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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메론 미첼-숏버스/대립은 싫어요, 섹스를 하세요!

by 탄천사랑 2007. 5. 25.

「오마이뉴스 - 2007.05.24」

 

 

 '저는 그녀의 몸 위에 올라와 있었어요. 밤이었고, 우리 둘은 침대에 엉켜있었죠. 그녀의 몸 안으로 계속 제 몸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요, 섹스를 하고 있었어요. 신음이 터져 나오면서 저는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행복했어요. 그런데, 과연 그녀는 행복했을까요? 황홀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거예요.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눈을 감으며 애써 아픔을 참는 그녀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어요. 사정하지 못한 제 성기가 빠르게 수축했습니다. 행복은 사라져버리고 문득 저는 한없이 슬퍼졌어요. 결국 소통하지 못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가장 직접적인 소통 행위인 섹스에서도 결국 나는 네 몸을 통한 나의 감정만 느낄 수 있구나.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하나로 유연하게 묶어지는 일은, 마법 같은 소통은, 그렇게 끝끝내 이뤄지지 않는 걸까요'

 

 

직접적인 표현으로 당황스러워 하고 있는 분들, '지금 야설 쓰는 거냐'며 불쾌해 하는 분들, 부디 조금만 참고 들어주실래요?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버스> 얘기를 하려고 해요. 과도한 성행위를 다뤘다는 이유로 국내 심의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이 영화가, 최근 <씨네 휴 오케스트라>라는 작은 영화제의 특별상영작으로 스폰지하우스에서 상영되고 있거든요.

 

포르노를 연상케 할 만큼 적나라한 실제 성행위가 담겨 있는 이 영화는 그러나 절대 포르노가 아닙니다. 감미로운 음악과 철학적인 대사들이 얹혀 있는 <숏버스>는, 섹스를 매개로 결국 인간 사이의 '소통'과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에요.

 

영화의 도입부에서 카메라는 뉴욕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세 인물을 보여줘요. SM 플레이어로 채찍을 휘두르며 남자를 흥분시키고 있는 세브린. 갖가지 체위로 남편 롭과 거친 섹스를 하는 소피아. 발가벗은 몸을 둥글게 구부려 자신의 성기를 직접 빨고 있는 제임스.

 

다분히 충격적인 오프닝에서 언뜻 그들은 성의 환락에 취한 듯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신음을 내뱉는 소피아에게서는 그늘이 엿보이고, 제임스는 자신의 정액을 받아먹은 후 울음을 터트려요. 생계를 위해 SM 플레이를 억지로 하는 세브린은 말할 나위도 없겠죠.

 

<숏버스>는 이윽고 세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성 상담 전문가인 소피아는 사실 한 번도 오르가즘을 느껴보지 못했어요. 어린 시절 자신의 몸을 팔았던 동성애자 제임스는 애인 제이미와 동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로 타인을 허락한 적이 없고요. 세브린은 어떨까요? 사실 '세브린'은 가명이랍니다. 남자들과의 음란한 대화가 일상인 그녀가 정작 힘들어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죠. 관계 맺기에 힘들어하는 그녀가 연애를 할 줄 모르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당연합니다.

 

이렇게 영화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결핍돼 있고, 소외감을 느껴요. 표면적으로는 성생활에 대한 고민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결국 '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비애에 시달리고 있죠.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세 인물

                                                                                                                  이미지 스폰지하우스

세브린이 말한다.

"끝나고 나면 슬퍼지나요?"
"그래."
"왜요?"
"시간이 멈추지 않아서. 나 혼자도 아니고."

 

각자 떨어져 있는 이들은 '숏버스'를 통해 모이게 됩니다. 미국에서 '하자 있는 이들'을 비하하는 은어인 '숏버스'는 실제 뉴욕에 있는 언더그라운드 동성애 섹스클럽 이름입니다. 날마다 '성축제'가 벌어지는 이 클럽의 풍경은 우리에겐 참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웨이터들이 쟁반에 콘돔과 오일을 담아 제공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휴대폰에 자신의 키와 성기 크기 등의 '섹스정보'를 입력해 파트너를 찾거든요. 클럽 마담인 저스틴 본드가 "재능 있고 하자있는 사람들의 놀이터"라고 규정한 이 클럽에서 세 인물은 치유의 여행을 떠납니다.

 

<숏버스>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단순한 포르노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증명합니다. 소피아와 세브린부터 볼까요? 오르가즘을 '쟁취'하려는 소피아는 관계 맺기를 버거워하는 세브린과 교감하기 시작해요. 세브린은 소피아에게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 조언을 주고, 소피아는 세브린에게 '연애 하는 방법'을 알려주지요.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둘, 세브린이 소피아에게 자신의 실명을 알려주면서 두 여자는 아름답게 하나가 됩니다. 또 소피아는 남편 롭에게 건네준 '자위기구 원격 리모콘'이 엉뚱한 곳에 굴러다니는 것을 발견하면서 롭이 전혀 자신과 소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자살하려고 했던 제임스가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과정도 빠트릴 수 없어요. 애인 제이미에게 자신의 죽음이 그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제임스는 '자살 셀프 동영상'을 찍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어요. 옆 빌딩에 사는 남자는 제임스를 짝사랑하면서 그의 일상을 몰래 사진기에 담고 있었거든요. 마침내 물속에서 자살하려고 하는 제임스를 그 남자는 구해내고, 남자의 방 안에서 둘은 서로 교감합니다. 눈물 흘리며 삶의 의미를 되찾은 제임스는 섹스를 하면서, 타인이 자신 속에 들어오는 것을 자신의 의지로 처음 허락하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래서 결국 유연하게 소통하는 기적. <숏버스>는 결국 성을 통해 인간 사이의 근원적인 '소통과 이해'를 말하는 영화입니다. 더구나, 적나라한 성행위를 묘사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표현방식은 매우 부드러워요.

 

아기자기하고 감동적인 영화음악들은 귀를 즐겁게 하고, 위트 있는 대사들은 극장을 웃음으로 가득 차게 합니다(세상에, 뉴욕시장을 지냈던 이도 '숏버스'를 찾았다니요!). 무엇보다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마지막 장면인 듯 보여요. 소피아가 오르가즘을 느낄 때의 울림이 빛줄기가 되어, 정전됐던 뉴욕 시가지에 불이 들어오는 극적인 장면.

 

그래서 종내 <숏버스>는 강한 정치성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테러, 살인….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짓밟으려는 이 야만의 시대에서, 감독은 말하고 있는 듯해요. 가장 직접적인 섹스를 통해서든, 어떤 수단을 쓰든, 서로를 이해하라고 말이지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결국 누구에게나 그 소통의 아름다운 순간은 온다고요.

 

이제, 극장을 나오면서 제 머릿속에 떠오른 환상을 말해볼까요? 대립하고 부딪히는 각 나라의 정상들이 '숏버스'에 모여 자유롭게 서로 섹스를 하고 있어요. 그 곳에 부시 미국 대통령도 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있군요.

 

 

- 양창모 기자

덧붙이는 글<숏버스>를 만든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이 현재 방한중입니다. 그는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판정'에 대해 "사랑을 다룬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을 막을 시간이 (영등위에게) 있다니 슬프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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