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 「정원 일의 즐거움」
나는 여지껏 내 정원을 가져본 적이 없다.
정원을 갖게 되면 스스로 어떻게 배치할까 정하고 식물을 재배해야 한다는 건,
시골에 사는 내 원칙으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실 몇 년 동안 그렇게 했다.
나는 정원에 땔감과 정원용 도구들을 넣어 둘 헛간을 지었다.
조언을 해주곤 하는 농부의 아들과 함께 길을 만들고 꽃밭의 구획을 정비했으며, 여러 종류의 나무들도 심었다.
밤나무 서너 그루, 보리수 한 그루, 개오동나무 한 그루, 너도밤나무 울타리, 나무딸기 넝쿨,
멋진 과일나무들을 말이다.
겨울에 산토끼와 사슴들이 갉아 먹어 버린 통에 어린 나무들은 망했지만, 다른 나무들은 모두 멋지게 잘 자랐다.
우리는 그 당시 딸기와 라스베리, 양배추, 완두콩, 샐러드 잎 들을 잔뜩 수확했다.
그 곁에다가 나는 달리아 꽃을 재배했다.
가로수 길도 하나 냈다.
그 길 양옆으로는 보기 좋은 수백 그루의 해바라기가 늘어서 있었고,
발치에는 붉은색과 노란색을 띤 수천 송이의 니겔라 꽃들이 피어 있었다.
가이엔호펜에서 살 때도
베른에서 살 때도 나는 적어도 10년간 혼자서 직접 채소를 심고 꽃에 비료를 주고 물을 주었다.
가이엔호펜 헤세가 신혼 살림을 차린 보덴 호숫가의 마을.
헤세는 1907년 가이엔호펜에 집을 새로 짓고 이주했다. 이곳 농가에서 헤세는 3년 동안
거주하면서 장남 브루노를 낳았고, 많은 시들과 단편들을 썼다.
베른 스위스의 수도. 헤세는 1912년 베른 교외의 집으로 이사했다.
혼자 길 위의 잡초들을 제거했고, 집에서 쓸 많은 양의 땔감을 톱질하고 도끼질해서 마련했다.
그건 멋지고 배울 점이 많았지만, 결국 마치 노예 노동처럼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농부가 된다는 것은 재미로 할 때는 멋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습관이 되고 일이 점점 더 많아지더니 급기야 의무가 되어 버리자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다...
우리들의 마음은 환경을 얼마나 많이 가공하고 변화시키는가.
심지어 얼마나 많이 수정해 버리고 마는가.
또한 우리의 삶의 추억은 얼마나 강하게 내면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가.
가이엔호펜 시절의 두 번째 집에 대한 기억이 그 사실을 창피할 정도로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집의 정원을, 나는 아직도 매우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서재와 그 방에 딸린 넓은 발코니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뚜렷하게 떠오른다.
책 한 권 한 권이 놓여 있던 자리까지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 나머지 부분에 관한 기억은,
그 집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는 흐릿해져 버리고 말았다. (p31)
(1931년)
※ 이 글은 <정원일의 즐거음> 일부를 필사한 것임.
헤르만 헤세 - 정원 일의 즐거움
역자 - 두행숙
이레 - 2001.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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