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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일상 정보/사람들(인물.

김이연-내어머니/김이연. 김지연. 김후란. 박정희. 윤순영. 외

by 탄천사랑 2022. 8. 26.

· 김이연 - 「내어머니

                                                                         조셉 말러드 터너 - 해상의 폭풍우

 



유채꽃은 내년에도 피겠지요. 그래, 엄마가 보고 싶은 풍경이 비단 유채꽃 뿐일까
내년 봄에도 엄마하고 유채꽃 구경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가 탄 기차가 서울로 향해 떠날 때 엄마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플랫폼에 홀로 서서 나지막이 손을 흔들고 있다.
기차가 역사를 왼쪽 뒤로 남기고 돌아가면 그만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차창에서 안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나는 언제나 울고 있었다.
엄마하고 혜어지는 게 안타까워서 울었던 게 아니라 

나를 떠나 보내며 슬퍼하는 엄마의 쓸쓸한 모습이 눈물나게 했다.
그때가 열일곱 살 고등학교 일 학년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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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그런 엄마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엄마의 엄했던 채찍질이 고맙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내가 내 아들에게 그리 못하는 것은 사랑이 부족한 탓이고, 몹시 게으른 탓이다.
내년 봄에도 엄마하고 유채꽃 구경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 김이연


당차고 야무진 작은 여자.
내 인생 이만하면 큰 복 받은거다! 부모 복, 남편 복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는 말은 옛 말인게야!

1918년 전후.
남강(南江) 하류의 큰들 앞을 점악(占岳)이는 이른 아침녘부터 서성거리고 있었다.
등에 업힌 아기의 몸뚱이가 점점 엉덩이께로 흘려내림을 부추키면서 

(神)집 무당할매가 어서 기침 하기만을 기다린다.
지난 밤 굿이 컸는지 할매는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사립문은 그대로 닫혀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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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의 불심으로 마음정리 주변정리 나름대로 끝내 놓고,
삼배로 지은 수의(壽依)와 영정(影幀) 머리맡에 놓아두고 새벽마다 아홉 해 넘기기가 불안했던 것일까.
염불 외는 구순의 점악 노인.

"내 인생 이만하면 큰 복 받은거다!
  부모 복, 남편 복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는 말은 옛 말인게야!"
 
강 씨 자식 둘, 김 씨 자식 하나, 모두 다 제 색깔 갖고 탈 없이 살아감을 고마워하면서,
점악은 이즈음 만나는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 김지연


어머니를 그리며.
언제나 조용한 말투로 딸에게까지도 겸허하게 대해 주신 나의 어머니를 나는 진정 사랑한다

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는 건 내가 기분이 좋아서의 표현이고 
어머니도 내가 나이에 상관 없이 그렇게 부르는 정겨움을 즐기셨던 것 같다.
남들 앞에서가 아닌 경우에는 정중하게 어머니로 부른 기억이 별로 없는 걸 보면 
나는 한평생 어머니를 너무나도 좋아했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그냥 좋았다.
더러는 무서운 면도 있었을테고 그게 아닌데하고 반발하고 싶은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그 어떤 경우도 초월되는 큰 사랑의 이름으로 지금도 나와 함께 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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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된 딸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내 손을 꼬옥 잡아주시던 우리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의 그 손을 잡을 수 없으니 그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어머니께 바치는 시 '어머니 마음'을 써서 아동문학가이신 어효선 선생님께 부탁하여 
그림과 휘호를 받아 액자에 넣어 어머니 방에 걸어드렸을 때 

무척이나 기뻐하셨던 그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시를 여기 옮겨 적는다.

어머니 마음

고요함이 고여 있는
이른 새벽
비단결 바람에
물살 지듯

고요함이 고여 있는
어머니 마음
누구도 못 이를
바다 가슴


- 김후란


낭만과 개혁의 교양 강좌
언제까지나 꼿꼿하고 청청한 낭만파와 개혁파로 어머니 특유의 교양 강좌를 듣고 싶다.

낭만파 스토리 어머니는 이야기꾼이었다.
내 기억 속에 젊은 날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특별했다.
흔하게 듣는 구전설화나 전설 같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계 명작 소설을 어린이 눈높이로 끌어내려 누에고치 실 뽑듯이 흥미진진하게 엮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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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의 이야기 길이가 점점 줄어드는 걸 참기 어렵게 되었다.
'몽테크리스트 백작'의 번안물 '암굴왕'의 이야기를 어머니는 많이 잘라먹으며 마무리를 한다.
나는 언제까지나 생전 처음 듣는 감동으로 들을 수 있다.
수없이 되풀이 된 이야기를 다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 박정희


아주 특별한 선물. 어머니! 
그 덕분에 지금까지 당당하고 멋진 자유인으로 살아감을 당신 그늘이어서 편안했노라 고백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가끔 진지하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고 
아직도 미래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묻는 것을 보면 오십이 꽉 찬 나의 외모가 젊게 보인건지,
아니면 혼자 있는 모습이 안쓰러운건지 유쾌하다가도 조금 찝찝하다.
그건 당당히 혼자서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남들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도 으레 습관적인 질문일 것이기에 나는 언제나처럼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닐 것 같아서." 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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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동안 어머니나 따받고 사는 사람치고 성인도, 

예술가도, 철학자도 있지 않았다는 애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식을 품에 두고 영구적인 미완성으로 정체되게 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 김봉금 여사!
어머니와 같은 길을 가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나의 어머니 때문에 나는 이 세상의 어머니들을 존경한다.


- 윤순영


서른여섯 살의 과부. 눈부신 빨래는 어머니의 지조, 
어머니의 순결, 아버지를 부르는 어머니의 깃발처럼 펄럭이는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애기할까
서들러 아버지 애기부터 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머니 애기가 제대로 풀릴 것 같지 않다.
어머니는 스무 살에 아버지와 결혼하여 

서른여섯 살에 과부가 되었으니까 햇수로 따지면 16년을 함께 사신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만주로, 
일본으로 줄곧 멀리 떠나 계셨고, 

출장이니 무엇이니 하여 집을 자주 비웠다는 점을 어머니는 언제나 강조하신다.
그리고 술 마시고 친구와 어울리느라 밤 늦게 귀가하거나 밤을 새우고 오신 날까지 셈에 넣는다면,
함께 마주 보고 살아온 것은 햇수로 쳐도 2년이 채 되지 않을 거라고 어머니는 주장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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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뵈면 인생이 정말로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직도 수정 거울처럼 맑고, 어린 아기처럼 순진하신 어머니.
이미 평화를 회복하신 어머니는 
조용히 천천히 기도를 음송하면서 깊고도 광활한 인생의 대양을 욕망 없이 바라보고 게신다.
나도 어머니처럼 고결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것 한 가지만이라도 어머니를 닮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이향아


내 삶을 흔들어 주는 이름  내 영혼의 영토에 따사로운 봄볕으로 오시는 어머니
봄 안개처럼 아지랑이처럼 눈물겨운 향기로 삶을 흔들어 주는 이름 어머니

진달래 꽃이 흐드러지던 음력 3월 여드레.
아버지는 쉰여섯, 장년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어제까지도 우리 곁에 계시던 분, 유명(幽明)을 달리한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던가.
산다는 것이 그토록 예사롭지 못한 것이었는지, 

목을 놓고 통곡을 하는 것도 슬픔의 모양이 갖추어졌을 때의 일.
그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현장은 슬픔이라는 말조차 사치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그저 망연자실이었다.
그러나 우리 자식들의 애통도 애통이려니와, 어머니를 어이 할거나, 
어머니를 어이 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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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그렇게 홀연히 떠나가시는 것으로 새롭게 삶을 가르치시는,
하늘나라를 향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날 준비를 거들어 주시는 참 생명의 태반이 되셨다.
어머니, 이제 비로소 내 영혼의 영토에 따사로운 봄볕으로 오시는 어머니,
봄 안개처럼 아지랑이처럼 눈물겨운 향기로 삶을 흔들어 주는 이름 어머니.


- 정연희


늑대를 쫓아가 염소를 빼앗아 온 여인. 어머니의 솔선수범하는 삶 그 자체가 가장 고귀한 교육이며 
가장 위대한 교육자는 어머니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체구가 자그만 합니다.
학교에도 가 본 적은 없으나 일찍이 문자를 깨우쳤습니다.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나 십팔 세에 두 살 연하의 아버지께 시집을 오셨습니다.
어머니의 삶은 자식 낳아 키우며 자연에 순응하여 농사 짓고, 가축 기르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온, 어찌보면 매우 평범한 보통 여성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참으로 놀라운 분이십니다.
담력이 크고, 용기가 하늘을 찌르며, 정의감에 불타고, 
꽃과 나무들, 개와 돼지 등 짐승을 사랑했고, 사물에 대한 직관력이 뛰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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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어머니는 돈을 벌어 자녀들의 학비를 대 주지는 못했고, 
자신의 학식으로 자녀를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엄격함으로 자녀를 비뜰어지지 않도록 다스리셨습니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헤쳐가는 용기, 정성을 다하는 근면성, 
항상 희망을 잃지 않는 낙관적인 태도,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자세는 그 자체가 크나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솔선수범하는 삶, 그 자체가 가장 고귀한 교육이며, 
가장 위대한 교육자는 어머니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저는 어머니처럼 용기있고 당당하게 
제 앞에 놓여져 있는 교육 현장의 모든 어려움과 싸워 이겨내겠다고 다짐합니다.


- 조승자


해바라기  사랑과 인내로 인생을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수 놓으신 나의 어머니
그 대지 위에서 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되리라 믿는다.

어머니,
홀로 눈 감고 그렇게 불러보니 가슴 한가운데부터 전신으로 따뜻하게 번져드는 따스함.
내 영혼이 그 이름에 기대어 어린 아기가 된다.
어머니, 
너무 위대하고 너무 깊고 너무 커서 그 의미를 다 수용할 수 없는 분 어머니.
그렇게 크나큰 의미의 어머니인가 하면 자잘한 구슬 같고, 
아주 작은 풀꽃 같은 아름다음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분 어머니.
홀로 되신 지 13년.
금년에 미수(米壽)이신 어머니는 아들 삼 형제와 위로 딸이 둘이나 있건만 지금까지 혼자서 지내신다.
---

나는 어려서 아주 간절하게 '어머니를 닮았구나'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었다.
그 말이 얼마나 듣고 싶었던지, 무엇이든지 어머니 하시는 대로 닮으려고 무진 애를 쎴다.
그러나 보는 사람마다
"아이고, 인옥이는 어머니 안 닮고 아버지를 많이 닮았구나."하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무척 쓸쓸해 했었다.
그러나 이제 이 나이에 이르러 보니, 어머님은 내 생명의 대지(大地)요, 내 영혼의 고향이시다.
어머님이 아직 내 곁을 지켜 주시니 나는 누구보다 복된 사람이다.
사랑과 인내로 인생을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수 놓으신 나의 어머니.
나는 그 대지 위에서 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되리라고 믿는다.


- 한인옥 

 

 

 이 글은 <내어머니>에 실린 단락 일부분을 필사한 것임.
김이연 - 내어머니
답게 - 2001. 0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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