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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일상 정보/사람들(인물.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타고 홀로 떠난 길

by 탄천의 책사랑 2016. 7. 24.

 

독립적인 자전거 여행 - 1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홀로 떠난 여행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을 가능하도록 바꿔준다'는 '인내'를 배우러 떠난 길. 여행은 물론 평소 취미라도
 자전거를 타본 적 없는 생 초보 자전거 여행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총 600km를 달려 한강, 남한강, 새재,
 낙동강 4개의 자전거 도로를 경험했다.  이 후기는 여행 후 자전거 신봉자로 거듭난 필자의 '자전거타는 게
 가장 쉬웠어요. 가장 행복했어요'에 괸한 이야기다.    글·사진 추효정(프리랜서 여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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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잘 닦여진 남한강자전거도로

 

자전거 여행의 시작은 이러했다
올 봄 터키를 여행할 때였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 여정에 어느 순간 싫증이 났다. 더 이상
설렘도 기대도 없었다. 정해진 경로 대신 색다른 이동 방법이 필요했다. 오로지 내 힘만으로 버스나 기차가 닿을 수
없는 외진 시골 마을로 떠나고 싶었고, 특히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 생각을 실현시키려면 렌터카를 빌리거나 프라이빗 택시와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1인 여행자에게 이 두 가지 방법에는 비용 부담이 따랐다.
그 시기 터키 이스탄불과 불가리아 플로브디프에서 자전거로 세계 일주 중인 미국인 커플과 네덜란드에서 그리스까
지 7개월간 도보 여행을 마친 네덜란드인을 우연히 만났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한 이들은 독립적인 여행을 위한 이동 수단으로 자전거와 두 발을 택한 것이다.
“여행 이전과 현재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이냐”라는 내 질문에 그들은 “인내를 배웠다”고 했다.
“당신이 배운 인내란 무엇인가”라는 이어진 질문에 “내 관점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을 가능하도록 바꿔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행은 물론 취미로도 자전거를 타본 적 없는 내게 자전거 여행은 단연코 불가능한 행위였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통해 독립적이고 특별한 여행을 경험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인내’를 배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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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교회 앞 마당에 텐트를 쳤다, 서울을 벗어나 하남에 도착했다

 

‘서울 벗어나기, 50㎞ 달리기’ 가능할까? 
25ℓ패니어 가방을 뒷바퀴 양쪽에 부착하는 데만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 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족히 10㎏ 정도 되는 짐 무게를 딱 반으로 나누는 일에 안간힘을 쏟았다.
무게 중심을 잃는 순간  방향도 잃게 될 거란 우려에서였다.
공 들여 균형을 맞춰 장착한 패니어 가방 위로 텐트와 매트까지 가지런히 정리를 마쳤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향해 페달을 밟는 두 발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경쾌했다. 심지어 편안하게 느껴졌다.
전날 밤 나를 억누르던 첫 자전거 여행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불안감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시선은 오직 앞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그렇게 서울을 벗어났다.
‘하남시’ 푯말을 보는 순간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서울도 벗어나기 힘들 거란 가족들의 말에 보기 좋게 강펀치를 날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진입을 축하하는 의미였을까. 하남 초입에서부터 가파른 언덕이 나타났다.
생애 처음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르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어변속에 실패
했다. 평지에서는 3~5단, 내리막에서 6~7단, 오르막에서 1~2단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글로 배운 기어 사용법이 실
전에서 먹혀 들지 않았다.
푹푹 찌는 태양 아래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오른 수고스러움은 바퀴가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순간 말끔
히 보상받을 수 있었다. 약 1㎞ 구간 팔당대교를 건너 남한강 자전거도로에 들어섰다.

가장 인기 있는 국내 자전거도로를 꼽으면 남한강변이 매번 상위권을 차지한다.
수도권 자전거족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지리적 장점뿐 아니라 남한강변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라이딩을 즐
길 수 있어서다. 팔당에서 출발해 양평과 여주를 거쳐 충주 탄금대까지 이어지는 약 140㎞의 남한강 자전거도로는
중앙선 폐철로를 이용해 조성되었는데, 예전 기차가 다니던 터널을 자전거로 달리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팔당호가 바라 보이는 능내역 인증센터로 향하는 길목에 첫 번째 터널을 통과했다.
마치 에어컨을 튼 것마냥 차갑고 오싹한 기운이 맴도는 터널 내부는 더위에 지친 심신을 위로해준다.
한낮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능내역에서 잠시 멈췄다.
1956년 간이역으로 문을 연 능내역은 2008년 새로운 중앙선이 생기면서 폐역이 됐다.
현재 능내역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이 역 내부에 전시되어 있어 옛 기차역의 정취를 느끼며 둘러보기에
좋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능내역 인근 정약용이 태어난 마현마을과 다산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늦은 오후에도 더위는 계속됐다.
여러 차례 터널을 통과하고 양평 두물머리를 지나치고 남한강을 끊임없이 마주했다.
오후 6시를 갓 넘긴 시각, 양평시내에 닿았다.
‘서울 벗어나기, 50㎞ 이상 달리기’로 계획은 ‘87㎞’를 가리키는 속도계의 숫자를 보자 ‘목표달성’ 사실을 확인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잠자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먼저 체육공원으로 향했다.
텐트를 칠 만한 좋은 장소는 눈에 띄었으나 안전이 염려됐다.
교회 건물 앞 주차장이나 마당에 텐트를 칠 생각으로 두 차례 교회를 방문했으나 거절 당하고,
이후 마당이 있는 집을 방문하거나 인근 파출소로 가보았지만 선뜻 허락하는 이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자 암흑이 펼쳐졌다. 밤 9시를 넘겨 하는 수없이 인근 모텔로 향하는 도중 저만치 번쩍이는 십자가 불
빛이 눈에 들어왔다. 총 다섯 번의 시도와 거절을 반복한 끝에 마지막으로 찾아간 교회 앞 마당에 텐트를 쳤다.
첫 자전거 여행의 첫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이 점점 가능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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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에서 캠핑장이 된 곳에서 하룻밤

 

커다란 ‘용기 밥상’을 선물 받다  
날이 밝자마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텐트 천장을 환히 비추는 햇빛 덕에 이미 대낮인 것처럼 느껴졌다.
침낭 속에서 빠져 나온 몸은 두들겨 맞은 듯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평소 운동을 멀리해도 너무 멀리한 모양이다. 제 몸 가누기도 힘든 와중에 텐트를 정리하고 패니어 가방의 균형을
맞추고, 다시 자전거를 타야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다.
전날 87㎞를 달린 기록을 근거로 살짝 자신감이 붙으려 했건만 어째 자전거 여행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출발하기 전 목사님 방에서 차 한 잔을 마주했다.
여자 혼자, 그리고 자전거 여행에 대한 무모하고 위험하다는 의견 대신 목사님은 여자인 나, 혼자인 나 그리고 나의
자전거 여행을 위해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두들겨 맞은 몸도 어서 빨리 낫게 하소서.

양평에서 여주로 넘어가는 길목에 후미개고개를 만났다.
개군산 자락에 위치한 이 고개는 약 1㎞ 오르막 구간으로 상당히 가파르다.
기어변속은 성공했으나 100m도 채 가지 못하고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허벅지에 경련이 왔다.
스트레칭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몸 컨디션이 어제만 못하다. 여주를 상징하는 3개의 보인 이포보와 여주보를 지나
강천보로 향하던 중 갑작스레 속도계는 고장 나 멈췄고 뒷바퀴에도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멘붕 상태에 빠져 두려움이 엄습했다.
강천보인증센터에 도착하자마자 공기 주입기부터 찾았다. 슈레더 방식인 내 자전거 튜브에는 공기 주입이 되지 않
았다. 자동차나 자전거 정비센터를 이용하라는 한 여행자의 조언을 듣고 재빨리 페달을 밟았다.

여주 강천리에 다다르자 자전거도로는 남한강을 벗어나 영동고속도로와 인접한 차도로 길이 나 있었다.
찻길 옆 식당과 슈퍼마켓, 상점 등이 눈에 띄어 자전거 정비센터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샘솟았다.
식당을 지나쳐가는데 저 멀리서 외침이 들려왔다. 강천보인증센터에서 내게 조언을 건넨 여행자의 목소리였다.
하루 월차를 내고 라이딩을 즐기는 세 명의 여행자는 서울 천호동에서 출발해 충주시내로 향하는 중이었다.

“혼자서 밥은 챙겨 먹을까 걱정이 됐어요.”

이들은 내게 점심을 대접하고 싶어 일부러 창가 자리에 앉아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세 명의 여행자는 수년째 취미 삼아 라이딩을 즐기고 있지만 단 한번도 혼자 여행을 떠
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밥상을 마주한 채 한참을 국내 자전거 문화에 대해 속사포 같은 의견이 오가던 중 한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왜 사람들은 겉치장에, 값비싼 장비에 집착할까?’
현재까지 자전거도로에서 만난 사람들 대다수는 내가 자전거 의류를 입지 않고 여행한다는 것에, 비교적 저렴한
자전거로 국토 종주를 한다는 것에 의아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은 물론 신발, 액세서리 등 자전거 전문용품으로 치장한 이들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질문이었
다. 무리 중 6년째 자전거를 탄다는 윤동건 씨가 속 시원한 답을 늘어놨다.

“누군가는 멋 부리려고 그럴싸해 보이려고 입는 경우도 있겠죠. 하지만 나한테는 이게 전투 장비나 마찬가지예요.
 여행 한번 가려면 힘들게 월차 내서 가야 하는데 이 하루를 완벽하게 쓰려면 완벽한 장비를 갖춰야죠.
 우린 일상도 참 바삐 사는데, 여가생활도 그에 못지 않게 참 바쁘단 말이지.”

점심식사 후 윤동건 씨와 그의 일행은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식당에서 빌린 휴대용 공기 주입 펌프로 내 자전거 뒷
바퀴에 바람을 넣어주고 브레이크와 체인 상태까지 꼼꼼히 점검했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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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 하나에 폭풍눈물을 흘릴 줄이야   
셋째 날 오전 충주 조천리를 지나는 도중 맞닥뜨린 오르막 구간을 쉬이 놓칠 수 없었다.
비가 갠 뒤 살랑살랑 코끝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이 없던 용기를 만들어냈다. 기어를 최대로 낮추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힘이 풀려 갈피를 잡지 못해 두어 번 멈춰 섰지만 엉덩이는 계속해서 안장을
지키고 있었다.
반대편 도로에서 내리막을 달리는 여행자들이 나를 향해 “파이팅”을 외쳤다.
나를 추월해 앞서가는 미국인 여행자는 “Cheer up, You can do it”을 외쳤다.
얼마 안 가 오르막이 끝나고 드디어 내리막이 시작되는 순간 어느새 고글 안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코린느 혹은 이탈리아(1807)>에서 밝힌 슈타엘 부인의 한 문장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행은 살면서 경험하는 가장 슬픈 기쁨 중 하나’라는 것. 1㎞도 채 안 되는 짧은 오르막 하나 올랐다고 감동에 목
맬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자전거 여행이 점점 흥미로워진다. 점점 재미있어진다. 

 

이화령고개 정상에서 내려다본 모습

 

“너는 할 수 있어”를 외쳤던 미국인 여행자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아담(Adam)과 매리(Mary)는 부부 사이, 노라(Norah)는 아담과 직장 동료 사이다.
출장 차 서울에 온 아담과 노라, 출장 업무 후 한국에서 열흘 남짓 휴가를 계획하면서 매리까지 합류하게 되었다.
자전거로 한국을 여행하게 된 건 노라의 아이디어였다.
우연히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한국의 자전거도로에 대한 정보를 본 노라는 단박에 매료되어 루트를 살피기 시작했
고 그렇게 그들의 자전거 여행은 시작되었다.
시카고에서 직접 자전거를 가지고 한국을 찾은 열혈 여행자들에게 “실제로 한국의 자전거도로를 경험해본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퍼펙트, 원더풀, 뷰티풀, 어메이징.” 형용사란 형용사는 모두 입 밖으로 나왔다.
“시카고에도 자전거도로가 있긴 한데, 지역별로 조성되어 있고 서로 연결된 곳은 없지요. 600㎞가 넘는 먼 거리가
 자전거도로로 쭉 연결되어 있다는 게 놀라워요. 도로가 정말 깨끗하고 쾌적해요. 이정표도 잘 되어 있어서 찾기 쉽
 고 무엇보다 강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요."
이들의 극찬이 쏟아지는 동안 한국인으로서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근데 한국 사람들은 자전거 굉장히 좋아하나 봐요? 모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전거 선수들 같아요.”
매리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윤동건 씨의 말을 빌려 답을 했다. 

“그건 우리 한국인들이 바빠서 그래요”라고.
노라의 튜브에 펑크가 나 식당 근처 자전거 숍을 안내해준 뒤 혼자 다시 페달을 밟았다.
충주 탄금대를 벗어나자 ‘새재 자전거도로’ 푯말이 나타났다. 이제 남한강과는 작별이다.
달천을 따라 목적지 수안보로 향했다. 몸 상태가 차츰 자전거 여행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좋은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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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령고개를 오르자 아프리카가 보였다  
전날 밤 사찰 입구 공원에 텐트를 치려 하자 스님께서 게스트 룸을 내주셨다.
아침 밥상에 차까지 대접 받고 이화령고개 대장정에 나섰다.
수안보 뇌곡마을을 지난 시점부터 오르막이 나타났다. 몇 번을 멈추었지만 엉덩이를 안장에서 떼지는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 3㎞를 넘겨 드디어 내리막이 나왔는데, 이화령고개라 믿었던 이 오르막이 소조령고개로

판명됐다. 이보다 더한 고개를 다시 올라가야 한다나…. 우울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씽씽 내리막을 달리다 ‘원풍리 마애불좌상’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보물 제97호로 지정된 마애불좌상은 높이 12m에 달하는 큰 암석에 두 불상이 나란히 앉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화령고개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낼까 싶어 잠시 두 불상을 번갈아 바라봤다.
자전거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하는데, 갑자기 자동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섰다.
수안보 시내에서 나를 봤다는 중년부부는 “벌써 여기까지 왔느냐”며 놀라워했다.
부부는 비타민 보충을 하라며 창문 너머로 사과와 바나나를 건네며 “부산까지 응원합니다”라고 말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 길 위에서 또 용기를 얻고 희망을 발견한다.

행촌교차로인증센터에서 행촌교를 지나자 무시무시한 그 이름, 마의 5㎞ 오르막 구간 ‘이화령로’가 나타났다.
초반 오르막은 가파르지 않아 비교적 무난하게 올랐다. 중반 이후부터 예상대로 고난은 찾아왔다.
페달을 밟기보다 두 발이 땅에 정지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자전거를 끌지 않겠다고 다짐한 목표는 그래도 잘 수행되고 있었다.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올라가본 경험자로서 여행 고수들이 말하는 ‘짐을 실은 자전거는 끌기보다 타고 가는
게 오히려 쉽다’는 의미를 이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나긴 오르막을 오를 땐 특별한 기술이 딱히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의지’가 중요하다고 느꼈는데, 의지를 잃지 않으려면 스스로 독려가 필요했다.
가장 훌륭한 건 중간중간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면서 ‘그래, 이만큼이나 올라왔어’하는 감탄과 감동에 젖어 드는 것,
저 아래 유려한 산자락 풍경에 젖어 드는 것, 이마저도 힘들면 그냥 쉬었다 가는 수밖에 없다.
1㎞ 구간마다 휴게소가 나타났다.
벤치에 앉아 저 아래 이화령 터널 속으로 돌진해가는 차량을 바라보며 또 다시 ‘의지’를 다졌다.
백두대관 이화령 정상에 오르면 또 다시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막상 올라가보니 마음은 담
담했다. 오히려 ‘경상북도 문경시’ 푯말을 보는 순간 먹먹해졌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경상도’는 아프리카 땅만큼이나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머나먼 대륙을 넘었다. 문경을 넘어 상주에 닿았고, 상주상풍교인증센터에 도착하자 충주 탄금대에서 시
작된 약 100㎞ 구간 새재자전거길과도 작별을 고했다. 
이제 낙동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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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여행자 옌(좌)과 카르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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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갈아치운 인생 최고기록  
엊그제 이화령을 오르다 만난 말레이시아 여행자 카르순(Karsoon), 옌(Yen)과 비를 뚫고 대구까지 함께 달렸
다. 하루 총 이동거리 100㎞를 넘겼다. ‘115㎞’ 인생 최고 기록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숫자는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대구시내에 들어서자 닷새 만에 찾은 도시의 화려한 네온불빛이 낯설게 느껴졌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도시는 대낮처럼 분주했다. 바쁜 일상은 쉬이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온 카르순과 옌은 디자인 회사를 공동 운영하다
현재 갭 이어(Gap Year:하던 일을 중단하고 잠시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는 시기) 중이다.
서울을 여행하던 이들은 부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홍대 인근 자전거 숍에서 연식이 족히 15년은 된
중고 자전거를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싼값에 구입했다.
동네 마실 갈 때나 탈 법한 이들의 생활 자전거는 기어나 체인 상태가 엉망이었다.
무게는 또 어찌나 무거운지, 내 자전거와 패니어 가방의 무게를 합치고도 이들의 것이 훨씬 월등한 무게를 자
랑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오사카로 넘어가 자전거 여행을 계속 이어갈 거라는 열정 가득한 여행자들
앞에서 장비가 좋고 나쁘고를 감히 논할 수 있으랴. 물론 안전도 중요하고 장비도 중요하다.
그러나 때론 열정 하나만으로 되는 것도 있다. 그것의 실재를 정확히 목격했다.

경상북도의 끝자락 고령군을 지나 경상남도의 시작점 창녕군에 닿았다.
합천창녕보인증센터로 향하는 길목에서 미국인 여행자들을 반갑게 조우했다.
충주에서 헤어진 이후 상주에서 한 차례, 대구에서 한 차례 우연히 만났던 우리는 네 번째로 조우한 창녕에서
하룻밤 야영과 다음날 이어질 부산까지의 페달을 함께 밟기로 했다.
호객행위 하러 다가온 모텔 사장에게서 황강 근처 목 좋은 야영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푸르른 초원 위에 텐트를 쳤다.
높다랗게 자란 풀 위에 누우니 폭신폭신한 침대가 부럽지 않았다.

낙동강자전거도로가 끝나는 부산 낙동강 하구둑까지 130㎞를 달려야 한다. 불가능한 숫자다.
이화령고개만큼이나 무시무시하기로 소문난 박진고개 대신 국도를 이용하자는 아담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
다. 지금껏 자전거전용도로만 달리다 보니 국도나 지방도를 타는 경험이 궁금했다.
적포교를 건너 79번 국도를 타고 부곡면으로 향했다. 한두 시간 경험으로 충분했다.
쉴 새 없이 지나치는 차량과 소음 때문에 잔뜩 겁을 먹은 탓인지 핸들을 잡은 손과 손목에 무리가 왔다.
며칠 자전거 좀 탔다고 자신감이 붙어도 너무 붙었나 보다. 창원시 수산대교에서 다시 자전거도로를 탔다.
연이어 평지가 계속됐다.
뿌연 안개가 뒤덮인 낙동강을 따라가는 길은 입 밖으로 저절로 ‘행복하다’라는 말을 읊조리게 했다.
고층 아파트와 높다란 빌딩이 시야에 들어왔다. 낙동강 하루둑까지 10㎞ 구간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9㎞, 8㎞, 7㎞, 6㎞… 푯말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오른손을 들어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열 번의 파이팅 끝에 을숙도에 닿았다. 불가능하다 여겼던 130㎞는 새로운 인생 최고기록이 됐다.
이제 그 너머의 불가능을 꿈꿔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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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낙동강 하구둑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엉덩이의 고통도 아니요, 매일 자전거를 타야 하는 부담감도 아니요,
길을 헤맬 때도 분명 아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많아도 너무 많은 자전거 용품들 가운데 무엇을 사고 무엇
을 사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보름 동안 자전거 타는 게 오히려 쉬웠을 만큼 여행 준비에 곤혹을 치른 필자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건네고자 한다.
자전거 여행에 꼭 필요한 자전거, 패니어 가방, 헬멧, 장갑, 토시, 마스크, 버프, 우비는 항목에서 뺐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을 것. 어차피 선택은 당신의 몫이니까.

 

 

자전거길 여행에 가져가면 좋은 것 
자전거 바지
필자는 자전거 바지를 입지 않고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 3~4일까지 엉덩이가 안장에 적응하느라 꽤 고생을 해
야 했다. 여행하며 만나는 라이더들에게 패드 바지를 입는 것과 안 입는 것의 차이를 물었다.
국적과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안 입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라고 했다.
다른 자전거 의류는 몰라도 패드가 부착된 바지 한 벌은 꼭 입자. 필자도 다음 자전거 여행 때는 가장 먼저 바지
부터 구입할 것이다.  

전조등과 후미등
야간에는 라이딩을 하지 않는 것이 필자의 자전거 여행 0순위 철칙이었다.
전조등과 후미등을 챙겨가긴 했지만 제품의 성능이나 상태를 따지지 않았다.
막상 자전거 여행을 해보니 야간에 라이딩을 하지 않더라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간다거나 예기치 못하게 일몰
을 맞이하는 순간이 생길 수 있었다.
전조등과 후미등은 한번 구입하면 배터리만 갈아 끼워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보단 성능을 따져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스포츠 물통
물통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챙기라고 채근한 주변인도 없었다. 그런데 물통은 굉장히 중요하다.
뚜껑을 열기 위해 양손을 사용해야 하는 생수병을 자전거 여행 내내 사용한 필자는 물 한번 마시려면 자전거를
세운 뒤 목을 축여야 했다. 한 손으로 열고 닫는 게 가능한 스포츠 물통을 반드시 챙기자.  

정비용 장갑
혹여 자전거가 고장 나서 정비할 때 쓰려고 목장갑 한 벌을 챙겼다. 실제로 굉장히 요긴하게 사용했다. 

휴대용 정비도구
자신이 정비를 할 줄 몰라도 휴대용 멀티 도구나 펑크 패치 세트 정도는 반드시 챙기자. 지나가는 라이더의 도
움을 받게 되었을 때 당당히 자신의 정비도구라도 건네 체면을 차릴 수 있을 테니. 허나 가장 모범적인 답안은
정비도구를 이용해 스스로 정비를 할 줄 아는 독립적인 라이더가 되는 것. 

고글
집에 있는 선글라스를 끼면 되지 고글까지 사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괜히 허세부리는 것 아닐까 싶었다.
직접 경험해본 결과 선글라스보다 고글이 눈 보호 효과가 높았다. 

핸들바 가방
당이 떨어질 때마다 재빨리 보충해줄 초콜릿, 멋진 풍경이 펼쳐질 때마다 재빨리 찰칵 찍어줄 카메라, 재빨리
화장실 갈 때 사용할 휴지, 잠깐 멈췄을 때 땀을 재빨리 닦아줄 물 티슈나 손수건 등등 성질 급한 한국인에게
핸들바 가방은 축복이다. 핸들바 가방 없이 여행을 한 필자는 뒷바퀴에 달린 패니어 가방에서 이 모든 것을 꺼
내느라 짜증이 끊이지 않았다. 

공기 펌프 어댑터
자전거길 곳곳에 공기 펌프 설치가 잘 되어 있었다. 한데 모든 튜브 타입에 공기 주입이 가능하지 않을 때도 더
러 있었다. 필자의 뒷바퀴 튜브는 슈레더 방식인데 공기 주입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프레스타 방식이 언제
어디서나 공기 주입하기가 쉬웠다.

자전거길 여행에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것 
휴대용 펌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전거길 곳곳에 공기 펌프 설치가 아주 잘 되어 있다.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살까 말까 망설여진다면 후자를 택하는 게 좋다. 

취사도구
초보 라이더에게 취사도구는 짐일 뿐이다. 초보 라이더 딱지 떼고 난 뒤 취사도구에 욕심 내도 된다. 

군것질 음식
당 보충에 필요한 초콜릿이나 에너지바 등의 군것질 음식은 자전거 여행 도중 마트나 편의점에서 얼마든지 구
입 가능하다. 여행 전 일부러 한아름 구입하고 준비하는 과욕을 범하지 말 것. 

예비 튜브
자전거도로의 90% 이상이 매끈하게 잘 닦여 있기 때문에 대형 펑크 사고 가망성은 희박하다.
예비 튜브보다 튜브 패치가 오히려 짐도 줄이고 효율적인 답이 될 것이다.
단, 전문가 장현필 씨 의견을 덧붙이면 작고 세밀한 펑크일 때는 패치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구멍이 크거나 밸
브 쪽에 이상이 생겨 바람이 빠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예비 튜브 하나 정도 챙기는 것을 권장했다. 

음악파일
의외로 음악 들으며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다운 받아간 음악파일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정도. 

지도
필자는 종이 지도 대신 애플리케이션 ‘자전거 행복 나눔’을 다운 받아갔다.
전국 자전거도로가 지도 상에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고 자전거길 주변 숙박, 식당,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까지
잘 정리된 아주 스마트한 앱이다. 

속도계
속도계도 휴대용 펌프와 마찬가지다.  살까 말까 망설여진다면 후자를 택하는 게 좋다.
평균속도와 총 이동거리를 측정해주는 것은 좋으나 문제는 이것뿐이라는 것. 만약 속도계를 사야 한다면 한번
구입으로 오래 사용할 것을 감안해 가격보단 성능을 따져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속도계에 대한 전문가 장현필 씨의 의견을 첨언한다. 그는 내리막 길에서의 속도계 활용을 언급했는데,
내리막을 달릴 때 현재속도를 인지하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거나 조절하는 효과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글·사진 -  추효정 (프리랜서 여행기자)
출처 - 매일경제 Citylife 제5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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