리스의 경계비에서 발전된 형태의 경계주 境界柱.
그 밖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구석기시대의 우상들을 그 예로서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돌의 의인화 擬人化는
무의식 세계의 어떤 분명한 내용을 돌에 투사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자연석의 형태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살리면서
인간 형상의 가벼운 힌트만을 주고자 하는 고대인의 성향은 현대조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현대 예술가 중에 많은 사람들이 돌 자체가 지니고 있는 호소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즉 그들은 돌이 지니고 있는 신비한 언어를 해독하고 돌 스스로가 우리에게 말하도록 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예컨대 한스 안에 슈바 헤르 Hans Aesch-bacher, 제임스 로제티 James Rosati,
막스 에른스트 Max Ernst,의 조각품이 이에 속한다.
1935년 에른스트가 쓴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자코메티 Giacometti와 나는 조각적인 것을 찾아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포르노 Forno 빙하지대에 형성된 둥글게 깎인 크고 작은 화강암의 퇴석 堆石을 찾아서 작품을 만든다.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잘 다듬어진 이 퇴석이야말로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도저히 인간의 손으로는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작업은 자연의 손에 맡겨 두고
우리는 단지 우리 딴에는 신비감을 준다고 생각되는 가벼운 작업만을 할 따름이다.
에른스트가 말하는 '신비감' 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 장의 끝에 가서 '돌의 영혼'을 알고 있었던 고대의 대가들이나
현대 작가들의 '신비감'에 대한 개념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필자의 견해를 피력하려고 한다.
종교와 미술이 서로 혼연일체가 되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잇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유 중의 하나는
조각이 이러한 '영혼'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 후기
예술은 '상징'이다.
작가가 경험한 것, 지각한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상징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상징'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고 칼 융 C. G. Jung은 말한다.
이러한 융의 철학을 기초로 저자 야페는,
특히 시각예술은 태곳적부터 형성되어 온 '집단무의식'을 통한 '상징'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예술은 '낱개로서의 가치'를 초월하여 '집합의 구성으로서의 가치'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야페는 미술평론가나 미술이론가의 입장에서 뛰어드는 우를 범하려 하지 않고,
일반 독자와 똑같은 '문외한'의 입장에서 관찰한다.
그는 선사시대의 선돌로부터 현대의 초현실주의 회화나 추상화에 이르는
개략적인 맥락을 매우 명쾌하게 심리학적-철학적 배경 위에서 서술해 나가고 있다.
이 글은 본래 칼 융이 책임 편집한 '人間과 象徵 Man and his symbols (1964)' 중에서
'Symbolism in the Visual Arts' 부분만을 뽑아 번역한 것이다.
융은 이 책의 편집을 끝내고 일 주일 후에 운명했다.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생명의 신비,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에서 역자는 기꺼이 번역에 몰두했다.
- 이희숙
※ 이 글은 <미술과 상징>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열화당 미술문고 106)
아니 엘라 야페 - 미술과 상징
역자 - 이희숙
열화당 - 1995. 04. 28.
[t-08.01.24. 20210124-153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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