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 씨 - 박완서 / 문학과지성사 2007. 10. 17.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몰래 도망쳐 나오며 혹시나 객지에서 병이 나면 큰 일이라 생각해
평소 어머니가 만병통치 약이라고 말해 온 아편 덩어리를 챙겨 들고 나왔지만
그동안 꿈꾸어 왔던 버스 차장은 되지 못하고 얻게 된 식모살이. 그곳에서 19살 복희는
아이 하나 있는 띠동갑 홀아비에게 겁탈을 당하며 아이를 배게 된다.
결국은 홀아비와 결혼, 아이 네 명을 낳아 키워 기른 그 오 남매가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한다.
그렇게 목석같던 내 몸이 진저리를 치면서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나라고 그때까지 왜 사랑을 꿈꿔보지 않았겠는가.
내가 꿈꾼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거였다.
그러나 이건 몸의 문제였다.
나는 내 몸이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
헐벗은 우리 시골 마음에 있던 단 한 그루의 꽃나무였다.
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 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
나는 내 몸에 그런 황홀한 감각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중풍으로 쓰러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여전히 왕성한 성욕만은 변치를 않았다.
그런 남편과 하숙집을 운영하며 근근이 생활하던 어느 날,
남편의 요구로 간 약방에서 그 약이 성욕 촉진제라는 말을 듣고 절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만병통치로 알고 아껴왔던 아편 덩어리를 한강에 버린다.
세상이 아름다워가 아니라, 내가 죽기도 억울하고, 누굴 죽일 용기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너 죽고 나 죽기를 선택한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 온 죽음의 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검은 강을 향해 힘껏 던진다.
그래도 나는 허공에서 치마 두른 한 여자가 한 남자의 깍짓동만 한 허리를 껴안고
일단 하늘 높이 비상해 찰나의 자유를 맛보고 나서 곧장 강물로 추락하는 환 幻을,
인생 절정의 순간이 이러리라 싶게 터질 듯한 환희로 지켜본다
[t-08.02.21. 20220203-161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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