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열림원 1997. 05. 10.
오늘은 뭘 배웠지?
북인도 바라나시의 한 여인숙에서 묵고 있을 때였다.
낮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늙은 여인숙 주인이 내게 묻곤 했다.
“오늘은 뭘 배웠소?”
그는 여행자인 내게 ‘오늘은 뭘 구경했소?’라고 묻지 않고 항상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어서 나는 아무렇게나 둘러대곤 했다.
“오늘은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내 대답에 무척 신기해 하며 심부름하는 아이까지 불러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손님이 오늘,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걸 배웠다는구나.” 그러면 아이도 덩달아
“그래요? 그런걸 배웠대요?”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주인은 또 물었다.
“오늘은 뭘 배웠소?” 나는 또 아무 거나 둘러댔다.
“오늘은 인도에 거지가 무척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그래요? 그런 걸 배웠어요?” 하면서 또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자랑하듯이 설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아이와 짜고서 나를 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로 작정하고 다음 날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은 인도에 쓸데없는 걸 묻는 사람이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러자 여인숙 주인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누가 그런 쓸데없는 걸 묻던가요?”
나는 그가 내 말 뜻을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알아 듣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몰라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그런 희한한 사람이 있습디다. 안녕히 주무시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어김없이 여인숙 주인은 똑같은 걸 묻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주인은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저 손님이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는구나.”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괴상한 여인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다른 곳으로 옮길까도 했지만
곧 떠나야 했기 때문에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저녁 그 이상한 여인숙 주인에게서 그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 오늘은 뭘 배웠소?”
그러다 보니 차츰 나도 세뇌가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 쯤 지났을 때는 여인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그것은 바라나시를 떠나 인도의 다른 도시들로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딜 가든지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면 그것을 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숙 주인은 참 괜찮은 스승이었다.
※ 이 글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7.01. 20220712_1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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