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황홀 - 구본형/을유문화사 2004. 11. 04.
7월 19일
강연 - 1
아침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을 하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면 훌륭한 강연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에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멋진 강연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조금 불행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행복한 사람들은 변화하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지금 나의 삶이 최선이 아니지만 덮어 두고 있는 자신에 대한 실망,
신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는 자책,
살아왔던 것과 똑같이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저항,
훨씬 더 훌륭한 삶을 획책하고 꾸러 갈 수 있다는 꿈틀거리는 흥분.... 이런 것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위한 강연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누군가를 위한 조언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바라건대 그 누군가가 그곳에 모인 모두이기를 늘 희망하긴 하지만요.
강연 - 2
강연이 콘서트나 리사이틀과 다른 점은?
1 콘서트나 리사이틀은 입장하기 전에 관객들이 이미 흥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겠지요.
그러나 강연은 대체로 차려 놓은 밥상에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회사 연수에 참석해 보니 우연히 그 사람이 강사로 그곳에 와 있더라는 것이지요.
2 콘서트나 리사이틀은 관객이 무대 위의 스타가 되고 백 댄서가 되도록 해야 훌륭한 공연이 됩니다.
그러니까 잠시 자신을 떠나 남이 되는 것이지요. 아주 화려한 변신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문하의 소비를 좋아하지요.
그러나 변화 경영 강연은 강사가 관객이 되어 그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좋은 강연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관객이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어 돌아보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별로 화려한 작업은 아닙니다.
어쩌면 수술을 하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것이 바로 관객 스스로가 문화의 창조자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재료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니까요.
휴가 - 1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나는 뜰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때부터 어둠이 내리기까지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언젠가부터 가만히 혼자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나를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고 간혹 말입니다.
방을 나설 필요는 없다.
그냥 책상 앞에 앉아 귀를 기울여 보라.
아니 귀를 기룰일 필요도 없이,
그냥 기다려라.
아니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저 조용히 고요하게 고독해져라.
세계가 가면을 벗고 그대 앞에 자유로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선택할 필요도 없다.
세계가 황홀경 속에서 그대의 발아래로 굴러들 테니.
-프란츠 카프카.
그 동안 늘 스스로에게 독촉하곤 했거든요.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것은 참기 어려웠지요. 뭐라도 해야 했지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니 파도를 타고 바람을 탄 듯 이렇게 편하고 리드미컬하군요.
교보문고에 가서 책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늘 머무는 곳은 역사와 철학 코너입니다.
왠지는 잘 모르지만 그곳에 가면 내 눈길을 끄는 책들이 너무 많아 이것저것 골라 넘겨가며
군데군데 읽어 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내 생각으로는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직업인은 결코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결국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한 '자신의 견해'거든요.
철학이 없으면 어느 것도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없으면 자신을 세상에 표현할 수 없지요.
예술이란 세상에 대한 자신의 표현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철학이 있는 경영은 바로 예술이라 불릴 수 있지요.
역사는 철학이라는 추상적 견해가 결국 무엇을 만들어 내었는가에 대한 현실적 증거들이고요.
철학책을 읽는 것은 철학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을 알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철학을 만들고 가다듬고 정리하고 부수고 재편하는 ‘평생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걸 저는 변화라고 부르지만요.
생각이 자라지 않는 변화는 그래서 본질적일 수 없습니다.
역사는 사례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내게 있어 역사는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삶과 현실에 대한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다....,
역사란 시간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다....,
결론적으로 나는 스스로를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 윌 듀랜트.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긴 살고 있는 것일까요?
※ 이 글은 <일상의 황홀>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6.23. 20240608_184809]
'작가책방(소설 > ㄱ - 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부 상실의 늪 - 은하수/경요 (0) | 2007.07.01 |
---|---|
사소한 하루란 없다 (봄 p19) - 일상의 황홀/구본형 (0) | 2007.07.01 |
사소한 하루란 없다 (봄 p58) - 일상의 황홀/구본형 (0) | 2007.06.19 |
사소한 하루란 없다 (봄 p35) - 일상의 황홀/구본형 (0) | 2007.06.19 |
사소한 하루란 없다 (봄 p103) - 일상의 황홀/구본형 (0) | 2007.06.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