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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

최재천 스타일 - 최재천이 말하는 최재천 스타일

by 탄천사랑 2013. 11. 29.

·「최재천 - 최재천 스타일」

 

 

 

머리말

최재천이 말하는 최재천 스타일
대놓고 '최재천 스타일'이라니. 독자는 호기심을 느끼겠지만, 저자에게는 엄청 부담스러운 제목이다.
나는 사실 이렇다 할 나만의 스타일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남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을 정도이지 그리 미남도 아니고 요즘 모두가 열광하는 몸짱도 아니다.
옷장 가득 최신 유행하는 옷들을 장만해놓고 매일 아침 그날에 맞는 옷을 챙겨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기껏해야 세일할 때 사둔 서너 가지 옷을 하루 걸러 갈라 입을 따름이다.

그런 나도 은근히 흠모하는 이가 있긴 하다.
바로 왕년의 미국 프로농구 스타 '닥터 제이 Dr. J: Julius Erving' 이다.
일대를 풍미했던 운동선수지만 

평생 운동만 한 사람 같지 않은 세련된 매너와 말솜씨를 지닌 그는 내겐 더할 수 없는 멋쟁이다.
한 손으로 농구공을 거머쥔 채 링을 향해 새처럼 날아오르는 그의 우아한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나는 종종 체면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나를 최 교수님이나 최 박사님이 아니라 
닥터 제이라고 불러달라 구걸하며 

그리 불러 주는 학생에게 더 나은 학점을 주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좀 비겁한 편이다. 
살면서 그리 화끈하게 질러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글쟁이가 될 운명을 타고 났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단 한 차례도 신춘문예에 응모해 보지 못했다. 
그저 만지작거릴 뿐이다.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평생 춤꾼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그 많은 파티에서 여성에게 춤 요청도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살았다. 
그런 내게 살다 보니 어느 덧 나 나름의 스타일이란 게 생긴 모양이다.

나는 최 씨에 곱슬머리지만, 옥니가 아니라서 그런지 고집이 그리 센 편은 아니다.
웬만하면 남들에게 맞춰주며 산다.
좁은 골목길에서 운전하다 보면 반대쪽에서 오는 차를 만나기 일쑤다. 
그럴 때면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후진을 시작한다.
그러는 내게 어린 어린 아들 녀석은 여러 차례 항의했었다.
아빠가 훨씬 더 깊숙이 들어왔는데 왜 더 먼 거리를 후진해야 하느냐고.
나는 언제나 '응, 아빠가 후진을 특별히 잘하잖아.'라고 대답하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근처 산으로 소풍을 가는데 반장이라는 녀석이 앞에서 인도하기는 커녕 
자꾸 뒤에서 처지는 아이들한테 잔소리만 하고 있다고 담임 선생님께 여러 차례 꾸지람을 들었다.
내 딴에는 잔소리를 한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을 격려한답시고 한 일인데 말이다.
나는 요즘 우리 사회가 말하는 카리스마라는 게 별로 없다.
조직의 리더가 되려면 종종 이른바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시켜야 하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나는 그걸 정말 못하겠다.
대의를 위해 희생되어도 괜찮은 인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종종 사람을 구하고 일을 망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장; 자리는 애써 고사하며 산다.
그건 내 일이 아닌 것 같다.

2011년에 출간된 <과학자의 서재>라는 책에서 나는 
'가장 성공한 사람은 가장 자기답게 사는 사람”'라는 지론을 폈다.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 모든 방황도 다 아름다워 보이고 
어쩌다 보니 어느덧 퍽 자기답게 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 대단한 신념을 지니고 살지도 않았다.
그저 남을 해코지 하지 않으며 열심히 자신을 다스리며 살았을 뿐이다.
매 순간 남을 위해 숭고하게 희생하며 산 것은 아니지만,
매일같이 아등바등 남들과 경쟁하며 산 것도 아니고 가차 없이 남을 밟으며 산 것도 아닌데
이만큼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늘 고맙다.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한없이 고맙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스타일(문체文體)을 보면 상당히 놀라고 반가워한다.
 왜냐하면 작가를 만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인간을 만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이 이제 직업처럼 되고, 얼떨결에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가' 까지 되어 버린
나는 이렇듯 '자연스러운 스타일'의 글을 쓰고 싶다.

오래전부터 내가 부르짖고 다니는 게 있다.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를 버리고 '공생인'
즉, '함께 사는 인간' 이라는 뜻의 호모 심비우스 Homo symbious를 채택하자는 것이다.
현명을 방자한 무차별적인 경쟁보다 서로 손잡고 함께 가는 것이 진정한 현명함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극히 계산적인 공생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공생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기에 그 온도는 뜨겁고 그 힘은 더욱 강력할 수밖에 없다.
<통섭의 식탁>에 미처 올리지 못한 책들을 이 유별난 책에 다소곳이 담았다. 
책을 읽으며 함께 울고 웃고 부둥켜 안는 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명료한 '최재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p11) 
※ 이 글은 <최재천 스타일>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최재천 - 최재천 스타일
명진출판사 - 2012. 07. 12.

[t-13.11.29.  202111203-15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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