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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것보다 조금 모자란 것이 더 강하다-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하버드 경영대 교수 15인

by 탄천의 책사랑 2007. 12. 19.

 

 

 

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 - 하버드 경영대 교수 15인/세종서적 2005. 03. 01.

낸시 F. 코엔
완벽한 것보다 조금 모자란 것이 더 강하다
내 부친도 나처럼 학자다.
그는 철학교수로서 '사려 깊이, 체계적으로' 생각할 것과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질 것을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위대한 스승이었다.
부친은 강의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에너지가 끓어 넘쳤다.
나는 세상에서 아버지만큼 능력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자랐고,
사실 그런 생각은 어른이 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1990년대 초에 교수직을 은퇴한 후에도, 
미국 철학협회와 시에라클럽, 경영윤리협회 같은 단체들을 거치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단체에서 일할 때조차, 교수직에 있을 때처럼 원칙주의자였다.
아버지의 철학적 연구의 초점은 윤리학이었고, 그중에서도 경영윤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가르치고 책으로도 썼던 정직과 공정함,
타인에 대한 존중 같은 덕목들을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건 그 위치에서 요구되는 책임감에도 변함없이 적용했다.

그런 아버지가 지난여름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느 날 밤 부엌 식탁에 앉아 <뉴욕타임스 New York Times>를 읽다가,

그만 심장에 이상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아버지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3일 후 숨을 거두었다.

나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다.
아버지의 가치관과, 실용적인 기술들, 일과 뛰어난 운동신경까지....,
아버지는 내게 여러 가지 면에서 최고의 역할모델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고,
그 경험은 나로 하여금 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와 의문들에 직면하게 되었고,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커다란 슬픔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와 함께,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몇 가지 선물을 남겨 주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발견할 수 있게 했다는 것도 그것에 포함된다.

A형 혈액형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나는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주로 내게 부족한 것,
내가 하지 않는 것, 혹은 원하는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을 생각하는 데 바쳐 왔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현재의 모습에 충실하도록, 
미래가 어떻든 간에 일단 오늘 내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 남긴 것들 중에는 좀 다른 것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보다 훨씬 '완벽한' 방식으로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내가 본 아버지의 모습은 겨우 몇 장의 스냅사진으로 표현될 정도에 불과하였다.
혈기 왕성한 파이 베타 카파  클럽 (성적이 우수한 미국 대학생 및 졸업생 클럽)에 소속된 학자로서의 사진 한 장,
칠판 앞에서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강의를 하거나 
학생들에게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붓는 열정적인 교수님의 사진 한 장,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정치적 조크를 나누며 큰소리로 오랫동안 웃는 사진 한 정,
그리고 저녁 식탁에 앉아 가족여행 계획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좀 색다른 사진 한 장,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슬픔에 잠겨 있던 나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다양한 경험들을 모두 끄집어내기로 했다.
즉, 아버지와 나눈 대화와 편지, 함께한 순간들을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건 모두 끄집어낸 후에,
말하자면 탁자위에 사진들을 죽 늘어놓듯이 내 마음속에 하나하나 펼쳐 놓아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내 앞에 놓인 아버지의 사진들 중에, 보다 진실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는 사진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더더욱 사실적이고 더더욱 오래 지속되는 영상이다.
사진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힘과 성취를 발견하지만 동시에 약점과 실패도 발견한다.
그의 모습에는 윤택함이나 직업적 헌신과 함께 자기 회의와 황량함이 공존하고,
그가 지닌 에너지는 때로 원망과 뒤섞이기도 한다.
나는 내가 사랑했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아버지를 볼 수 있다.
그는 지적인 동시에 결점을 지닌, 복합적인 인간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내가 아버지와 함께 겪었던 어려움들을 초월하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다른 효과도 있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내 아버지를 바라보던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을 보도록 자극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동시에 가능한 한 여러 각도에서 긍정적인 면과 업적, 성공만이 아니라 불완전함과 약점이라는 
삶의 '연약한' 부분과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측면들을 보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오늘날 성공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규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금전적인 보상, 권력, 명성 등, 특정한 성취의 관점으로 성공을 바라본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약점은 보려하지 않으며,
성취와 실패 사이에 자리한 회색빛 음영 또한 보려 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잘난 사람도 그렇게 못난 사람도 없는 게 아닐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 때문에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한 가지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왜 우리는, 내가 지금 아버지를 보다 폭넓고 통합적이며 진솔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걸까?

나는 그 이유가 사람들을 완벽함으로 몰아가는, 불완전함을 극도로 꺼려 하는 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이 완벽해질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어서,
완벽해지기 위한 노력을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당황하고 실망한 나머지 완전히 맥이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결점을 언짢아하고 약점을 금기시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보다 각별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공동체에서 더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속성들은 대게 감추어지기 일쑤다.
어떤 경우에는, 내 아버지의 약점인 자신감 결여라든가 최고경영자의 정책적 과오 같은 
단지 개인적인 약점이나 사업상의 실수조차도 안정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성공은 눈부시게 치장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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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근 일부 경영지도자들에게서 나타난 책임 회피라는 행태가 
모든 성공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한 경영자들에 대한 사례는 
우리가 완벽함에 대해 얼마나 경직된 시각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가 특정한 사람이나 조직, 
삶의 방식을 얼마나 포괄적이고 무미건조적으로 수용하려 하는지 증명해 준다.
하지만 보다 큰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똑같은 기대를 적용한다는 데 있다. 
언제까지고 언덕 꼭대기에만 머물러야 하는, 오직 성공만이 우리의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도달해야만 하는, 불가능하지만 매력적인 표준이다.
혹시라도 기대에 못 미친다거나 실수를 하거나 실패를 하게 되면,
우리는 심한 수치심에 시달리고 결국에는 자신이 무능한 인간이라는 절망감에 빠져들게 된다.

'타락한 천사'인 성공한 회사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같은 집단적 시각처럼,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평가할 때 종종 이쪽 끝, 아니면 저쪽 끝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하게 된다.

자신이 만들어 낸, 거의 이루기 힘든 성공의 기준에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는 것은 당신의 정신을 좀먹을 수도 있다. 
그러한 감정들은 우리들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을 방해하고,
자신과 타인을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며,
우리의 삶과 경력에서 진취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세상에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약점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 역시 환상일 뿐이다.
처음에 제 아무리 완벽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을 한 겹 한 겹 벗겨가다 보면, 사실은 그가 훨씬 복합적인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다.

내 아버지의 지성 곁에 자신감 결여라는 단점이 있었듯이,
개인의 긍정적인 특성 옆자리에는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비슷한 말로, 
개인의 약점은 그가 지닌 강점과 공존하며, 약점과 강점은 사이좋은 이웃이다. 
만약 우리가 정치가나 북극 탐험대원, 
혹은 최고경영자 등 어느 대단히 성공적인 인물의 매우 솔직한 전기를 읽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그의 박약한 의지와 실패에 대한 이야기들이 
단지 몇 구절이 아니라 책 전체에 분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선거전에서 패배한 경험담이라든가, 
결혼 생활, 혹은 성사되지 못한 모든 거래에 대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내가 학자로서 연구하는 
페트리 접시 (세균 배양용 접시) 속에는 커다란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이따금 경험하게 되는 감정적인 부산물들이 담겨 있다.

그중에, 내가 제법 깊이 있게 조사했던 기업인으로 
1844년에 태어난 헨리 하인즈 Henry J. Heinz라는 사람이 있다.
그의 삶은 승리와 악전고투의 상호작용으로 점철되어 있어 
지도자들에게 보다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로 생각된다.

1896년, 하인즈가 피츠버그에 식품 가공업체를 설립할 당시만 해도,  
미국에는 자신이 직접 기르거나 만들지 않은 식품을 먹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인즈는 소비자들의 식습관에 대변역을 일으키며 피클을 비롯해, 
조미료와 구운 콩들을 생산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그의 성공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손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성공 속에는 충격적인 좌절과 패배도 담겨 있었다.

1875년, 하인즈의 회사는 무너졌다.
당시 하인즈는 위기에 처한 자신의 심정을 일기에 기록했는데,
그것은 좌절과 수치심, 자기 회의로 뒤덮인 내용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살 돈마저 남아 있지 않다.
샐리는 우울한 얼굴로 우는 듯 보인다.
그런데도 그녀는 우리가 망했기 때문에 우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몸이 좀 안 좋을 뿐이라나....,
슬프다.
누구도 이런 시련은 제발 겪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판산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떠미는 기분이다.

그 달의 마지막 날 즈음, 하인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타격에도 불구하고, 
하인즈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다시 식품회사를 운영하는 것이며,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이전보다 강해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고 자신의 실패로부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 년이 안 되어 새로운 회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최상의 제품들을 생산해 냈고, 강력한 브랜드를 창출했으며,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피츠버그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세계 수준의 기업으로 회사를 키워 냈다.

그렇다면 하인즈는 과연 어떻게 해서 처절한 실패를 딛고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고 누구를 걱정하는지,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사업이 어째서 그토록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것마저 기꺼이 포함한 깊이 있는 성찰은 
하인즈라는 기업인에게 탁월한 영향을 주어서 그가 자신에 대한 믿음을 한결 강화하고 
과거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과거의 잘못과 
자신에 대한 반박과 당혹감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 것과,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단순히 자기 자신의 실수와 단점을 인정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며,
무언가 배우기 위해 개인적인 수치심을 극복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하인즈의 경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훌륭한 지도자로서 훌륭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1991년, 하버드 경영대학의 로널드 C. 크리스텐슨 교수는
교수법에 대한 사례 연구를 모아 <판단을 위한 교육>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내가 이 책을 언급하는 이유는 아 책의 제목이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망 있는 지도자로서, 여러분은 조직을 특별하게 키워 내거나 어쩌면 보다 큰 세상에서 
뭔가 큰일을 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우리는 자신만의 조각 천을 인간 행동이라는 퀼트 이불에 꿰매고, 
그 조각천이 장식으로서 최대한 화려한 효과를 거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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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타당한 판단을 하기 위해' 여러분의 지성과, 성실함, 
그리고 경험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지니게 될 권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여러분의 지도력과 지도 방법의 핵심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여러분이 당장 이 순간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그 방법에 대해 여러분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마케팅 전략이나, 노동력 확보, 혹은 벤처 자금 조달 같은 비즈니스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퀼트 이불처럼 다양한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인생 전반에 있어서'
현명한 선택과 판단을 하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다.

자기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을 솔직하게 바라보지 못한다면,
탁월한 결정을 할 가능성은 이미 물 건너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일종의 개인적 계산을 해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강점과 더불어 생각하는 법을 배워라. 
수치심에 무기력해지는 일 없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라. 

여러분이 되고자 생각하는, 고수입과 강한 성취감, 
그리고 피 한 방을 나올 것 같지 않은 
철통같은 무자비함으로 똘똘 뭉친 완벽한 사람일랑 마음속에서 지워 버려라.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을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완벽한' 존재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라.
완벽함이란 무결점이나 무 비난의 상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봤을 때 꼭 필요한 부분을 결여하고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자, 한 가지 간단한 방법이 있다.

여러분 자신의 기억과 경험들을 모두 끄집어내서 마치 사진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듯 마음속에 모두 펼쳐 놓자.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새로운 영상이 떠오르도록 하자.
그것은 보다 완전한 영상이요 솔직한 영상이며, 자신의 완벽한 모습 중 하나이다.

내가 오늘날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라.

아버지처럼 나처럼,
그리고 모든 지도자들처럼,
여러분 역시 복합적이고 지적이고 결함을 지닌, 완벽한 존재인 것이다.


※ 이 글은 <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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