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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크리스텔 프티콜랭

1장 - 1 생각이 많은 독자들의 편지

by 탄천사랑 2016. 10. 17.

·「크리스텔 프티콜랭 -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생존편)」

 

 

 

생각이 많은 독자들의 편지

프티콜랭 선생님께
이렇게 직접 편지를 보내게 되다니 정말 기뻐요!
저는 스물네 살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넌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이야.'라는 말을 밥 먹듯 들었어요.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 
나한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지요. 
순전히 재미 삼아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를 샀다가 홀딱 빠져 버렸습니다! 
무슨 계시라도 받은 기분이었죠. 
선생님의 분석을 읽으면 읽을수록 전부 저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어요. 
믿을 수가 없었죠. 
주변 사람들에게도 책 이야기를 엄청 했습니다. 
선생님 말마따나 이 <침범하는 정신>을 
‘정신적 과잉 활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뚜렷하게 갈리더군요.
자기분석을 즐기고 '자기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제 선전이 잘 먹혔지만.
아주 실용적인 사람들은 

"그런 책은 행운의 별점하고 똑같지.
 누가 읽어도 조금은 자기 얘기 같은 구석이 있어서 괜히 이해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라고,
 사이비가 아닌 건 확실해?"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죠.
왠지 선생님은 이 글을 읽으면서 웃고 있을 것 같네요.

책을 읽은 뒤 몇 달 동안 계속 생각했어요.
'바로 이거야. 이거였어.
 한동안 억압하려고만 했던 내 성격의 특징을 제대로 알았어'
제가 그간 맞닥뜨렸던 몇몇 반응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뭐랄까.
향상 저만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같은 별 사람들을 만난 기분이었죠.

다만, 지금 돌이켜 보니 제가 지나치게 흥분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이렇게 대꾸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거든요.

"나도 생각은 쉴 새 없이 하는데?
 생각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렇다면 세 가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겠지요.
- 제가 논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거나
- 그 사람들 역시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거나
- 저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아닌데 
  선생님 책을 잘못 해석해서 제 얘기라고 멋대로 생각해 버렸는지도 모르죠.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스스로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고 선언하고 나니 처음에는 드디어 이해받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라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제 지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더군요.
그렇잖아도 저는 남들을 
살짝 깔보는 경향이 있어서 이 문제점을 조금씩 고쳐 보려고 늘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 책에서 깨달음을 얻고 나니 
머리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깐깐한 새침데기일 거라고 생각하진 마세요.
저는 오히려 너그럽고 이타적인 편이랍니다.
남들의 행복에(좀 지나칠 정도로) 마음을 쓰는 사람이죠.

저는 (가방끈과는 상관없이) 웬만큼 재기가 있는 사람만 상대하죠.
그 밖의 사람들과 사귀려고 애쓰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제가 보여 주려고 노력한 바를(노력은 해 봤답니다) 어차피 이해 못할 거예요.
아예 이해의 '여지'가, 세계에 대한 성찰이나 분석 감각 자체가 없는 것 같은데 어쩌겠어요.
게다가 세상에는 호기심이 많고 그 자신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사람이 널렸어요.
더불어 나눌 수 있는 것도 널렸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면 합리적이기 그지없는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와! 대단하셔!
 어릴 때 춤 좀 추면서 놀았나 봐?
 히피들이나 하는 소리를 하고 있네. 잘났어 정말!"

고맙기도 하지요!
입 열어 봤자 헛소리로 치부당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개처럼 입을 꼭 다물고 저 사람들 말이 맞나 보다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하지만 그건 선생님 책을 읽기 전의 일입니다.
지금은 제가 그런 '평범한' 사람들보다 한결 앞서 있는 기분이 들어요.

선생님은 영재성과 감성지수(EQ)도 다루셨지요.
저도 감성지수 검사를 받아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를 '특별하게' 느낀다든가, '머리가 아주 좋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지능지수 검사는 합리성을 따지는 논리 문항,
'수학 나부랭이'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저는 논리, 추론, 숫자라면 아주 질색이에요.
(일상생활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자리가 뻥 뚫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과장이 아니라 저는 수를 제대로 세지도 못해요)
그 대단한 지능지수 검사지를 보면서 생각했죠.
'이런 걸 풀어야 머리가 좋다고 하는 거였어? 그럼 나는 글러 먹었구나'

저는 크게 좌절했어요.
내심 저 자신에게 뭔가 특별한 데가 있다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제가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아요.
- 정말로 한시도 쉬지 않고,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질문들을 수시로 동시에 떠올리곤 해요.
  이따금 너무 많은 생각에 저 자신이 진저리를 치기도 합니다.

- 남들에게 감정을 심하게 이입해요.
  누군가의 불행한 사연을 들으면 
  가슴에 뭐가 콕 맺힌 것처럼 답답하고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아요.
  가끔은 집에 돌아와서도 
  다른 사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민합니다.
  최악은 가끔 내가 당사자보다 더 깊이 관여하고 만다는 거예요.
  게다가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나밖에 해결할 사람이 없다고 진심으로 믿어 버려요.
  그 사람을 도우려고 나서지 않으면 
  정말로 병이 날 것처럼 끙끙 앓고 무서운 죄책감에 시달리죠.
  자기중심주의의 극치일까요?

-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혹은 그 이후에도) 사람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에 담습니다.
  보자마자 바로 '스캔'에 들어가서 저 혼자 속으로 우스꽝스러운 질문들을 떠올립니다.

'음, 손가락에 반지를 꼈던 자리만 하얗구나.
 어디로 여행을 갔기에 저렇게 탔을까?
 하지만 지금은 3월인데 어디서 일광욕을 즐겼담?
 해외여행을 다녀올 형편은 되나 봐.
 그런데 왜 반지를 뺐지?
 그냥 멋으로 끼는 반지였을까?
 결혼반지였을까?
 이혼을 했나?
 어쩌면 배우자와 사별을 했을지도 모르지.
 이혼이면 어느 쪽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했을까?
 이유가 뭘까?
 어쩌면 저 여자는 요즘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몰라'

이 모든 질문이 1분도 안 되는 동안 번개처럼 떠오르죠.
정중하게 악수를 나누고 내 소개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물론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가끔은 이런 의문들이 제멋대로 밀려오는 느낌을 참을 수 없어서 
나 자신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어집니다.
'이제 그만해,
 더는 이런 식으로 못 살아. 지겨워 죽겠어!'

선생님 책을 읽고 나서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감정을 웬만큼 모으고 정리할 수 있게 됐거든요.
그러지 않았다면 전 미쳐 버렸을 거예요.
(..)

프티콜랭 선생님.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를 정말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에게 속을 털어놓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시는 일이 다 잘 되기를 빌며,
다시 한 번 제 글을 읽어 주신 데 감사드려요.

-마음을 담아, 아멜리 드림 



아멜리의 이메일은 독자 편지를 대표하는 유형으로,
독자들이 보통 내게 말하고 싶어 하는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여러분도 내게 편지를 쓴다면 이와 비슷한 내용이 되지 않을까?
게다가 이 편지는 내용뿐만 아니라 분량도 내가 받은 독자 편지의 평균치에 해당한다.
이제 독자 이메일을 다 읽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내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아주 솔직 담백하게 털어놀곤 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대여섯 줄 정도로    ******간략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겠지요"
"생각이 너무 많고, 말이 너무 많다고 구구절절 적고 보니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 짧게 써야지 다짐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네요.
 그러니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간혹 열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메일이 다음과 같이 마무리되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솔직히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p23)
※ 이 글은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크리스텔 프티콜랭 -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생존편)
역자 - 이세진
부키 - 2016. 03. 18.

[16.10.17.  201017-17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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